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의 <말뚝들> 혼자 읽어볼게요.

D-29
장은 그 앞에 서서 아는 사람의 글씨를 한참 바라봤다. 안다고 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굳이 따지면 그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았다. 그의 어떤 것은 알 것 같기도 했는데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많았다. 너무 힘든 기억과 너무 힘이 되는 기억이 순서 없이 떠올라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하기가 매번 힘들었다. 그때의 모든 일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게 틀림없었다. 장이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빚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린다.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300-301, 김홍 지음
"너의 모든 운을 여기서 시험하지 마."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303. 작가의 말, 김홍 지음
우리는 불행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매일 매시간, 숨을 쉴 때마다 밀려오는 이 소소하고도 거대한 악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까. 사실 아주 오래된 의문이었다. 지금껏 계속 답을 찾았고, 여전히 찾고 있는 깊은 궁금증. <말뚝들>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작가에게서 한 가지 힌트를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닥치든 눈을 부릅뜨고 꼿꼿하게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 그리고 농담을 멈추지 않을 것.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305-306 강화길(소설가) 추천의 말, 김홍 지음
부채도 자신이라는 말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도 있다. 서로의 마음에 진 빚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빚은 변제되지 않은 채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한다. 말뚝들에 총을 쏘고 말뚝들을 통제하고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장면들이 소설 속 이야기 같지 만은 않은 시대에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눈물의 의미를 <말뚝들>은 묻고 있다. 더 정확하고 용기 있게 슬퍼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p.208 서영인(문학평론가) 추천의 말, 김홍 지음
어제 독서모임 완!! 요즘 딴생각 할 게 많아 하고 싶은 말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책 속에서 언급하고 싶던 부분은 아쉽지 않게 꺼낸 거 같아서 좋았다. 다음부턴 모임 끝나고 바로 그믐에 정리해야겠다. 독서모임 하고 나면 뭔가 들뜨고 못다한 말이 아쉽고 그래서 마음이 붕붕 뜬다.
모임 때 각자 이 책의 평점을 물어봤을 때 난 8.8점을 줬다! 사람들의 평균 점수는 8점 정도였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혼란 덕에 점수가 좀 깎였던 거 같더라. 나는 상황이 엉망진창 이상해서 0.8점을 더 준 것 같다. 재밌었다.
장의 서사와 사회적 서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7점을 준 분이 계셨고, 그 이야기를 듣고 다른 분이 재난이라는 건 느닷없이 벌어지기 때문에 누가 납치한 건지 중요하지 않다고 이어서 말해주셨다. 왜 하필 장한테 말뚝이 집 앞까지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는 장은 책 속에서 유일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어서 그런 거 같다고 하셨다. 직접 사비로 50만원을 줬고, 직접 말뚝을 들고 공장을 찾아가기도 했기에!
모임에서 이 책이 재난, 불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고 좀 지난 지금 나한테 남은 이야기는 '재난'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독서모임하면서 아 맞다, 이거 재난이 큰 키워드였지! 하고 깨닫고 놀랐다. 나한테 남은 이야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모임에서 책 내부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가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짚어서 이야기하지 못했다. 세월호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고 계엄 이후 또 계엄을 하게 된다는, 이번에는 그때 와 다른 강한 계엄이었다는 설정도 헉하게 됐다. 데이식스 노래나 현재성이 좋아서 지금 딱 읽을 때 확 다가오는 게 있었다.
인걸님은 책에서 처음에는 장이 성만 나오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름 석자가 나오는 걸 보고 이 책이 외면했거나 무시했거나 몰라봤던 '이름'을 찾는 내용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종교적인 부분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데 요즘 사람들이 경제적인 거,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댈게 돈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윤리, 도덕 이런 것도 나를 지켜주는 것 같지 않아서 미덥지 않고.... 또렷하지 않은 이런 저런 단상들을 이야기했는데 인걸님이 이렇게 덧붙여주셨다. 부자와 빈자는 통제력의 있냐 없냐로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믿음에 기대야 하는, 재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걸 겪는 사람들이 다 빈자일 확률이 높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획을 통해 삶을 주도권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돈이 중요하니 종교 이런 법률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며 이야기했다.
<말뚝들>은 재밌고 든든한 책이었다.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믐에 남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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