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D-29
자기의 의자에서 내려올 생각조차 못했다는 건 그 시대가 보는 시야가 그만큼이었겠지요. 지금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과거에는 가능했었죠. 바꿔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 자리를 내놓는 대신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도 올라오기를 바랐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날카롭습니다.
말씀하신 그 날카로움이 울프의 에세이를 읽는 맛이 아닐까요? ^^ 저는 다음 대목도 아주 인상적이어서 밑줄을 그었습니다. 아마 @모임 여러분도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에서 밑줄 긋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경향이 개입한다. 자신들에게 그토록 근사한 조망과 어느 정도의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를 어떻게 전적으로 비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사회로부터 계속 이득을 취하면서 가감 없이 비난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작가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를 비난하는 대신 퇴역한 제독이나 독신녀, 혹은 무기 제조업자같은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삼는다." (94쪽)
하지만 순수 지식인들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벌고 나면 그다음은 그저 삶을 즐깁니다. 반면에 교양속물들은 먹고살 만큼 번 다음에도 계속 돈을 법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3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어떤 비평가든 감히 제가 사우스 켄싱턴('교양속물'층이 모여 사는 보수적 중산층 지역이다/각주) 에 산다고 암시하기라도 한다면 저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이든, 남자든 여자든, 개든 고양이든, 심지어 반쯤 으깨진 벌레라도 저를 '교양속물'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펜을 들어 그를 찔러 죽일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옮겨주신 이루카님의 각주가 너무나 좋았던 장입니다. 하이브로우와 미들, 로우브로우에 대한 해석도 좋았고 인물들에 대한 설명도 무척 좋았습니다.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와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 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Chloe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역자의 각주를 모두 다 넣고 싶었지만, 그러면 책의 분량이 너무 늘어나서 어느 선에서는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심과 고통의 과정이지요.^^; 이런 사정을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신 이루카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모임 여러분 가운데서도 각주를 유심히 읽은 분이라면 역자의 노고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의 각주 5번을 보시면 열다섯 살의 오스틴이 오빠에게 "장엄한 농담조로 헌정"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스틴의 재치와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옮겨와 봅니다.^^ "존경하는 오라버니에게. 저는 오라버니가 여러 차례 허락해 주신 자유를 이용해 쓴 소설 중 하나를 바치고자 합니다. 이 소설은 미완성이어서 아쉬움이 크지만 아마 영원히 그렇게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쓴 글이 너무 하찮고 오라버니에게 걸맞지 않아 보일까 걱정입니다. 오라버니에게 늘빚지고 있는 겸손한 하인, 저자 드림." (28쪽)
2주차에 읽은 세 편은 모두 예술과 사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글의 배치가 너무 좋았습니다.
어중간한 교양인이 어디에나 있어 "저게 뭐지?" "배추에도 교양 속물이?" 교양 속물들이 세상을 어지럽혀 배추도 교양 속물처럼 보인다는 걸까요? 아니면 교양 속물들이 여기저기 오염을 시켜서 배추마저도 그리 보이는 걸까요? 아티초크님이 올려주신 힌트 채소를 찾아보느라 다시 읽어봤습니다ㅎㅎ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예술가 역시 다른 시민들처럼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다만 그 혼란이 예술가의 삶을 뒤흔드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제 그의 화실은 더 이상 모델이나 사과를 평온하게 관찰할 수 있는 ‘속세와 단절된 수도원’ 같은 곳이 아니게 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화실을 포위하고 그를 괴롭힌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5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과 다른 시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면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이 공유하는 열망과 결핍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라는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라 기억에 남네요. 2주 차에 읽은 챕터들은 울프의 필력이 휘몰아치는 동시에 에세이 주제에 관한 애정도 한 스푼 추가된 것 같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울프처럼 "필력이 휘몰아치는 동시에 (...) 애정도 한 스푼 추가"야말로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 같습니다. 이런 글쓰기를 식재료를 사정없이 치대다가 마지막에 참기름 한 스푼으로 마무리하는 레시피에 비유해보면, 둘다 왠만한 내공 없이는 쉽게 하기 어렵겠죠.^^
