“ P 601
김규식이 느끼는 해방의 느낌은 기록되지 않았다. 김규식은 기쁜 마음으로 담담하게 일제의 패망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기다리고 예견되던 해방이지만 중경 시절 김규식은 제한되고 제약된 공간 속에 위치해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결정적 순간을 맞이한 1943년 임시장부아 민족혁명당 재합류 이후 김규식에게는 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선전부장, 부주석의 직위가 주어졌으나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은 되지 않았다. 민족혁명당 주석으로 추대되었으나 역시 명예와 간판뿐이었다. 중국정부로부터 발원한 군사적, 재정적 후원을 둘러싸고 임시정부, 한독당과 민혁당, 김구와 김원봉이 각축전을 벌였으나 김규식은 이러한 예각적 대립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그의 장점이자 명성의 근원이던 외교는 임시정부 내에서는 ㅈ소앙 외무부장이 미국에서는 이승만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임시정부와 민족혁명당을 떠난 7년 동안 벌어진 간극이었다.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이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한국의 해방과 독립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점만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구가 광복군-OSS 공동작전을 위해 서안을 방문하고 장건상이 독립동맹과 연대를 위해 연안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의 최고점에서 해방을 맞았으나 김규식은 중경 에서 전해지는 해방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