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핑계고] #1. 남극(클레어 키건)

D-29
1. 처음 바다를 건너갔던 해, 공기는 유독 서늘했다. 교실 문을 열자 희고 낯선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그 학교의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고, 호기심 어린 눈빛들 앞에서 어떻게 걸음을 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내 등을 떠밀어, 발이 닿지 않는 깊고 찬 물속에 맨몸으로 빠뜨린 것만 같았다. 2. 부모의 살림은 넉넉지 않았다.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땀 흘린 수고로움으로 나를 그 먼 곳까지 보냈다는 사실은, 입 밖으로 꺼내는 이가 없었음에도 늘 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빨리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틈에 섞이고, 흠잡을 데 없는 성적표를 쥐어야 했다. 언제나 눈에 띄는 이방인이었지만, 실패한 이방인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숨이 막힐 듯한 중압감이었으나,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매일 아침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ps.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인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은연중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려는 오만함이 아니다. 그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섞이며 부대끼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가 긋는 선은 타인을 내치기 위한 창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투명한 벽이다. 그 벽 안에서 나는 비로소 안전하다. 3. 어릴 적엔 밤이 오면 천장을 보며 수많은 상상 속을 맴돌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내게 밤은 그저 스위치를 내리는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 작고 빛나는 화면의 그림들을 무심히 넘기다, 아무런 생각 없이 눈을 감는다. 숨 막히는 책임감도, 깊은 물도 이제 오지 않는다. 오페어에게 밤은 억눌린 불안과 마주하는 깊은 심연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곳은 무거운 허물을 벗어두고 기절하듯 잠드는 자리였다. 치열하게 헤엄쳐야 했던 그 서늘한 물을 지나, 나는 마침내 발이 닿는 밤에 서 있었다.
2. 업무 상황에서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계속 새로운 업무가 추가될 때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새벽에도 자주 깨곤 했고, 다음 날 '해야만 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막막함도 느껴졌습니다. 3. 밤은 오로지 저 혼자 독서나 영화와 같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온한 안식의 시간이기도 하면서, 다음 날 아침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그 끝이 존재하기에 복잡하고 치열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Ps. 아마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오페어는 자신은 절대 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 융화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차가운 말을 뱉고 난 남자가 갑자기 체면을 차려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든 듯 했던 그 이상한 키스도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어지면 베이비시터도 없어지는 겁니다. 발코니 문을 잘 잠가놓도록 해요.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첫 비행기를 타게 될 테니까." 그런 다음 남자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이상하고 의도적인 키스, 반가운 사람이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할 법한 키스를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돌아갔다.
남극 물이 가장 깊은 곳 P.74,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진저 로저스 설교 발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만 골라서 답하셔도 됩니다. 🟥1. 이 작품에서 사건의 비극은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 여러 조건이 겹쳐 발생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느끼나요? 🟥2. 사춘기의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호기심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호기심과 책임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나요? 🟥3. 작품은 “누군가의 삶이 한순간에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인생에서 한 번의 선택이나 행동이 예상보다 크게 영향을 준 사례를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나요?
