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연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장, 2장

D-29
암세포는 숙주의 몸에 침투한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라 그 신체의 일부다. 암세포가 정상적인 세포와 다른 점은 오직 자신을 더 증식시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증식만을 해나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암세포는 끝없이 증식만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결국 숙주 생명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가로막아 숙주 생명체를 죽음으로 이끌어간다. 인간 또한 암세포처럼 온생명의 중요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온생명의 정상적 생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번영과 증식만을 꾀함으로써 온생명의 몸, 곧 생태계를 크게 파손시키고 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238p, 장회익 지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글이었습니다.
암이라는 질병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지금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170만 년 전 호미닌 화석에서 발견된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오래됐다고 하네요. 꽃의요정님 말씀을 듣고 보니, 엽록체나 미토콘드리아처럼 숙주와 한 몸이 돼버리는 외부 생명체처럼 암도 숙주와 공생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해집니다. 인간도 그렇게 지구와 공생할 수 있는 날이 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하기 전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궁금, 걱정이 되네요.
제가 지구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암에 대한 내용도 그렇지만 아래 문장 수집한 내용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 어느 작가님이 이런 식으로 계속 살다가는 2050년이 되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닥 틀린 생각 같진 않습니다.
네, 저도 인류 문명의 미래가 참 암담하고 암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장회익선생님은 의외로 상당히 긍정적이세요. ^^;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우리가 잘 쓸 수 있는 방향을 계속 모색해오셨고, 심지어 지금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나가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세미나를 해보면 장회익선생님만 걱정을 덜 하시고, 나머지 참여자들은 대체로 인공지능을 쓰기는 하지만 두렵고 무섭고 앞날이 걱정된다고 하더군요. 저도 후자고요. -,-
흔히 오늘날의 이 멸종 사태를 두고 여섯 번째 초대형 멸종 사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번 멸종 사건은 분명히 앞선 다섯 번의 멸종 사건들과 그 성격을 달리한다. 앞선 다섯 번의 경우 대체로 초대형 외계 운석의 충돌 또는 이에 버금가는 지구상의 자연재해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으나, 오늘의 이 멸종은 그 원인이 오로지 인간의 행위에 있다. 그러니까 온생명이 겪은 기존의 질환은 모두 외부 충격에 따른 외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오늘의 질환은 온생명의 어엿한 한 구성원인 인간의 과잉 번영에 의한 내과적 질환에 해당하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277p, 장회익 지음
바가바드 기타에는 "모든 것이 진정 하나라는 것을 본 사람은 남을 해침으로써 자기를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290p, 장회익 지음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생명 이론은 기본적으로 '자체 생성성autopoiesis’이라는 다분히 의인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체생성성'이라는 용 어는 '자체auto’라는 말과 '생성poiesis’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제안된 것이 다. 그 제안자인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이것을 "물질을 자기 자신 속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그 작동의 산물이 곧 자신의 조직이 되게 하는 체계" 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생명체가 지닌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본다. 이들은 특히 '조직organization’이라는 말과 '구조 structure'라는 말을 애써 구분하려 한다. 이들이 말하는 '조직'은 구성 요소 상호 간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개념이며, 구조는 조직이 물리적으로 구현될 때 이루어진 물리적 실체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2, 장회익 지음
이러한 개념은 앞서 소개한 로젠의 '관계론적 생물학'에서 말하는 성분'과 이것이 지닌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을 해볼 수 있다. 즉, 하나의 '성분'이 모체계와의 관련 아래 어떤 기능을 나타낼 성격을 지닐 때 이름 '조직'의 한 단위로 인정할 수 있으며, 이것이 그 자체로서 지닌 물리적 실체로 인해 하나의 독자적 정체성을 부여받을 때 구조의 일부로 보는 셈이 된다. 