하루 일과를 마친 생계형 인간들이 빗속에서 때로는 몇시간씩 기다려 값싼 표를 사서 후덥지근한 극장 안에 들어가, 스크린에 비친 자기 삶의 모습을 보려는 것입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2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ㅎㅎ 스스로의 삶을 반추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가 있고 문학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세기 내내, 그리고 1914년 8월까지도 그 '탑'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작가들은 자신이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는 사실도, 그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p.8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버지니아 울프 @모임 여러분. 안녕하세요.^^『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마지막 3주차 모임을 시작합니다. 일정과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3주차 ― 일정: 3.23(월)~3.29(일) ― 범위: 영화, 옷을 입은 채 태어난 예술/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 이번 주에 함께 이야기할 에세이는 '영화'와 '미술'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두 편의 미술 에세이 「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와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는 국내 독자에게 처음 소개되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계시듯이 울프의 언니 바네사 벨은 화가이고, 남편은 클라이브 벨이라는 미술비평가입니다. (간혹 로저 프라이가 바네사의 남편으로 오인 받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연인이었습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에 수록된 시 「안젤리카」(209쪽)에서 '안젤리카'는 울프의 조카(바네사와 화가 던컨 그랜트의 딸)입니다. 저는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미술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독자로서 경험하고 나니 영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첨부한 그림은 시커트의 자화상입니다. 역자의 월터 시커트 소개글을 옮겨 봅니다. "월터 시커트는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영국 회화의 지평을넓힌 독보적인 화가이자, 버지니아 울프가 ‘위대한 전기 작가’라고 칭송했던 예술가이다. 시커트는 화려한 귀족적 풍경 대신 캠던 타운의 비좁은 방, 뮤직홀의 어둑한 객석,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관찰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긴장감을 포착해냈다. 울프는 그의 그림에서 인물의 전 생애가 응축된 서사를 읽어 냈으며, 그를 가리켜 “단어라는 불순한 매체를 거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삶의 진실을 그려 내는 소설가”라고 평했다. 훗날 루시안 프로이트와 프란시스 베이컨 등 현대 회화의 거장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1906년경에 그린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침실〉 때문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80쪽) 📌 참고 링크 월터 시커트 https://www.tate.org.uk/art/artists/walter-richard-sickert-1941 바네사 벨 https://www.tate.org.uk/art/artists/vanessa-bell-731
다른 모든 예술은 알몸으로 태어났지만, 영화는 가장 늦게 태어난 예술임에도 옷을 입은 채 태어났다는 점이다. 영화는 아직 말할 것이 없는데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영화, 옷을 입은 채 태어난 예술 p.16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게다가 이 모든 장면은 1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미 파도 아래로 사라진 세계를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원에서 나오는 저 신부들은 이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결혼식의 열기 속에서 들떴던 안내인들은 이제 사라진 시간 속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눈물짓던 어머니들, 기뻐하던 하객들, 누군가는 무언가를 얻었고 누군가는 잃었겠지만, 그 모든 일은 이미 끝난 과거일 뿐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오늘 오래된 드라마를 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는 듯 볼 수 있는 영상은 기분이 묘하다고 친구랑 이야기를 했는데 영상 속 장면들은 이미 끝난 과거라는 울프의 글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엇구나 생각하게 되네요.
세상의 저 유명한 소설들, 이름만 대면 아는 캐릭터와 명장면들이 그저 스크린에 옮겨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보다 더 쉽고 간단한 일이 있을까? 영화는 탐욕스럽게 그 불운한 희생자에 기생하여 연명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재앙이다. 영화와 문학의 결합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눈과 머리는 함께 작동하려 애쓰지만 무자비하게 분리될 뿐이다. (•••) 이렇게 영화는 세계적인 명작 소설들을 어설프고 무겁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겉핥기식으로 다루고, 유치하게 단순화해서 풀어놓는다. 키스는 사랑이고 깨진 컵은 질투이며, 헤벌쭉한 웃음은 행복이고, 영구차는 죽음인 식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 159-16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하지만 밖에서 사온 작은 기념품과 값싼 제비꽃 한 다발은 그림 속 인물들에게 조용히 외면당한다. 우리의 사랑고, 욕망도, 순간의 열망도 스쳐지나가는 고민도 그들에게서 공감을 얻지도 답을 찾지도 못한다. 그림의 엄숙한 시선 앞에서 우리의 일상적 감정은 힘을 잃고, 예술의 그 힘에 압도되어 스스로 미미하게 느껴지고 자아가 지워지는 듯한 체험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소멸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물론 그림 앞에서 우리는 말할 능력을 잃지만, 그 덕분에 말의 소란과 성가심에서 벗어난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 170-17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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