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D-29
내가 수레에 쌓인 짐 위에 앉아 있었던 것, 말의 엉덩이, 광활한 갈색 대지, 농가의 진흙 마당에 목을 빼고 서 있던 거위들, 흐로드나 역 대합실 한가운데에 차단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던 과열된 난로, 그리고 그 주변에 몰려 있던 이민자 가족들도 기억 납니다.
이민자들 29-30,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도가 높게 일던 바다, 깃발처럼 펄럭이던 연기, 회색의 원경,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던 배의 움직임,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걱정과 희망, 이런 모든 것이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민자들 30,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민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갑판에 모여 자유의 여신상이 옅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지요. 우리 모두는 아메리쿰 -우리는 미국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으로 가는 표를 샀으니까요. 육지에 발을 내려놓았을 때도 우리는 신세계의 땅을, 약속된 뉴욕의 땅을 밟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지요. 타고 온 배가 다시 항구를 떠난 지 한참 뒤에야 우리는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도착한 곳이 뉴욕이 아니라 런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명백한 증거들까지 모두 무시하면서 오랫동안 고집스럽게도 미국에 도착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런던에서 자라게 되었어요.
이민자들 30-31,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뉴욕에 도착할 거라 믿었으나, 실은 런던에 도착해 있었다는 장면을 통해 추측해 보았는데, 애초에 쎌윈 박사의 성공한 의사로서의 삶이 시작된 터전, 런던이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이 아니라, 허구의 삶의 시작점이었던 게 아닐까요? 본인이 어디에 도착했는지도 모른 채 땅을 밟고, 새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기초를 세우고 인생을 구축해 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살아 온 사람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겠죠 (작은 충격도 아니었을 것 같고…….) 그의 중년기까지의 탄탄대로의 삶이 이렇게 어이 없는 행선지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왜 그렇게 크게 무너졌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그 시절에 나는 말하자면 새로 견진성사를 받는 심정으로 내 이름을 헤르슈에서 헨리로, 성을 쎄베린에서 쎌윈으로 바꾸었지요.
이민자들 32-3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1920~30년대에 우리는 아주 사치스럽게 생활했는데, 당신도 그 잔흔은 본 셈입니다.
이민자들 3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뭔가를 팔아볼 결심을 하지 못했어요, 내 영혼을 팔았다고 할 수도 있는 한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이민자들 32,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무엇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군요. 돈일 수도 있고, 결국 발각되고 만 내 혈통에 대한 비밀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그저 사랑이 식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제2차 세계대전과 그뒤의 수십 년 간은 내게 암흑과도 같은 불운의 시기였습니다. 나는 이 시기에 대해서는 말하려고 한들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이민자들 3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 구절에서 끝내 설명되지 않는 공백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유대인 혈통으로 인해 반유대주의 경험을 겪고 그의 삶에 깊은 균열을 남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로서는 제발트가 콕 찝어서 언급해 주지 않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이겠지요. 그럼에도, 어떤 계기로 쎌윈 박사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네요
1960년 개인병원과 환자들을 포기하고 나서 나는 소위 현실세계와의 마지막 접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뒤론 그저 식물과 동물들만이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지요. 이것들과는 그럭저럭 사이가 좋습니다. 쎌윈 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짓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작별인사로 내게 악수를 청했는데, 이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민자들 3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쎌윈 박사는 왜 무너졌을까요? 분명 잘 적응했는데 말입니다. 이민자 2세대 출신이지만, (영국에 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개인 병원을 운영할 만큼 성공한 의사의 삶을 살고, 안정된 결혼 생활도 이어갑니다. 겉보기에는 단단하게 구축된 삶이었으나, 그의 말년은 인간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물러난 채 사람과의 교류마저 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단상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침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침잠해 있다가, 어느 순간 되돌아오는 기억들은 현재의 삶이 단단히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일수록, 한 인간을 더 쉽게 흔들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삶이 견고했기 때문에, 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도 왜 말년까지 잘 버티다가? 자살을 했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코뮹님처럼 읽고나서 어딘가 뻥 뚫린 기분에 다시 한번 더 읽었어요.
이민자, 본인의 이름을 자행하여 바꾼 사람, 타국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는 현재를 살아가기보다 지나간 기억 속에 머무르는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묘하게 서글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요? 그저 마음 속에서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공간은 현재의 삶에서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요. 쎌윈 박사는 그 방법을 찾지 못해서 작별인사로 악수를 청했나 봅니다.
인간 사회를 떠나 동식물과만 관계를 맺는 모습이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마치 한 걸음 물러난 채 더 이상 본인을 규정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찾아서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 세계’와 일상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들은 아주 오랫동안 잊은 후에도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다시 떠오르는 법이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런 사실을 더 뚜렷하게 실감하고 있다.
이민자들 3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칠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이민자들 3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안녕하세요. 오늘은 헨리 쎌윈의 박사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비교적 분량은 짧았지만, 화자의 시선을 따라 그의 주거지를 실제로 함께 거닐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제: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되었는데도,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정체성이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비자발적으로 ‘이민자’라는 범주에 속하게 된 그의 삶에서 안정된 기반을 찾아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유독 더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 정체성과 평생을 싸웠을 것입니다.
대개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지만, 쎌윈 박사에게는 오히려 정반대로 작용한 듯합니다. 혹은 이미 다른 자아를 끼워 넣은 채 살아가기 위해 어린 시절 이름, 출신, 언어를 스스로 지워 버렸다가,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 현재의 자아가 버틸 기반이 사라져 버린 걸까요. (제가지금말을너무못하네요) 그러니까…. 망각을 통해 현재의 삶이 그럴 듯하게 굴러 가고 있었던 게 잊고 살아야만 유지되던 삶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재난을 맞닥뜨린 것처럼 한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결국 그러한 선택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아직까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조금 더 읽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도 너무 두서 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보시고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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