우리가 이러한 점을 인정한다면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로젠의 이론이 가지는 것과 동일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성격을 더욱 큰 '조직' 안에서만 생존이 유지되는 세포나 유기체와 같은 개별 생명체에 부여하려할 경우 자체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72-73, 장회익 지음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 개념은 세포나 낱생명(유기체) 보다는 오히려 온생명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고 뒤이어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들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자체생성성은 외부로부터 어떠한 도움을 받거나 주어서는 안 되는 개념인데, 세포나 유기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나 유기물질이 유입되지 않으면 생명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생명 이론은 그 대상으로 세포와 함께 유기체를 염두에 두고 이들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것은 … 이런 생명체들이 지닌 주요 성격을 근사적으로나마 잘 나타내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 이 개념은 오히려 우리가 말하는 온생명에 더 적절하게 적용될 성격을 지 닌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체생성성'은 온생명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자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외부에서 어떤 도움을 받거나 외부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체생성성'이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움을 주고받을 바에야 이를 굳이 '자체생성적'이라 부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타체생성적allopoienic'이라는 용어를 도입하기도 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5, 장회익 지음
마투라나는 살아 있는 체계들이 물질의 출입에 대해서는 열려 있지만 관계의 동력에 대해서는 닫혀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체계 자체의 독자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 세포나 유기체 같은 개별 생명체들은 모두 더 넓은 관계의 사슬에 매여 있으며, 따라서 이 ‘관계의 동역학’은 닫힌 것이 아니라 더 큰 ‘관계의 동역학’의 한 부분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4, 장회익 지음
그녀의 나무들은 패트리샤가 의심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사회적이다. 개별 존재란 없다. 심지어 분리된 종조차 없다. 숲의 모든 것들은 숲이다. 경쟁은 협조의 끝없는 변종에 속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오버스토리-203p, 장회익 지음
얼마 전에 다른 그믐방에서 열렸던 책의 한 구절인데 이 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올려 봅니다.
오버스토리<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 올해의 책 선정, 맨부커상 최종후보작.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난 작가 리처드 파워스의 신작. 미대륙의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네, 저도 『오버스토리』 조금 밖에 못 봤지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책이었어요. 모두 연결돼있지만 우리 인류가 문명이라는 역사를 거쳐오면서 하나씩 혹은 뭉텅이로 괄호 밖으로 내보내온 것 같습니다.
유기체에 적용된 기준으로 보면 세포는 자체생성성을 지녔다고 할 수 없으며, 반대로 세포에 적용된 기준으로 보면 유기체가 순환형 조직을 가졌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마투라나와 바렐라도 자신들의 규정에 담기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이것들을 본질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영향perturba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돌리고 있다. 이와 함께 자체생성성 이론에 관련하여 더욱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은 개별 생명제들이 결코 자체생성적일 수 없다는 너무도 명확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6, 장회익 지음
그런데도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들의 사고 속에 물질(에너지)의 층위와 관계(조직)의 층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질(에너지)의 층위와 관계(조직)의 층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관계의 층위에만 주목하면서 물질의 층위를 그 아래에 깔린 하나의 상수로 취급한다. 이 점은 앞에서 인용한 마투라나의 언급, 즉 "이 체계는 물질의 출입에 대해 열려 있지만 자신을 산출하는 관계의 동역학에 대해서는 닫혀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이들이 굳이 '조직'과 '구조를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물질의 출입' 또한 '관계'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관계의 주요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마투라나가 말하는 '관계의 동역학'은 이러한 '물질의 출입'에 따라 규정되는 '관계이기에, ‘물질의 출입’도 관계의 한 담지자로 봐야 할 것이지 단지 배경에 깔린 하나의 상수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활동의 원천이 되는 자유에너지의 출입마저 ‘관계;에서 제외한다면 이들이 말하는 ‘관계’는 도대체 무엇에 의해 유지된단 말인가?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로젠도 그렇고, 마투라나와 바렐라처럼 관계를 중시하고 연결을 중시하고 doing(함)을 중시하는 분들이, 그저 개체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이렇게 유기체라는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걸까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관련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 이론이 비교적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리학에서 출발하여 생명에까지 폭넓은 사고를 한 것으로 인정되는 카프라Fritjof Capra는 그의 저서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에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론을 중요한 개념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 또 한 그들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을 살아있음의 한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을 우리의 일상적 생명 관념에 부합하는 최선의 개념 정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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