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연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장, 2장

D-29
유전자의 역할에 대한 과장, 그리고 이에 따른 잘못된 인식은 도킨스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현대 생물학을 통해 생명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만연된 잘못이다. … … 여기서 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던 점은 DNA 분자 안에 각인된 염기 서열 못지 않게 이것이 놓이는 세포 안의 물리적 여건과 이 세포가 놓인 주변 여건의 중요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DNA 분자가 지닌 정보적 측면에 지나치게 매료된 나머지, 이것이 정보로서의 기능을 나타내기 위한 상보적 여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38-39, 장회익 지음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바로 이 책 전체를 통해 추구할 내용이지만, 우선 이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유전자와 함께 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여건이 유전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 마치 상자가 구슬을 담고 있듯이 DNA 분자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 우리는 DNA 분자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무엇인지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을 통해 DNA 분자가 생명 또는 정보로서의 어떤 성격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0-41, 장회익 지음
그렇다면 DNA 분자가 정보를 지녔다는 말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특정한 성격의 세포 안에 놓일 때에 한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다. 즉, 정보라는 것은 DNA 분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DNA 부낮와 세포의 나머지 부분이 만날 때 비로고 우리가 정보라고 부르는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1, 장회익 지음
우리가 DNA 분자 밖에 놓인 이러한 여건들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DNA 분자가 이런바 ‘죽은 세포 안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생각해보면 된다. … 생명의 본질적 특성은 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성분 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함께하는 만남 속에서 찾아야 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2, 장회익 지음
DNA가 정보를 '담는' 것이 아니라 만남 속에서 정보가 '나타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정보·지식·기억이라는 개념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봐야 할지 궁금하네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말임에도 불구에도 대히트를 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본능적으로'(?) 협동보다 경쟁의 서사에 더 끌리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세포 안에서 유전자를 복사해내는 인쇄공은 누구인가? 대체로 말하면 세포 안의 나머지 부분이다. 더 정확히는 세포의 이 나머지 부분과 DNA 분자의 협동적인 작업이다. 이때 DNA 분자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약하여 거의 수동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정도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점에서 유전자의 성격을 ‘자체촉매적’(autocatalytic)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 DNA 분자로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신과 동일한 존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촉매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3, 장회익 지음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자기 복제’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암암리에 생명 활동의 주체를 유전자로 보는 현행 생물학계의 만연된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설혹 유전자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성품이라 불릴 어떤 것을 감추고 있다고 보더라도, 여전히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유전자가 하는 행위는 오히려 놀랄 만큼 ‘협동적’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협동의 결정적 증거는 유전자들이 단독 또는 소수로 존재할 수 없고 수천 또는 수만 종이 함께 존속해간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4-45, 장회익 지음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내걸고 진지한 해답을 추구하는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가는 존재들은 물과 탄소,수소 등에 대한 요구에 따르는 모습에서 보듯이 무도덕이며 기회포착적이다. 그들은 긴 역사를 통해 물질과 에너지와 정보로 구성되는 구조를 프랙털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5, 장회익 지음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정보가 DNA라는 분자 속에 들어 있다는 유명한 발견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드디어 생명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위대힌 발견이 기여한 가장 큰 공적은 생명의 정수라고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유전자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6, 장회익 지음
… 세포의 생사 판정을 주변의 여건과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생명이라는 것은 적어도 고립된 세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굳이 세포와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생명이라는 것은 세포와 이것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변 여건의 적절한 만남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7, 장회익 지음
어떤 대상이 살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적어도 암묵적으로 그것의 생존에 적절한 주변 여건과 함께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이지, 결코 그 신체만을 고립시켜놓고 말할 수는 없다. … 사실 우리의 신체 자체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 경계는 어떻게 취해야 할지 하는 문제들이 고리를 물고 나타난다. … 그래도 확실한 것은 살아 있음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생명’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생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48-49, 장회익 지음
몇 가지 소감 정리해보았습니다. (1) DNA가 정보를 '담는' 것이 아니라 만남 속에서 정보가 '나타난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정보·지식·기억이라는 개념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봐야 할지 궁금하네요. (2)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말임에도 불구에도 대히트를 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협동보다 경쟁의 서사에 더 끌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이기심을 과학적으로 증명받고 싶었던 걸까요? (3) 개체 문제 온생명론 내 낱생명-보생명 관계에서 보생명은 낱생명의 여집합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건 너무 스케일이 커서 국소적인 영역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회익선생님의 여러 책에 사용되고 있는 '작용체-보작용자' 개념이 유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작용체-보작용자는 어떤 기준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나누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우리가 방점을 어디에 두고 [작용체-보작용자] 단위로 괄호를 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세포 내의 핵을 작용체로 보면 가장 가까운 보작용자는 세포질이 될 것이고, 세포질을 작용체로 보면 그 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생명체의 생체조직(예를 들어 심장, 눈 등)이 보작용자가 될 것입니다. 생각이 뻗어나가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지적, 의견들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회익선생님의 온생명론에서 '온생명'의 개념이 조금씩 변천을 겪어온 것 같아서 옛날 책(초판)부터 찾아보았습니다. 책 전체에서 설명하고 있는 개념을, 한 문단만 뚝 떼어와서 소개하게 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감안하여 보시면 좋겠고, 원문을 더 찾아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과학과 메타과학 - 자연과학의 구조와 의미』 장회익. 1990. 지식산업사. p.198.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정상적 단위’로서 하나의 별—행성계 안에 상호 의존적으로 생존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작용체 및 그 보작용자의 총합을 생각할 수 있으며 이를 하나의 단위체로 보아 ‘우주적 생명’(global life)이라 부르기로 한다. 생명의 단위가 우주적 생명의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정상적 단위가 되는 것은 생명의 존재론적 구조가 본질적으로 ‘우주적 규모’(glabal scale)이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이러한 ‘우주적 생명’의 개념은 전체론적(holistic)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물리 및 생태계에 관한 물리적 법칙과 경험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도달한 개념이라는 점이다.
