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28일 토요일은 '남은 말: 김규식 자료 추적기'의 뒷 부분을 읽습니다. 671~697쪽까지입니다. 내일 부록의 논문까지 읽고서 마무리를 하는 일정입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2. <김규식과 그의 시대> (2)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YG
“ 임시정부가 귀국할 당시 김구는 혼자 몸으로 귀국했고, 1946년 일본에 묻힌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모셔 와 효창원 문효세자 묘터에 쓰고, 여순에서 봉환하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함께 썼다. 정조가 사랑하던 의빈 성씨의 소생 문효세자의 묘는 일제 말기 서삼릉으로 옮겨 갔지만, 김구는 세자의 원소 자리에 3의사를 모셔 사후 복락을 누리시라 한 것이었다. 근대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 가치관에 충실한 셈이다. 반면 김원봉은 귀국할 당시 사별한 부인 박차정의 유골함을 품고 왔다. 이런 점이 김구와 김원봉, 한독당과 민혁당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였을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3권, 김규식 자료 추적기, 678쪽,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YG
우리도 앞에서 얘기했듯이 세대 차이가 중요한 변수라고 정병준 선생님도 지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 얘기는 본문에서는 따로 안 하셨던 대목이었죠?

YG
“ 김구, 김규식, 김원봉, 이청천, 조소앙, 유동열 등은 함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세력이었고, 사상, 이념, 노선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해방 전후 연합, 연대, 통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또한 재미 한인들도 미군정 시기 임시정부 계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친미적, 대미 우호적 세력이었지만, 양자 모두 미군정 하에서 고립 분산적으로 활동하며 연대, 연합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방 후 한국 정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연재했어야 할 세력의 분열은 임시정부 계열의 불행이었고, 해방 후 임시정부의 위축과 몰락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3권, 김규식 자료 추적기, 687쪽,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YG
'김규식 자료 추적기'를 읽으면서 또 안타까웠던 대목이네요;

