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개인병원과 환자들을 포기하고 나서 나는 소위 현실세계와의 마지막 접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뒤론 그저 식물과 동물들만이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지요. 이것들과는 그럭저럭 사이가 좋습니다. 쎌윈 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짓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작별인사로 내게 악수를 청했는데, 이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
『이민자들』 3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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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뮹
쎌윈 박사는 왜 무너졌을까요? 분명 잘 적응했는데 말입니다.
이민자 2세대 출신이지만, (영국에 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개인 병원을 운영할 만큼 성공한 의사의 삶을 살고, 안정된 결혼 생활도 이어갑니다. 겉보기에는 단단하게 구축된 삶이었으나, 그의 말년은 인간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물러난 채 사람과의 교류마저 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단상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침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침잠해 있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오는 기억들은 현재의 삶이 단단히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일수록, 한 인간을 더 쉽게 흔들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삶이 견고했기 때문에, 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꽃의요정
저도 왜 말년까지 잘 버티다가? 자살을 했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코뮹님처럼 읽고나서 어딘가 뻥 뚫린 기분에 다시 한번 더 읽었어요.
코뮹
이민자, 본인의 이름을 자행하여 바꾼 사람, 타국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는 현재를 살아가기보다 지나간 기억 속에 머무르는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묘하게 서글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요? 그저 마음 속에서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공간은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요. 쎌윈 박사는 그 방법을 찾지 못해서 작별인사로 악수를 청했나 봅니다.
코뮹
인간 사회를 떠나 동식물과만 관계를 맺는 모습이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마치 한 걸음 물러난 채 더 이상 본인을 규정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찾아서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 세계’와 일상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코뮹
어떤 일들은 아주 오랫동안 잊은 후에도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다시 떠오르는 법이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런 사실을 더 뚜렷하게 실감하고 있다.
『이민자들』 3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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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뮹
“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칠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는 것이다. ”
『이민자들』 3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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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뮹
안녕하세요. 오늘은 헨리 쎌윈의 박사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비교적 분량은 짧았지만, 화자의 시선을 따라 그의 주거지를 실제로 함께 거닐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제: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되었는데도,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코뮹
또 한편으로는 정체성이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비자발적으로 ‘이민자’라는 범주에 속하게 된 그의 삶에서 안정된 기반을 찾아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유독 더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 정체성과 평생을 싸웠을 것입니다.
코뮹
대개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지만, 쎌윈 박사에게는 오히려 정반대로 작용한 듯합니다.
혹은 이미 다른 자아를 끼워 넣은 채 살아가기 위해
어린 시절 이름, 출신, 언어를 스스로 지워 버렸다가,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 현재의 자아가 버틸 기반이 사라져 버린 걸까요.
(제가지금말을너무못하네요)
그러니까…. 망각을 통해 현재의 삶이 그럴 듯하게 굴러 가고 있었던 게 잊고 살아야만 유지되던 삶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재난을 맞닥뜨린 것처럼 한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결국 그러한 선택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코뮹
아직까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조금 더 읽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도 너무 두서 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보시고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아침바람
“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베른 지방 알프스 고지에서 보냈고, 날이 갈수록 등산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특히 마이링엔과 오비라르에서는 몇주 동안 머무르기도 했는데, 거기서 당시 예순다섯의 등산안내인 요한네스 네겔리를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네겔리에게 푹빠진 그는 수많은 산들을 네겔리와 함께 올랐다. 네겔리와 함께 보낸 그 시절처럼 편안했던 적은 그전에도 그뒤에도 없었다면서 쎌윈 박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략)
이제와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뒤늦게 깨닫는 사실이지만, 전쟁이 터지고 내가 징집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요한네스 네겔리와 작별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지요.
”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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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람
그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헤디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낯설게만 느껴졌지만, 네겔리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지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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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람
네겔리는 그가 7살에 떠나온 고향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고, 그의 아내 헤디는 그가 새롭게 정착했지만 어떤 이유로 도저히 마음 내릴수 없었던 땅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것 같애요.
그토록 열심히 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기도 했을것 같은데 평생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느낌은 전혀 보여지지가 않네요. 말년에 선택한 은둔과 삶을 그런식으로 끝낼 수 밖에 없던 절망은 어디서 비롯된것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침바람
“ 여름이되면 자동차를 타고 몇달 동안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지요. 당시에는 테니스를 빼면 자동차가 나의 가장 큰 취미였습니다. 그때 사놓은 차들이 아직도 차고에 있는데, 지금쯤은 아마도 제법 값이 나갈 겁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뭔가를 팔아볼 결심을 못했어요, 내 영혼을 팔았다고 할 수도 있는 한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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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람
“ 2차 세계대전과 그 뒤의 수십년간은 내게 암흑과도 같은 불운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려고 한들 하지 못할 겁니다. 1960년 개인병원과 환자들을 포기하고 나서 나는 소위 현실세계와의 마지막 접촉마죠 끊어버렸습니다 그 뒤론 그저 식물과 동물 들만이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지요. 이것들과는 그럭저럭 사이가 좋습니다. 쎌윈 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짓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내게 악수를 청했는데, 이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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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제발트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이민자들>을 읽기 시작했고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를 읽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유대인이었던 주인공이 인간성 상실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당한 깊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의 감동을 떠나서 일단 형식적으로 사진을 발굴해서 소설과 매칭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소설에 삽화를 삽입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데 사진을 삽입하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도였습니다. 그것도 내용과 너무나 어울리는 사진이라 소설이 허구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리뉴
저는 배경지식 없이 읽어서 읽다가 이게 허구인지 실제인지 헷갈렸는데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들이 있으니까 정말 몰입감이 들더라구요.
꽃의요정
네?!!! 전 소설로 읽다가 사진을 보고 에세이를 제가 착각하고 소설로 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었는데....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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