『삶과 온생명 - 새 과학 문화의 모색』 장회익. 1998. 솔. pp.178-179. 생명이란 "우주 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일부 국소 질서가 이와 흡사한 새로운 국소 질서 형성의 계기를 이루어, 그 복제 생성률이 1을 넘어서면서 일련의 연계적 국소 질서가 형성 지속되어 나가게 되는 하나의 유기적 체계" 라고 규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체계' 라고 할 때 이는 이러한 추상적 질서의 체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이를 구현하고 있는 물리적 체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만일 전자의 의미를 따른다면 추상 개념으로의 생명 개념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고, 후자의 의미를 따른다면 구체 개념으로의 생명, 즉 생명체에 해당하는 개념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 두 의미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문맥에 따라 양쪽으로 모두 사용하기로 한다. 일단 생명의 개념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나면 이 지구상에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형성되는 지속적 자유에너지 흐름을 바탕으로 대략 35억 년 전에 하나의 생명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지속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내에는 이것말고도 바로 이러한 의미의 생명이 또 다른 곳에서도 형성될 수 있으며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어떤 곳에 이러한 생명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양 지구 사이에 나타난 이 생명은 우주 내에 가능한 여타 생명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실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보는 지구상의 생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된 생명 개념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기존의 생명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생명 개념은 대체로 하나하나의 개별 생명체들을 접하는 가운데 이들이 지닌 공통점을 추상하여 얻은 것임에 반하여 이는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 현상을 그 연원과 더불어 여타 물리 현상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도출해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 개념은 그 내포에서뿐 아니라 그 외연에서도 기존의 생명 개념과 상당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는 이 개념을 기존의 생명 개념 과 구분하여 온생명global life' 이라 부르기로 한다. 각주 9) 필자가 '온생명'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것은 1988년 4월 유고슬라비아 두브로브닉에서 있었던 과학철학모임에서의 발표("The Units of Life: Global and Individual")인데, 이때 영문으로 이를 ‘global life’로 표기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올림픽 국제학술회의에서 역시 같은 명칭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그때의 글은 본 학술회의 논문집 영문판 그리고 이후 Zygon 24호에 실려 해외에 소개되었다. 한편 이 개념에 대한 우리말 표현은 두브로브닉 논문을 『철학연구』 제23집 (「생명의 단위에 대한 존재 론적 고찰]], 1988, 89~105쪽)에 번역하여 게재하면서 '세계생명global life’이라고 사용한 것이 처음이며, 그 후 이를 다시 ‘우주적 생명'(장회의, 앞의 책) 또는 우주생명' (장회의, 「우주생명과 현대인의 암세포적 기능」, 『녹색평론』 제2호, 1992, 6~24쪽) 등으로 표기해 보기도 하였으나 모두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로 고심하던 중 1992년 무렵 외람됨을 무릅쓰고 하나의 새 용어인 ‘온생명'이란 말을 만들어내게 되었다(장회의, 「가이아 이론: 그 과학성과 신화성」, 『과학사상』, 제4호, 1992, 140~157쪽 및 그 이후의 글들). 그러나 영문으로는 여전히 'global life' 라는 표현이 무난할 듯하여 이 글에서는 '온생명global life’의 형태로 소개한다. 이 명칭과 관련해 그간 야기시킨 혼란에 대해, 그리고 새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경위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촉구한다.
