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D-29
물이 가득 찬 성수대를 들어 간단히 비워버릴 용기는 없었던 그들은 예수의 이 무진장한 심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곤 했다. 체계적인 방해공작일까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이 일이 기적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천상에서 내려온 암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번득이는 희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종교교사들이 모두 파울을 길 잃은 영혼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민자들 49,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항상 쾌활하고 즐거운 것 같았던 파울이 그럴 때면 마치 불행의 화신처럼 보였다. 이 불행이 도대체 어디에서 연원한느질르 내가 어느정도나마 알게 된 것은 루시 란다우 부인의 설명을 듣고 난 후였다.
이민자들 56,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나는 호숫가에서 쌩또뱅과 그 너머까지 불들이 줄지어 타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그 모든 일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벌어지는 줄만 알았지요. 물론 에르네스뜨는 암흑 속에서 빛을 뿜어대는 불꽃의 향연이 국경일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걸 밝혀서 나의 행복감을 깨뜨릴 만큼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이민자들 57-58,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이 앨범에 담긴 사진들을 보다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가 그들 속으로 섞여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앨범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이민자들 61,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울은 외딴 마을 W에서 처음 정규교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이름을 겨우 외울 수 있게 되자마자 갑자기 공문이 날아온 거예요. 파울도 이미 알고 있던 그 법규 때문에 교사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지요. 여름내 그의 가슴을 채웠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야말로 사상누각처럼 무너져버린 거예요. 미래라는 것이 그의 코앞에서 사라지던 그때, 파울은 처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어요.
이민자들 63-64,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
이민자들 65,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슬픈 소식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했고,
이민자들 70,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울이 끔찍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날 일어난 악독한 공격과 폭력들, 예컨대 (...) 당시 서른살이었던 지크프리트 로제나우가 창살에 목이 묶여 교살된 것만이 아니었다. (...) 유대인들의 비극을 고소해하는 태도가 읽히는 기사였다. 그런 일들은 끔찍한 폭력만큼이나 파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민자들 71,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우리는 항상 20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가, 한 시간이, 한 번의 맥박이 지나갈수록 모든 것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고, 아무런 특색도 없는 추상적인 것들로 변해갔다.
이민자들 72-73,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실제로 파울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쥣빛 시야가 점점 퍼져가는 것을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바야흐로 자신이 접어들게 될 새로운 세계는 이전보다는 좁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민자들 7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내가 징집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요한네스 네겔리와 작별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지요. 헤디와는 크리마스마스 즈음 베른에서 만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디만, 그녀와의 이별이 차라리 네겔리와 떨어지는 것보다 쉬웠으니까요."
"제2차세계대전과 그뒤의 수십년간은 내게 암흑과도 같은 불운의 시기였습니다. 나는 이 시기에 대해서는 말하려고 한들 할 수가 없을 겁니다. 1960년 개인병원과 환자들을 포기하고 나서 나는 소위 현싥세계와의 마지막 접촉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뒤론 그저 식물과 동물 들만이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지요."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
"1939년과 1945년에 파울이 독일로 돌아갔던 것은 그가 뼛속 깊이 독일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아마도 그로서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아마도 삼촌이 썼던 철도에서 끝을 본다는 표현이 그 지방에서 어떤 관용적인 의미로 쓰였는지 몰라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불길한 신탁을 들은 것처럼 꺼림칙한 기분이 남았어요.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때 정말로 죽음의 형상을 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순간적인 오해로 인해 느꼈던 그 불안감은 아주 잠깐 지속되었을 뿐,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처럼 이내 사라져버렸지요."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를 읽었습니다. 제발트 소설이 처음인데 사진 덕분인지 뭔가 수필을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 인터뷰집을 읽는 기분도 들었구요. 문장이 엄청 현학적이고 어려운 건 아닌데 읽으면 정보의 파편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두 단편 모두 주인공을 서술하는 제3자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읽으면서 굉장히 색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유대인으로서 엄청난 상실과 아픔을 준 일을 겪은 후 그 상실과 아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두 인물의 결말을 보니 무언가 그 허무함과 쓸쓸함이 밀려오더라구요... 이민자,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주인공이 역사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요히 휩쓸려가는 모습을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두 인물이 무너지는 과정을 인물의 내면으로 직접 서술하여 듣는 게 아닌 제3자로 듣는 서술 방식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파울 베라이터가 역추적해가는 방식을 택하여서 더욱 안타깝고 비극적인 느낌이 배가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파울의 절망감이 누적되는 과정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네요.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느낌이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파울이 우리를 잘 알고 이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들은 아무도 파울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뒤늦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파울의 수업은 언제나 지극히 직관적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학교를 벗어나 주변의 여러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수업을 중시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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