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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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처럼 "필력이 휘몰아치는 동시에 (...) 애정도 한 스푼 추가"야말로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 같습니다. 이런 글쓰기를 식재료를 사정없이 치대다가 마지막에 참기름 한 스푼으로 마무리하는 레시피에 비유해보면, 둘다 왠만한 내공 없이는 쉽게 하기 어렵겠죠.^^
하루 일과를 마친 생계형 인간들이 빗속에서 때로는 몇시간씩 기다려 값싼 표를 사서 후덥지근한 극장 안에 들어가, 스크린에 비친 자기 삶의 모습을 보려는 것입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2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ㅎㅎ 스스로의 삶을 반추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가 있고 문학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세기 내내, 그리고 1914년 8월까지도 그 '탑'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작가들은 자신이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는 사실도, 그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p.8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버지니아 울프 @모임 여러분. 안녕하세요.^^『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마지막 3주차 모임을 시작합니다. 일정과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3주차 ― 일정: 3.23(월)~3.29(일) ― 범위: 영화, 옷을 입은 채 태어난 예술/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 이번 주에 함께 이야기할 에세이는 '영화'와 '미술'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두 편의 미술 에세이 「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와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는 국내 독자에게 처음 소개되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계시듯이 울프의 언니 바네사 벨은 화가이고, 남편은 클라이브 벨이라는 미술비평가입니다. (간혹 로저 프라이가 바네사의 남편으로 오인 받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연인이었습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에 수록된 시 「안젤리카」(209쪽)에서 '안젤리카'는 울프의 조카(바네사와 화가 던컨 그랜트의 딸)입니다. 저는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미술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독자로서 경험하고 나니 영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첨부한 그림은 시커트의 자화상입니다. 역자의 월터 시커트 소개글을 옮겨 봅니다. "월터 시커트는 인상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영국 회화의 지평을넓힌 독보적인 화가이자, 버지니아 울프가 ‘위대한 전기 작가’라고 칭송했던 예술가이다. 시커트는 화려한 귀족적 풍경 대신 캠던 타운의 비좁은 방, 뮤직홀의 어둑한 객석,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관찰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긴장감을 포착해냈다. 울프는 그의 그림에서 인물의 전 생애가 응축된 서사를 읽어 냈으며, 그를 가리켜 “단어라는 불순한 매체를 거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삶의 진실을 그려 내는 소설가”라고 평했다. 훗날 루시안 프로이트와 프란시스 베이컨 등 현대 회화의 거장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1906년경에 그린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침실〉 때문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80쪽) 📌 참고 링크 월터 시커트 https://www.tate.org.uk/art/artists/walter-richard-sickert-1941 바네사 벨 https://www.tate.org.uk/art/artists/vanessa-bell-731
다른 모든 예술은 알몸으로 태어났지만, 영화는 가장 늦게 태어난 예술임에도 옷을 입은 채 태어났다는 점이다. 영화는 아직 말할 것이 없는데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영화, 옷을 입은 채 태어난 예술 p.16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게다가 이 모든 장면은 1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미 파도 아래로 사라진 세계를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원에서 나오는 저 신부들은 이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을 것이고, 결혼식의 열기 속에서 들떴던 안내인들은 이제 사라진 시간 속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눈물짓던 어머니들, 기뻐하던 하객들, 누군가는 무언가를 얻었고 누군가는 잃었겠지만, 그 모든 일은 이미 끝난 과거일 뿐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오늘 오래된 드라마를 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는 듯 볼 수 있는 영상은 기분이 묘하다고 친구랑 이야기를 했는데 영상 속 장면들은 이미 끝난 과거라는 울프의 글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엇구나 생각하게 되네요.