향팔
“ 김구, 김규식, 김원봉, 이청천, 조소앙, 유동열 등은 함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세력이었고, 사상·이념·노선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해방 전후 연합·연대·통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또한 재미한인들도 미군정 시기 임시정부 계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친미적, 대미 우호적 세력이었지만, 양자 모두 미군정하에서 고립 분산적으로 활동하며 연대·연합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방 후 한국 정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했어야 할 세력의 분열은 임시정부 계열의 불행이었고, 해방 후 임시정부의 위축과 몰락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었다.
반면 임시정부와 재미한인 간 결별을 초래한 이승만은 귀국 후 임시정부 대표로 자임하며 한국민주당 및 친일파들과 결합해 세력을 확대 강화했다. 임시정부와 이승만의 선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김구·임시정부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재미한인사회와 결별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 이승만은 1945년 5월 유엔 조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회담에서 얄타밀약설을 스스로 만들어 주장함으로써 반소·반공 선전에 전념했고, 임시정부에 정치적·외교적 타격을 가했다. 이로써 이승만은 반소·반공 성향의 맥아더 등 군부 매파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조기 귀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향팔
“ 1946년 초반 미군정이 후원한 이승만 중심의 독촉중협, 민주의원이 실패하고 김구의 임시정부 세력이 1945년 말 반탁시위로 대중적 지지를 확고히 했지만 미군정의 비토를 받게 되자, 이들을 대체할 우익 인물로 김규식이 급속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김규식은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폐막되기 직전 미군정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으로 호명되었다. 반탁, 반공, 친미적이지만 좌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부각된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향팔
“ 버치 문서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으며, 버치 자체가 놀라운 인물이다. 하지의 개인 정치고문이었던 버치는 하지가 알고 보니 정치고문 직위는 장군이 맡을 수 있는 직책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장군직 승진을 수용하겠다고 말하는 위인이었다. 당시 버치의 계급은 중위였다. 이를 전후해 버치는 자신의 지프에 장군용 성판(星板)을 달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
버치나 로빈슨 모두 공보국 소속으로 한국인의 여론 동향에 민감했으며,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주한미군이 남한을 친일파, 폭력단, 파시스트, 모리배, 브로커 등에게 기회의 땅이 되도록 방조하는 데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
버치 문서는 매우 풍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은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들을 수 있는 자료들을 담고 있다. 버치는 리버럴한 성향이 강하고 권위나 명령에 선천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체질이어서, 군정 내부의 고급 장교들과 마찰을 빚었다. 물론 이승만을 혐오하고, 1947년 도미 외교에서 귀국하려는 이승만의 귀국 비행기 편을 막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이승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향팔
“그렇다면 나는 장군직 승진을 수용하겠다” ㅋㅋ 심각하게 읽다가 빵 터졌네요. 골때리는 분이었군요.
밥심
<김규식 자료 추적기>에도 강용흘 작가가 또 나오네요. 이번엔 '강용흘 작가가 누구지?' 하고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ㅎㅎ
토요일인 오늘까지 3권을 도서관에 반납해야 했는데 밤늦게서야 완독을 해서 부득이하게 내일 반납해야겠습니다. 하루 연체네요. ㅋㅎ 좀 더 빨리 완독할 수 있었는데 428쪽 표6-5에 우파인 한독당은 토지 국유를 주장하는데 좌파인 민혁당이 오히려 대토지(만의) 국유를 주장했다는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느라 시간을 쓰다가 늦어져 버렸습니다. 삼균주의에 따라 토지 국유를 주장한 한독당과 달리 더 진보적이어야할 민혁당은 소지주와 빈농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토지만의 국유를 주장했다는 배경과 해방 후 결국엔 기회 균등이라는 원칙이라도 지켜서 유상몰수 유상배분으로 토지 개혁이 이루어지고 뒤이어 터진 전쟁으로 인해 몰락한 대토지 지주들의 재산을 흡수한 신흥 상인들이 일본 적산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지금의 LG, SK, 한화, 삼성과 같은 재벌로 성장했다는 내막까지 대략 알고 나니 와,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하고 감탄을 했네요.
어찌어찌 3권까지 겨우 다 읽었는데도 아직 발간되지 않은 4권이 있다는 사실에 이건 진짜 장난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이런 대작을 쓰기 위해 오래된 사료들을 찾아 끈질긴 노동을 하는 역사학자들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는 얼마 전의 벽돌책 <경이로운 생존자들>에 등장했던 화석 연구자들이 사막 땡볕 아래에서 조그마한 이빨 화석 하나라도 찾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땅위에 엎드려있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삼일운동을 너무나 사랑해서 10년이 넘게 삼일운동을 연구해서 <3월 1일의 밤>을 쓴 국문학자 권보드래 교수도 생각나고요. 진짜 사랑,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시는 분들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립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졌으면서도 그렇게 단합을 못하고 싸워서 일을 그르치느냐 하고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인류 역사를 따지고 보면 다른 나라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만 해도 공산당과 국민당이 죽어라 싸웠잖아요.
그리고 옛날부터 하던 생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민족은 그 민족끼리만 한 나라를 이루어 살아야하는가? 민족자결주의가 최선인가? 발칸반도의 남슬라브족이 민족 독립을 외치며 일으킨 싸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는지 역사를 살펴보면 그냥 다른 민족이라도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소수 민족들이 핍박받는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끝없이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그게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인간의 속성을 냉정히 생각해보면 너무나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이겠지요....
아무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신 김규식 님, 수고 하셨습니다.

