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D-29
월터 시커트의 작품은 접해본 적이 없는데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를 읽으니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어떤 그림을 감상하던, 이 글에 실린 것처럼 그림 속 세계와 인물을 궁금해하고 추측해가며 감상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제 지인 중에 영국의 유명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 애호가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 분이 프로이트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장본인이 시커트라고 해서 귀가 솔깃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시커트의 두꺼운 물감 사용 기법과, 개인의 개성보다 인간의 형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시커트의 표현 방식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가 그린 무언가 불안하면서도 나른하고, 기이한 초상들과 시커트의 초상을 번갈아 보면 그 영향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WwpVmgvFog 에서 프로이트의 두터운 붓질을 볼 수 있습니다. 울프는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에서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제게는 그 형식이 굉장히 낯설어서 지루함 없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울프의 미술 에세이가 왜 '독보적'이라고 하는지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겠더군요. 그리고 이 글에는 안 나오지만 시커트는 연쇄 살인 사건 잭 더 리퍼의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논란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럴리가요.^^;) @모임 여러분 중에 잭 더 리퍼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시커트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MkdxAH1n7s 처럼 잊을만 하면 시커트가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시커트의 그림들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게다가 본인이 산 집이 어쩌면 잭더리퍼의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그 그림은 아마도 잭더리퍼를 상상하며 그렸을테니 얼마나 더 무섭던지요. 당장 천둥이 칠 것만 같은 무서운 일이 일어날 듯 하던걸요. 시커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여전히 호사가들의 입엔 혹시하며 오르락 내리락 하나봅니다. 울프가 등장시킨 화자들의 이야기가 처음엔 진짜인 줄 알았다가 울프의 목소리란 걸 알고 이렇게 신선할 수가!!! 울프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썼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Chloe님 말씀대로 시커트 범인설은 '여전히' 호사가들의 입에 계속 오르고 있더군요. 호사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소재도 없을 듯합니다.^^ 저도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신선함에 무척 놀랐습니다. 왜 이 에세이를 '독보적'이라고 하는지도 금세 이해하였습니다. 제가 읽은 여러 미술 에세이(비평)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글입니다. 여담으로 '잭 더 리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목록이 위키피디아에 있어서 @모임 여러분에게 공유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E%AD_%EB%8D%94_%EB%A6%AC%ED%8D%BC%EC%97%90_%EA%B4%80%ED%95%9C_%EC%9E%91%ED%92%88
<영화, 옷을 입은 채 태어난 예술> 얼마 전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왔는데, 마침 예시로 딱 나와서 놀랐어요 ㅋㅋㅋ
문명화된 인간의 얼굴이란 수백만 번의 행동과 생각, 고백과 은폐가 응축된 하나의 요약본이자 결정체니까.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18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시커트가 각별한 관심을 두는 건 하위 중간계급의 삶이야. 술집 주인, 가게 주인, 뮤직홀 배우와 여배우 같은 사람들, 태생 또는 지성으로 얻은 귀족적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지. 그 이유는 아마도, 아름다운 것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자기 소유물을 대할 때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며 느슨한 태도를 취하지만, 손수 번 돈으로 거리의 노점에서 물건을 산 사람들은 다르기 때문일 거야. 가난한 이들의 소비에는 어떤 강렬한 즐거움이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과 아주 밀착되어 있지.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p.195,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울프의 색깔에 대한 상상력이나 그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빛에 대한 상상력도 인상적이지만 시커트가 왜 중간계급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입니다. 물려받은 소유물에 대한 의식과 달리 노점에서 직접 구입한 그 강렬한 즐거움이 소뮤물에 대한 애착을 더 강하게 해줬을 거란 부분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듭니다. 고심해서 가격 비교를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입한 물건은 강렬한 색을 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서술한 부분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기존 고전문학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납작함이 아니라, 영화여서 할 수 있는 것들(시각적인 상징 요소로 공포를 표현한다던가)을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네요! 울프의 시대와 현 시대의 영화를 비교해보면, 정말 그런 방식으로 영화가 발전해 온 것이 느껴져서요.
이번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인물은 존 스튜어트 밀의 아내다. 그녀만큼 완벽한 여인은 없었다. 고귀하고, 관대하고, 영감을 주는 사상가이자 개혁가이며 성자와도 같은 인물. 그녀는 재능과 덕목을 다 갖추고 있었다. 단 하나, 그녀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라면 그것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곳에도 그녀의 얼굴은 없었다. 그래서 미술관에 문의했더니 그들은 먼저 그녀가 기록될 자격이 있는지를 따졌다. 그들이 미술관에 걸어 남기는 건 얼굴이 아니라 조건이었던 것이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172-173쪽,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이번에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 해리엇 테일러 밀(존 스튜어트 밀의 아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없는 수많은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울프의 에세이를 읽는다면 "남편이 그녀의 생김새를 단 세 줄이라도 묘사해 남겼더라면 우리는 지금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173쪽)라는 부분이 공분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이 아내 해리엇과 공동 작업한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1869)은 당시 영국 사회를 뒤흔든 급진적인 '성평등' 저술이었습니다. 존과 해리엇은 부부이자 학문적 동지였습니다. 그래서 역자가 각주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해리엇 밀의 초상화가 없다고 한 것은 1920년대 당시에는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해리엇 밀의 초상화는 존재하며, 현재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보충 설명을 한 것 같습니다. (사진은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입니다.)
사진 자료까지 덧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리엇 밀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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