세상의 저 유명한 소설들, 이름만 대면 아는 캐릭터와 명장면들이 그저 스크린에 옮겨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보다 더 쉽고 간단한 일이 있을까? 영화는 탐욕스럽게 그 불운한 희생자에 기생하여 연명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재앙이다. 영화와 문학의 결합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눈과 머리는 함께 작동하려 애쓰지만 무자비하게 분리될 뿐이다. (•••) 이렇게 영화는 세계적인 명작 소설들을 어설프고 무겁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겉핥기식으로 다루고, 유치하게 단순화해서 풀어놓는다. 키스는 사랑이고 깨진 컵은 질투이며, 헤벌쭉한 웃음은 행복이고, 영구차는 죽음인 식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 159-16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하지만 밖에서 사온 작은 기념품과 값싼 제비꽃 한 다발은 그림 속 인물들에게 조용히 외면당한다. 우리의 사랑고, 욕망도, 순간의 열망도 스쳐지나가는 고민도 그들에게서 공감을 얻지도 답을 찾지도 못한다. 그림의 엄숙한 시선 앞에서 우리의 일상적 감정은 힘을 잃고, 예술의 그 힘에 압도되어 스스로 미미하게 느껴지고 자아가 지워지는 듯한 체험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소멸을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물론 그림 앞에서 우리는 말할 능력을 잃지만, 그 덕분에 말의 소란과 성가심에서 벗어난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 170-17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그림을 통해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고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 침묵알 통해 그림의 풍경, 초록위 언덕을 보고 눈을 색으로 씨어내자는 울프의 말이 표지의 눈들처럼 느껴졌슺니다. 아래를 보다가 비어있다가 다시 차는 느낌이요. 아침의 좋은 글입니다^^
울프의 「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Chloe님의 문장수집 부분을 저도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 에세이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것이어서 제가 첫 독자라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제가 받은 첫인상이 여러 개인데 하나만 꼽자면 '독자를 가르치지 않은' 미술 에세이가 무척 반가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저자의 눈과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을 느끼게 해준 울프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 @모임 여러분 중에서도 저와 비슷하게 느낀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요즘 나오는 미술 에세이 대부분이 '더 빨리, 더 쉽게, 더 재미있게' 가르쳐주기 경쟁을 하는데, 이 와중에 울프의 글은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우리 내면의 풍경을 바꾸는" 운치와 여운이 특별합니다.
우리는 흑백 그림의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자인과 질감, 필치, 그리고 이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는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 우리가 눈을 감은 채 지나쳐 버리는 ‘예술’의 문제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 p.17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불행히도 그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재앙이다. 영화와 문학의 결합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5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시각적 감정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징들은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실제 사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미래의 영화는 어떤 추상적인 움직임, 즉 예술적으로 통제된 의식적인 기교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때 말이나 음악은 그저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아주 미세한 도구로서, 영화의 지휘 아래 그 보조적인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p.164)' 과연 몇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 오늘날의 영화도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꽤 달라졌을까요? 물론 말과 음악이 보조적인 수단은 맞지만, 말이 영화 대사를 뜻하는 것이 맞다면, 저는 미세한 도구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OST에 따라 장면 자체가 달라 보이는 재미있는 영상이 많다는 점과 영화 시상식에서 음악상 부문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세한 도구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영화와 문학의 결합이 부자연스럽다고 했는데, 오늘날 수많은 문학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걸 울프가 알게되었다면, 그 현실에 통탄할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분명 느끼고 보고 있지만,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안의 '말 없는 언어'가 따로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형체 없는 감각을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리의 생각 안에 굳이 설명하지 않고 보기만 해도 단번에 이해되는 그런 성질이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6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월터 시커트의 작품은 접해본 적이 없는데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를 읽으니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어떤 그림을 감상하던, 이 글에 실린 것처럼 그림 속 세계와 인물을 궁금해하고 추측해가며 감상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제 지인 중에 영국의 유명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 애호가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 분이 프로이트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장본인이 시커트라고 해서 귀가 솔깃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시커트의 두꺼운 물감 사용 기법과, 개인의 개성보다 인간의 형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시커트의 표현 방식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그린 무언가 불안하면서도 나른하고, 기이한 초상들과 시커트의 초상을 번갈아 보면 그 영향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WwpVmgvFog 에서 프로이트의 두터운 붓질을 볼 수 있습니다. 울프는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에서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제게는 그 형식이 굉장히 낯설어서 지루함 없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울프의 미술 에세이가 왜 '독보적'이라고 하는지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겠더군요. 그리고 이 글에는 안 나오지만 시커트는 연쇄 살인 사건 잭 더 리퍼의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논란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럴리가요.^^;) @모임 여러분 중에 잭 더 리퍼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시커트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MkdxAH1n7s 처럼 잊을만 하면 시커트가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시커트의 그림들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게다가 본인이 산 집이 어쩌면 잭더리퍼의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그 그림은 아마도 잭더리퍼를 상상하며 그렸을테니 얼마나 더 무섭던지요. 당장 천둥이 칠 것만 같은 무서운 일이 일어날 듯 하던걸요. 시커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여전히 호사가들의 입엔 혹시하며 오르락 내리락 하나봅니다. 울프가 등장시킨 화자들의 이야기가 처음엔 진짜인 줄 알았다가 울프의 목소리란 걸 알고 이렇게 신선할 수가!!! 울프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썼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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