FiveJ
“ 12월 말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이 보도되기 전까지 임시정부는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였다.
26년 만에 귀국한 임시정부를 기다리는 것은 이승만이 주도하고 미군정이 후원하는 독촉중협, 일명 정무위원회 계획에 동참하라는 요구였다.나아가 이승만은 임시정부가 개인 자격으로 귀환했고, 국제 사정상 정부로 인정할 수 없으니 사실상 해체하고 독촉중협에 개인적으로 합류하라고 강요했다. 임시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니었다.
임시정부는 단호히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중경 시절 한독당과 민혁당의 대결이 치열했지만, 귀국 이후에는 중층적인 대결 구도가 기다리 고 있었다. 여기에는 미군정, 한국민주당, 조선공산당, 독촉중협 등 좌우파 정당,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619,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FiveJ
주말에 늦은 진도 따라잡는 중입니다. 읽는 내내 정말'만약에' 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네요...
aida
“ 대구. ’10월 사건‘ 의 배경에는 경찰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친일경찰의 문제, 이들의 잔인성과 폭력성. 우익 테러 청년단체와의 결탁, 미곡 수짐 과정에서의 무차별 폭력행사와 미곡 강탈, 영장 과 이유도 없는 무차별 불법 구금, 수감자들에게 식사비 명목의 금전 약취, 뇌물 수수, 고문과 폭력, 사망사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이 친일경찰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을 중용하고 옹호하는 조병옥 경무부장, 장택상 수도경찰 청장의 해임문제가 당연히 중요의제가 되었다. 조병옥은 한민당 당적을 유지하며 우익정당원로서 경찰력을 지휘하고 친일경찰과 우익 청년단의 외피를 쓴 폭력단의 만행을 방조하고 있었다. p733.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aida
“ 2만 명 남짓 주한미군으로는 남한 치안과 상황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좀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충성스런 경찰 2만 5천명이 없다면 남한의 정치. 경제,사회 상황은 통제 불가능의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문장모음 보기

향팔
수집해주신 문장과 친일경찰 대목을 읽으니, 옛드 <여명의 눈동자>의 장하림이 경찰서에서 스즈키를 마주치고 경악해 분노하던 명장면이 떠오르네요. 해방 후 김원봉이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모욕을 당했던 일을 모티브로 했다는 풍문이 있더라고요.
“스즈끼! 니가 여기 왜 있어!! 해방이 됐어! 그런데 니가 여기 왜 있어…!”
https://youtu.be/ySDbuC9Juls?si=7ddmTFvdz_jLCpSI

향팔
노덕술, 하니까 엊그제 죽었다고 뉴스가 뜬 이근안 생각도 났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한홍구 샘의 오래된 글이 있네요.
https://h21.hani.co.kr/arti/COLUMN/44/2534.html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stella15
이근안이 죽었군요. 박종철과 그의 가족들에게 사죄도 안 했겠죠? 향년이 어떻게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장수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 궁금하네요.

향팔
이근안이 고 김근태 등 고문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오히려 자기가 한 건 애국 행위였다고 끝까지 큰소리 쳤다죠. 목사 직을 하다가 면직되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88살이니 참 오래도 살았네요.
“죽음으로 끝인가”…‘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남긴 불편한 질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71336001#ENT
“이근안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폭력의 ‘상징’일 뿐이었습니다.
지난 1월 검찰은 법원의 판단 이후에야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혐의없음’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재심을 준비하는 유족들이 수사기록을 요청하고도 1년 넘게 받지 못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은 사라졌지만 책임을 미루는 구조와 태도는 남아 있습니다.
상징은 사라졌고 폭력은 남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향해 분노해야 할까요?”

stella15
하긴 아이히만도 그렇고, 전두환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사죄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죠. 한나 아렌트가 악의 보편성을 지적했지만 정말 폭력은 치유될 수 없는 건가 회의가 드네요. 거기에 법이 오히려 보호를 하고 있으니 참 거시기 하네요.

향팔
이번에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읽으면서, 그의 시대를 통해 지금 우리 시대가 어떻게 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 뿌리부터 파헤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내가 누구이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생명은 무엇인지, 우주는 어떻게 태어난 건지 궁금해져서 천문학 교양서를 펼쳐보는 것처럼요.) 역사책을 읽는 건 그래서인 것 같아요.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왜 이 지경인지 알기 위해서…? 모든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나봐요. 꼭 반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덕술과 이근안도 다른 시대 사람이지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오늘 우리의 시대를 알려면 과거 그들의 시대를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