특히 '각주 9)'는 '온생명'이라는 용어로 자리잡기 전에 어떤 이름들을 고민하고 사용했는지 설명하고 있어서, 이 개념에 담고자 했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p.57-58 … 생명이란 것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물음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체계의 모습을 그려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이 지닌 바른 모습이자 우리가 생존해가기 위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이 구비되어 그 안에서 '살아 있음'이라 불릴 현상이 출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의 모습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이것만으로 생명 현상을 이루어내게 될 그 전체를 묶어 하나의 실체로 파악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진정 한 단위이다. 이러한 실체는 생명 현상이 자족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못 미치는 것은 생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생명이 갖추어야 할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이는 기존의 생명 개념, 곧 우리의 일상적 생명 개념과 달리 생명의 참모습을 나타낼 새로운 개념이다. 그래서 이러한 새 개념을 적시할 새 명칭이 필요한데,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가리켜 온생명glbal life’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세포, 유기체 등 개별 생명체에 속한 것으로 보아온 생명 개념을 이 개념에 대비해 ‘낱생명’이라 지칭한다. 즉, 낱생명이란 개별 생명체들의 ‘살아 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 생명체가 온생명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생명으로서의 성격을 부여받는 ‘조건부적 생명’에 해당한다. p.105. 생명은 자체촉매적 국소 질서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그 안에 구현하는 자체 유지적 체계이다. 여기서 각 국소 질서의 기본 조직은 지속성을 지닌 규제물 들에 의해 특정되는데, 이 규제물들은 열린 진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57-58, p.105, 장회익 지음
반면 존재론적 의미가 분명한 또 하나의 존재자는 분리 불가능한 복합질서로서의 이차질서 전체를 하나의 실체로 보는 경우다. 이것은 바탕질서 안에 출현한 최초의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이후 긴 시간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그간 변형된 바탕질서와 현존하는 다양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전체로 이루어진 복합질서를 말한다. 이것은 자체의 유지를 위해 더 이상 외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체 충족적이고 자체 유지적 실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생명이라는 관념이 내포할 수 있는 모든 속성을 갖춘 가장 포괄적인 존재자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의 약점이라면, 이것은 너무도 포괄적이어서 이 안에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반면 내적 변별성이 그만큼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 이제까지 이러한 생명으로는 오직 하나만 알려져 있다. 바로 태양-지구계 위에 형성되어 약 40억 년간 생존을 유지해가고 있는 '우리 생명이다. 이것은 지구상에 형성된 최초의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에서 현재 우리들 자신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계통적으로 연계된 모든 조상을 비롯해 지금 살아있거나 지구 위에 살았던 적이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는 태양을 비롯해 무기물이든 유기물이든 이 복합질서를 가능하게 한 모든 필수적인 요소들을 기능적 전체로 포괄하고 있으며, 이 복합질서에 속하는 것들과 현실적인 연계가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볼 때, 어떤 존재자에 대해 '생명' 혹은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자격을 굳이 부여해야 한다면, 위에 논의한 세 가지 존 재자 가운데 세 번째가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생명'이라는 호칭을 명시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온생명 global Ite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 p.373-375, 장회익 지음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과학자들을 넘어 인문학자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물리학자인 장회익 명예교수의 신간이다. 저자가 여든이 넘는 삶을 돌아보며 일생을 천착한 연구 여정을 200자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이 한 권으로 모아 정리했다.
사실상 죽은 세포 안에서도 DNA 분자는 상당한 기간 동안 거의 완전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이라는 활동이 본질적으로도 이것이 기능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이라는 활동이 본질적으로 유전자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42p, 장회익 지음
“‘생명이란 것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인데, 이것도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체계의 모습을 그려보면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것이 구비되어 그 안에서 ‘살아 있음’이라 불릴 현상이 출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것이 바로 생명의 진정한 단위이다. 이러한 실체는 생명 현상이 자족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못 미치는 것은 생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생명이 갖추어야 할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이는 기존의 생명 개념, 곧 우리의 일상적 생명 개념과 달리 생명의 참모습을 나타낼 새로운 개념이다. 그래서 이러한 새 개념을 적시할 새 명칭이 필요한데,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가리켜 ‘온생명’(global life)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세포 유기체 등 개별 생명체에 속한 것으로 보아온 생명 개념을 이 개념에 대비해 ‘낱생명’이라 지칭한다. 즉, 낱생명이란 개별 생명체들의 ‘살아 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 생명체가 온생명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생명으로서의 성격을 부여받는 ‘조건부적 생명’에 해당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57-58, 장회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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