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의 <말뚝들> 혼자 읽어볼게요.

D-29
사무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엉거주춤 일어나 파티션 너머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 직원은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인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뭘 상기시키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방송이었다. 덕분에 장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고민 없이 자리를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내막을 들었다.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솔직히 많이 흐려졌다. 내 개인적인 일정과 상황이 더 중요하게 된 이후로는 나도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가방에 계속 달고 다니는 노란 리본 뱃지를 떼도 되지 않을까? 이젠 이 뱃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책을 보면서 아직도 기억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만나니 좋았다. 역시 계속 아플 수밖에 없겠구나. 말뚝들을 만나면 눈물이 나고 외면하면 눈물이 싹 사그라지는 게 생각난다. 모두에게, 나에게도 말뚝이 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서 간만에 손을 못 놓고 후루룩 다 읽었다. 기록 남기면서 독서모임 때까지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다른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위에 <파이이야기>를 공유했었는데 다음 질문이 바로!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일단 너무 재밌게 후루룩 읽을 수 있어서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주인공 장의 행동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할말 하는 편이라 속도 시원하니 읽을 맛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우는 걸 싫어하는, 눈물을 잃어버린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네요.
완독한 자신에게 주는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맨날 독서모임 날짜가 다가오면 선정된 책을 급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미리 후루룩 다 읽어서 뿌듯했다. 완독 축하축하! 그믐에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책도 너무 재밌었다. 얼른 이 책에 대해서 사람들이랑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확률에 걸고 이기거나 지는 것. 지는 것에도 이기는 것 만큼 쾌감이 있다. 그게 도박과 삶의 무서운 점이었다.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78, 김홍 지음
"쟝한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돼요?" 장은 말문이 막혔다. 데보라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질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장에게 응당 일어나야 할 일이 벌어졌는데 왜 의문을 갖느냐는 물음 같았다. 신을 믿지 않아서? 신성 모독을 일삼아서? 친구를 고발해서? 그중에 어떤 것이라고 해도 장이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라는 말이에요?" "아니죠.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 돼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하략)."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84-5, 김홍 지음
"무슨 생각 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거짓말.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건 없어요. 말하기 곤란한 걸 생각할 때 그렇게들 말하죠." 데보라의 말을 듣고 장은 생각해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과연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지금 어딘가에서 우리처럼 울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네요." "신기해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86-187, 김홍 지음
장과 데보라의 대화도 참 좋았다. 대화가 반짝 반짝 빛나는 느낌.
"나중에 같이 한번 울어요.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었는데 같이 운 적은 없잖아요."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88, 김홍 지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속 시원하던 장의 말들이 점점 진해진다. 같이 우는 사이라니 참 좋을 거 같다.
데모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렇게 외면하면 눈물이 멈추네요." "맞아요. 울고 싶지 않으면 잘 숨어 있어야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무엇을요?" "이렇게 계속 살아가요? 말뚝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그러면 하염없이 울고?" "어쩌면 이 말뚝들이 나와 관계있을지도 몰라요." "어떤 관계?" "들어볼래요?" "계속 듣고 있잖아요. 나, 그런 거 좋아해요."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88, 김홍 지음
이런 대화를 나는 평생 바라고 있는 듯. 너무 좋았고 부럽다.
장은 떠올렸다. 저 많은 말뚝들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서 있던 바다의 풍경을. 파도가 그렇게 시끄러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92, 김홍 지음
어떻게든 진실을 이해시켜야 했다. 그는 이미 자기가 아는 진실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199, 김홍 지음
손해보는 걸 싫어하는 장이 아정씨 남편에게 오해받기를 자처할 줄 몰랐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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