1. 조용한 파국, 그리고 책임의 무게 비극은 대개 소란스럽게 오지 않는다. 조용히, 여러 겹의 방관이 쌓여 문턱을 넘을 뿐이다. 부모는 딸이 슬래퍼 짐의 곁에서 점차 입이 험해지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묵인했다. 어른들이 막을 수 있었던 첫 번째 고요한 방관이었다. 하지만 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가장 무거운 추는, 결국 어른이었던 슬래퍼 짐의 발목에 매달려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배움이 짧고 빗변(hypotenuse)의 철자조차 모르는 사내라 할지라도, 그는 어른이었다. 이제 막 세상의 비밀을 엿보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의 충동이 어떤 파도를 일으킬지 가늠하지 못한다. 아이가 위험한 선을 넘으려 할 때, 단호히 문을 닫아거는 것은 어른의 몫이어야 했다. 보수적인 마을, 가난한 벌목꾼이라는 자리에서 그가 쥘 수 있는 유일한 책임의 방식이 스스로 생을 지우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가장 시린 대목일 것이다. 2. 난로의 온기와 서늘한 책임의 경계 호기심과 책임의 경계는, 내 손끝의 열기가 타인의 삶을 데게 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어릴 적, 난로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고 싶어 새끼손가락을 슬쩍 대보았던 적이 있다. 살갗이 붉어지는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쥘 베른의 소설 속 파스파르투가 묵묵히 제 낡은 시계만을 고집하던 것처럼, 누구의 삶에도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홀로 감당하면 될 순진한 호기심으로 남는다. 하지만 나의 호기심이 타인의 문지방을 넘어가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설 속 소녀의 도발은 슬래퍼 짐이라는 타인의 고단한 삶 한가운데로 불붙은 성냥을 던진 것과 같았다. 그것은 더 이상 사춘기의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둘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책임의 시작점이었다. 3. 생략된 말 한마디가 삶의 궤도를 바꿀 때 인생의 방향이 통째로 틀어지는 것은 대개 아주 작고 고요한 순간에 일어난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때 우리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뜨거운 마음을 보태주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상사는 그들의 헌신을 버거워하며 조용히 선을 긋기 시작했다. 다정했던 '우리'가 낯선 '그들'로 밀려나던 서늘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던 날, 상사는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그들 앞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철저한 배제였다. 그 짧은 침묵과 생략된 말 한마디는, 한때의 든든한 아군을 가장 무서운 타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고발장이라는 서늘한 종이를 쥐고 돌아왔고, 산산이 조각난 관계의 잔해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잃어버린 것들을 주워 담지 못하고 있다. 그때 문을 열고 한마디 말만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그 작고 가벼웠던 선택의 무서운 무게를 깨닫곤 한다.
1. 가장 큰 책임은 아무래도 불씨를 당겼던 나에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2. 나의 호기심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부터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돌이킬 수 없을 수 있으니, 호기심은 갖되 충분히 숙고한 후에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를 왜 '슬래퍼 짐'이라고 불렀는지 나에게 묻지 않길 바란다.
남극 진저 로저스 설교 P.80,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폭풍 발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만 골라서 답하셔도 됩니다. 🟥1. 작품 속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아버지의 눈을 닮은 딸에게 투사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 그와 관계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 것을 보거나 직접 겪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2. 딸은 부모의 갈등을 피해 어두운 상자 속으로 숨어들며 스스로가 사라지는 상상을 합니다.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했을 때, 잠시나마 나만의 안식처나 도피처가 되어준 공간 혹은 행동이 있(었)나요? 🟥3. 딸이 아버지의 외모(눈)를 닮았다는 사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기질이나 외적 조건 때문에 억울한 평가나 오해를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1. 사람들은 종종 바깥에서 묻혀온 진흙을 집 안의 가장 깨끗한 바닥에 털어낸다. 자신이 짊어진 분노의 무게를 아무 죄 없는 동료의 등 뒤로 무심히 던져버리는 어른들을 나는 보았다. 영문도 모른 채 불똥을 맞은 이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돌아섰다. 나는 그 비겁한 풍경 속에서 어른들의 얕은 밑바닥을 응시하며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적어도 내 안의 날씨가 궂을 때면, 타인에게 빗물을 튀기는 대신 이성을 붙잡고 "비가 그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적어도 그렇게 늙어가기로. 2. 내 삶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는 늘 고요한 기도가 흐르고 있다. 세상의 소음이 견딜 수 없이 버거워질 때면 나는 나만의 작고 따뜻한 상자 속으로 숨어든다. 그것은 뜨거운 물 아래에 오래 서 있거나, 무겁고 부드러운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일이다. 따뜻함이 피부에 닿으면, 얼어붙었던 긴장과 뾰족했던 마음들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러고도 남은 찌꺼기들은 밖으로 나가 흙을 밟으며 털어낸다. 발끝이 땅에 닿는 일정한 리듬에 기대어 걷다 보면, 머릿속에 엉켜 있던 축축한 상념들이 어느새 마른 수건처럼 가지런히 개켜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소녀가 어두운 상자 속에서 자신을 지우려 했다면, 나는 그 고요한 산책과 따뜻한 이불의 온기 속에서 다시 내일을 살아낼 숨을 긷는다. 3. 태어날 때부터 쥐어진 것들은 종종 나를 오해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가만한 눈매에서 사람들은 쉽게 매정함을 읽어냈다. 나를 이루는 기질의 네 글자(ESTJ)가 내 모든 행동의 이유로 납작하게 취급될 때나, 맏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양보를 요구받을 때도 그랬다. 동생 역시 맏이의 그늘에서 나름의 서러움을 삼켰으리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누구도 원해서 맏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아비의 눈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미의 매질을 속수무책으로 견뎌야 했던 소녀와 달리, 나는 세상이 내게 씌운 꼬리표들 앞에서 굳이 나를 깎아내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읊조릴 뿐이다. 어쩌라고. 타인의 서툰 잣대에 나를 우겨넣는 대신, 나는 그저 내 몫의 잣대를 쥐고 나의 길을 걸어간다.
