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D-29
그래서 파울은 1935년과 1936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오랫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 어두운 시절을 거들떠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베르동에서 보냈던 그의 생애 마지막 십년 동안에야 비로서 파울은 당시의 사건들을 알아볼 마음을 먹었고, 심지어 그럴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아마도 그는 사람의 가슴과 눈이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것들을 숱하게 보았을 것이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그는 평범한 수업을 돌연 너무나 멋진 체험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진정한 교사였지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물론 진심으로 S시를 혐오했고, 골수에 사무치도록 역겨워하던 그곳의 주민들과 함께 그 도시를 파괴하고 갈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울은 정말로 독창적으로 정원을 바꿔놓는 데 성공했어요. 어린 너무들, 꽃들, 관엽식물들과 덩굴식물들, 그늘을 만들어주는 담쟁이 화단,... 파울은 날씨가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매일 오후 정원에서 일했고, 가끔씩은 아무데나 앉아 날로 풍성해지는 초록을 느긋하게 바라보곤 했지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재판이 진행되면서 증거가 점점 더 늘어나, 결국에는 파울도 자신이 더이상 S시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민자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의 눈이 이렇게 오랫동안 훌륭하게 버텨준 것만도 고맙고 놀랍다는 것이 파울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파울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쥐털같은 회색의 시야가 점점 퍼져가는 것을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바야흐로 자신이 접어들게 될 새로운 세계는 이전보다 좁겠지만, 그래도 나름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상하게 생각하며 현관에 서 있는데, 파울의 방풍재킷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날 아침 파울이 사십년째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이라고 무심결에 하는 말처럼 이야기했던 그 재킷이 없었어요. 그 순간 나는 알았어요. 파울이 그 옷을 입고 나갔고, 살아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이예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결국 사람은 무엇때문에 죽는지 참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어릴적,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린다우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호숫가에 서서 기차가 육지에서 섬으로, 섬에서 육지로 달리던 모습을 매일 쳐다보았다고 하더군요. 파란 하늘로 솟아오르는 하얀 증기구름과, 열어놓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어대는 승객들, 그 아래 물에 비친 영상들 -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던 이런 광경들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휴가 내내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간 적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때 정말로 죽음의 형상을 보았던것 같아요. 하지만 순간적인 오해로 인해 느겼던 그 불안감은 아주 잠깐 지속되었을 뿐,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처럼 이내 사라져버렸지요.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84-185쪽을 읽고 이야기 나눠 봅시다!
저는 제발트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나중의 짜릿함을 더 생경하게 느끼고 싶어서 철저하게 도화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읽고 있는 초기작품인 ‘이민자들’부터 시작해서 갈수록 더 확장되는 그의 작품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는 후기를 봤습니다. 각 작품마다 눈에 띄는 발전이 있다고 해서 너무 기대되네요. ㅎㅎ
아직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이 문장들의 제발트의 사상을 대표하는 격일지는 잘 모르겠으나, 좋은 인터뷰 영상을 발견해서 공유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ssOL6olQ4
제발트의 문체나 영향 받은 작가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특히나 저는 제발트가 어떤 걸 중시하는 사람인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인터뷰였어요. 사실, 아직 그의 다양한 어록에 관해 무지한 상태라 이보다 더 좋은 영상이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이걸 먼저 시청하는 바람에 (?) 얘부터 들고 왔습니다.
* 전사 다운 받은 거라 오타 있을 수도 있음
Yes, your description corresponds very much to my intentions. I felt that it was necessary above all to write about the history of persecution, of vilification of minorities, the attempt — well-nigh achieved — to eradicate a whole people. 네, 지금 말씀하신 설명은 제 의도와 매우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박해의 역사, 소수자들이 모욕되고 배제되어 온 역사, 그리고 한 민족 전체를 거의 완전히 말살하려 했던 시도에 대해 써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And I was, in pursuing these ideas, at the same time conscious that it is practically impossible to write about concentration camps directly. So you need to find ways of convincing the reader that this is something that is on your mind, but that you do not necessarily roll out on every other page. The reader needs to be prompted that the narrator has a conscience, and that he has perhaps for a long time been engaged with these questions. 하지만 그런 생각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깨달았던 것은, 강제수용소에 대해 직접적으로 쓰는 일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이것이 작가의 마음속에 늘 자리하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다른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매번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요. 독자는 화자가 양심을 지닌 인물이며, 오랫동안 이런 문제들과 씨름해 온 사람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This is why the main scenes of horror are never directly addressed. I think it is sufficient to remind people, because we've all seen images — but these images militate against our capacity for discursive thinking, for reflecting upon these things, and also paralyze, as it were, our moral capacity. So the only way in which one can approach these things, in my view, is obliquely, tangentially, by reference rather than by direct confrontation. 이 때문에 가장 끔찍한 장면들은 결코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그 이미지들을 본 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미지들이 오히려 우리의 사유 능력, 즉 이런 문제들을 차분히 성찰하는 능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것들은 말하자면 우리의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기도 하지요.
그래서 제 견해로는, 이런 문제들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우회적으로, 직접적인 제시가 아니라 암시와 참조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It seems to me, though, that in addition to that, as one reads the book and one watches moths dying, or many of the images, it's almost as if this has become a poem of an invisible subject — all of whose images refer back to it — a metaphor that has no statement of its ground, only of its vehicle, as they used to say. 하지만 제게는 또 이런 느낌도 듭니다. 책을 읽다 보면, 예를 들어 나방이 죽어 가는 장면(아우스터리츠 내용이에요)이라든지 여러 이미지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들이 모두 어떤 보이지 않는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하나의 시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미지가 결국 그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말하자면, 그 토대가 무엇인지는 직접적으로 진술되지 않은 채, 오직 그것을 운반하는 이미지들만 제시되는 하나의 은유와도 같습니다. 예전 수사학에서 말하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근거는 드러나지 않고 매개만 남아 있는 은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Precisely. And Virginia Woolf offers a wonderful example of this — her description of a moth coming to its end on a windowpane somewhere in Sussex. It's a passage of some two pages only, I think, and it's written somewhere chronologically between the battlefields of the Somme and the concentration camps erected by my compatriots. 바로 그렇습니다. Virginia Woolf의 글에는 그에 대한 아주 훌륭한 사례가 있습니다. 서식스 어딘가의 창문 위에서 죽어 가는 나방을 묘사한 대목이 있지요. 제 기억으로는 두 쪽 남짓한 짧은 글인데,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솜 전투의 전장과, 제 동포들이 세웠던 강제수용소 사이 어딘가에 쓰인 작품입니다. There's no reference made to the battlefields of the Somme in this passage, but one knows, as a reader of Virginia Woolf, that she was greatly perturbed by the First World War, by its aftermath, by the damage it did to people's souls — the souls of those who got away and naturally of those who perished. I think that a subject which at first glance seems quite far removed from the undeclared concern of a book can encapsulate that concern. 그 글 안에서는 솜 전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독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그녀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여파,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영혼에 남긴 상처 — 살아남은 이들의 영혼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은 이들의 영혼까지 — 에 깊이 동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의 말해지지 않은 중심 관심사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바로 그 대상이 오히려 그 관심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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