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D-29
나만의 것을 얻어내면 그뿐 글에서 작가가 나이가 어려 아직 모르더라도 그게 진심이면 그걸 가지고 독자는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이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자기 것을 발굴하면 그만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자부심이 있는데 그걸 갖는 것은 좋고 아주 중요한 것이다. 실컷 가져라.
식욕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죽을 간신히 입으로 가져가는 지에를 보면서 앞으로도 계속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행복했던 시절, 몇 시간씩 아무 말 안 하고 있을 수 있었던 그 자연스러움이 이렇게 많은 일이 있은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심하게 얻어맞아 뼈가 부러지거나 이가 빠진 일도 있었다는데.
일본은 신흥 종교에 빠지는 것도 잘하고 개인적이지만 감정적인 것도 같다. 그리고 기독교가 기를 못 펴는 지구상 유일한 곳이다. 신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집안에 불단을 차려놓는 것도 신기하다.
도박에 미치면 돈에 환장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이 외설적인 포즈를 취한 지에의 사진을 돌려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이미지가 눈가에 떠올랐다.
물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핏줄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나뿐 아니라, 누구의 마음에나 살인 의식이 잠들어 있으면서 불려 나갈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내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대량학살이나 전쟁은 일어날 리 없다. 전쟁이 없는 시대에는 살인이 늘어난다고 몇몇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어머니도 창녀였다.
아버지와 만난 후 어머니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잠이 잘 오는 건 몸이 건강해서 잠도 잘 온다. 뭔가 컨디션이 안 좋고 근심이 있으면 잠도 잘 안 온다. 그게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잠이 잘 오는 것은 지금 내 상태가 좋다는 말과 같다.
빈털털이/빈털터리 ‘재산을 다 없애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뱅이가 된 사람’의 뜻으로는 ‘빈털터리’가 맞다. 한편 ‘털털이’는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한 사람’의 뜻으로 쓰인다. ‘빈털터리’는 ‘털털하다’와 아무 관계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어원을 밝힐 수 없는 경우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맞춤법 원칙 때문에 ‘빈털터리’로 쓰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가 ‘악바리(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세며 모진 사람)’인데 ‘악발다’라는 어원의 단어가 없으므로 ‘악발이’가 아니라 소리 나는 대로 ‘악바리’로 쓴다. 그녀는 돈 한푼 없는 빈털터리인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도박에 미쳐 살던 옆집 아저씨는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지영이는 타국에서 혼자 어렵게 공부를 하다 보니 악바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제풀에 정신이 돌아오면서 엄마는 할머니의 통곡과 악바리 같은 여자애의 울음을 동시에 들었다.
일본 소설에서 밀양의 송강호가 무조건 전도연에게 잘하는 것처럼 일본 소설은 둘이 잘 맺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기묘한 평화가 찾아왔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많은 것이 슬쩍 드러나는 행동이나 눈빛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했고, 대부분 그것은 서로 잘 맞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지에를 갖고 싶다는 격렬한 욕망에 눈이 멀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혼란을 혼란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는 게 아닐까.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영원히 풀 수 없는 또 하나의 혼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닐까.
한국 여자는 남자에게 다정하다, 정답다 는 말은 잘 안 쓰고 자상하다는 말을 더 잘 쓴다. 한국 여자들이 잘 쓰는 단어가 몇 있다.
"그럴 일은 없어. 내게는 지에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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