아직은 날아서 도망칠 수 없었다. 우리가 병아리를 집어 올리자 미친듯이 작게 고함치며 노란 몸이 고동쳤다.
남극 폭풍 P.123,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갑자기 나는 아무도 알면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
남극 진저 로저스 설교 P.105,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슬래퍼 짐이 춤을 출 줄 알았다면 죽지않을 수 있었다'를 말하고 싶었던 건가 싶습니다. 성장과 호기심으로 방출된 아이의 에너지에 공격당했어도, 그래서 반응한 자기의 욕망에 무릎을 끓었어도 춤을 출 수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까?
춤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셨어요? @baubo 님!😊
1. 당연하게 실수할 것을 알면서도 한 발 한 발 배우고 계속 움직일 것. 2. 잘못, 죄, 충동, 절망,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던지지 말고 살아볼 것. 3. 모순, 복잡 가운데서도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낼 능력, 거리를 둘 능력, 살아낼 뻔뻔함을 갖출 것 .
언니가, 노래하는 계산원이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남극 노래하는 계산원 P.139,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노래하는 계산원 발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만 골라서 답하셔도 됩니다. 🟥1. 동생은 언니가 우체부와 있는 동안 묵묵히 밖으로 심부름을 돌며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나 보호막 덕분에 내가 무사히 일상을 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나요? 🟥2. 절망적이고 막막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삶을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버텨내는 방법을 찾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깊은 위기나 상실을 겪었을 때,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 나만의 생존 방식은 무엇이었나요? 🟥3. '노래하는 계산원'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로 해석하셨나요? P.139 언니가, 노래하는 계산원이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먹어." 내가 말한다.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남극 노래하는 계산원 P.140,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화상 발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만 골라서 답하셔도 됩니다. 🟥1.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던 중, 뜻밖의 사건이나 소동을 계기로 갑자기 거리가 좁혀졌던 경험이 있나요? 🟥2. 바퀴벌레 소동이 끝나고 비로소 하나의 연대감을 느낀 그날 밤,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는 어떤 대화나 감정이 오고 갔을까요? 🟥3.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화상(Burns)'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위로 새살이 돋아나기도 합니다. 과거의 뼈아픈 경험이 오히려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긍정적인 자양분이 될 수 있을까요? 🟥ps. 이 작품은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가족'을 정의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 같이 보고 있다. 다 같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자신들의 심작박동 소리가 들린다. 물이 한 방울 싱크대에 똑 떨어지자 온 가족이 하나가 된 듯 격렬하게 움직인다.
남극 화상 P.155,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 발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만 골라서 답하셔도 됩니다. 🟥1. 화자가 아이 이름으로 '대프니(여성 이름)'를 제안했을 때, 남성은 "남자애한테는 이상한 이름이네."라고 반응합니다. 살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소통의 단절'의 벽을 깊게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2.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역할이나 관습 중에서, 본인 세대에서 과감히 끊어내고 싶었거나 실제로 단절을 결심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3. 소설은 명확한 해피엔딩이나 파국을 제시하지 않고 열린 결말을 보여줍니다. 낡은 관계를 끊어내고 홀로 글을 쓰기로 한 화자의 이후 삶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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