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D-29
' 문학적 진실과 실제 사실과의 괴리를 통해 무언가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는 게 제발트 작품의 핵심인 것 같아요. 모든 등장인물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지만, 그들을 변형하고 조합해 소설적 창조물로 탄생시킴으로써 제발트가 의도한 것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인의 책임,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커피모임에서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글로 발표해도 좋을 만큼 멋진 문장들을 술술 읊었고, 나로서는 고작 어렴풋한 뜻만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인 난해한 단어와 숙어들을 사용했던 것은 기억에 남아 있다.
이민자들 85,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습진 때문에 밤낮으로 하얀 무명장갑을 끼고 다녀야 했던 테레스 언니는 여름 햇살 아래에 서 있으면 때때로 성녀처럼 보이기도 했어. 정말로 성녀였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언니가 평생 견뎌야 했던 일이 참 많았으니까 말이야.
이민자들 9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암브로스 외삼촌이 자란 환경을 생각해보면 어린이로 살 수 있었던 때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해야 할 거야.
이민자들 9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누구나 금세 알 수 있었듯이 외삼촌은 저쪽 편에 속하는 분이었지. 그 사실을 무시하거나 미화하는 친척들도 있었고, 때로는 정말로 모르는 친척들도 있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외삼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속 빈 강정처럼 보였지.
이민자들 11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내가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외삼촌을 뵈었을 때는 옷이 겨우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더구나.
이민자들 11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코즈모는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화재와 죽음과 들판에 뻗어 있는 시체들이 햇살 아래에서 썩어가는 광경을 자기 머릿속에서 본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들 120-121,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오로지 쏠로몬 가족의 온갖 집안일이 매일, 매시간 차질없이 진행되고, 늙은 쏠로몬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의 관심과 습관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데에만 정신을 쏟았지.
이민자들 125,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나는 외삼촌이 수많은 일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자기 자신과 연결시켜주는 추억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래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외삼촌에게는 고통이기도 했고, 자신을 해방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지. 말하자면 구원이자 가차 없는 자기파괴이기도 했던 거야.
이민자들 126-12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거인족의 아이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다른 세계의 폐허에서 마을 이름들을 골라 거기에 갖다 붙여놓은 것 같았다.
이민자들 13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내가 영락 없는 미친 사람이겠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이런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요.
이민자들 139,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 호화로운 나무궁전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불행이 쌓여갔는지 아마 아무도 제대로 모를 겁니다. 이제 병원 건물도 분해되어가는 중이니, 이와 함께 그 고통과 불행도 스러지기를 빌 뿐입니다.
이민자들 139,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당시에 이미 나는 아델바르트 씨의 그런 태도가 실은 자신의 사고능력과 기억능력을 가능한 한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말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민자들 143-14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내가 상식적인 추측을 완전히 벗어나서 도빌에는 여전히 어떤 특별한 것이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의 흔적, 푸른 가로수들이 늘어선 대로, 해변의 산책로, 상류사회나 화류계 인사로 가득한 관객 같은 것들 말이다.
이민자들 14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죽음 자체와 마찬가지로 묘지 또한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이프러스 나무를 한그루씩 심는다고 한다.
이민자들 168,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오늘날 협곡들은 대부분 천 년의 역사가 남겨 놓은 폐기물들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오물들이 흘러든다.
이민자들 179,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해방과 화평과 파괴가 그렇게 반복되면서 마침내 도시는 완전히 황폐해져버렸고, 찬양받던 땅의 막대한 부는 사라지고 부석거리는 돌만 남았다. 이제 도시는 지구 전역으로 흩어져간 예루살렘 시민들의 머릿속에서만 아득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민자들 181,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꿈속에서 나는 코즈모와 함께 요르단 지구의 번득이는 공허 속으로 들어갔다. 눈먼 안내자가 우리 앞에서 걸어간다. 그는 지팡이를 들어 지평선의 검은 점을 가리키며 되풀이하여 소리친다.
이민자들 181-18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민자들 185,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민자들』에서 '헨리 셀윈 박사' 이후에 실린 각각의 단편은 뒤로 갈수록 분량이 점점 더 길어지며, 『토성의 고리』에 이르면 그보다도 더 길어져 『아우스터리츠』에 다다르면 힐러리가 생각한 이상인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된다. 모두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작품임에도 여전히 내게 '헨리 셀윈 박사'가 가장 놀라움을 금치 못할 작품인 이유는 스무 쪽 남짓한 짧은 분량 안에 제발트의 비전의 정수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라, 침묵이여 - W. G. 제발트를 찾아서 41, 캐럴 앤지어 지음, 양미래 옮김
말하라, 침묵이여 - W. G. 제발트를 찾아서W. G. 제발트의 가족과 지인, 작중 인물의 실제 모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그의 인생 궤적을 따라 독일과 영국 곳곳을 누비고 미발표 원고와 편지, 교정지에 연구 논문까지 아우르는 광범하고 치밀한 문헌 조사를 병행하며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작가의 실체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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