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연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장, 2장

D-29
(1) 참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따금 이런 물음을 던져본다. 나는 진정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이 물음이 필요한가? 혹시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허깨비가 내 안에 들어앉아 내 행동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내가 내 삶 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 터. 그러니까 내가 진정 내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내 행동들을 결정하고 있는 그 어떤 존재가 과연 나 자신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또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p.241-249, 장회익 지음
p.241~249에 긴 박스글이 있습니다. 장회익선생님이 어느 분의 부탁으로 쓰신 글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한 삶의 주제로서 정 말 내가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 이 책에 재수록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를 몇 달에 걸쳐 그믐에서 읽어갈 계획을 하고 이곳에 모임을 열었는데, 제가 다른 일로 여력이 없어서 계속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녹색아카데미(https://greenacademy.re.kr)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거나 세미나에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모임을 닫기도 아쉽고, 수료증을 드리기 위해서는 글 100개가 돼야 해서(^^;) 이 박스글 중 일부를 연달아 올리려고 합니다. 모임에 참여해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오! 처음부터 다시 읽으신 줄 알았어요. 끝까지 책임지고 모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르구인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에 또 뵈어요!
^^ 감사합니다! 꽃의요정님 덕분에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위에 글을 좌르륵 올린 이유는, 글이 100개가 넘어야 수료증 발급이 된다고 해서, 인상 깊은 박스글을 하나 골라 좍~ 올렸습니다. ^^;;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안에 별도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박스글들이 좀 있는데요. 재미있고 중요한 글이 많습니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30쪽에 있는 "진리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도 과학에서 이뤄지는 질문과 답 찾기에 내포된 순환 논리, 인식 주체의 역할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 맞아요. 저도 책의 전체적인 내용도 좋았지만, 연두색 박스 안에 있는 글(특히 수녀님께 부탁 받았는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는)이 더 흡인력 있어 집중해서 읽었어요. ^^ "진리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저도 이 문장 읽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까묵 ㅎㅎ
ㅎㅎ 이미 아시는군요! 그리고 각 챕터마다 마지막에 있는 '생각해볼 거리'도 좋습니다. 1장 질문은 <쥐라기 공원>과 관련된 거라 더 재밌어 보이네요. 그동안 생명과학이 너무 발달해서 지금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2) 이를 생각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되새겨보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자기 행동의 선택을 자기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자기 내면에 있는 그 무엇이 이런 행 동의 선택에 가담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면에 무엇이 있기에 그 안에서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가?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것부터 말한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각종 본능들이 있다. 이는 나 그리고 내 종족의 존속을 위해 내 몸 에 구현된 매우 중요한 생리적 기능의 일부이다.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할 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몸이 적절한 온도 영역에서 벗어났을 때 추위 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3) 이와 함께 내 안에는 또 이러한 본능들을 억제할 문화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배가 고프기는 하나 남의 음식을 함부로 집어 먹어서는 안 되며, 덥거나 춥더라도 상황에 따라 이를 견뎌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많은 경우 내 성장 과정에서 교육적으로 주입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터득되기도 한다. 또 내 안에는 그 무엇을 이루거나 갖고자 하는 염원이 들어 있다. 현재의 상황이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기에, 더 나은 상황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이를 지향하려는 심리적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또 더 나은 그 무엇을 해야 하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뚜렷이 잡히지 않아 불안해하거나, 이를 놓고 고민하는 마음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내 안에는 그 어떤 대상을 사랑 하거나 미워하는 심정도 함께한다. 내 안에는 또 특정의 정치적 이념이 있고 불교적 신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의식하든 안 하든 간에 그 어떤 형태의 가치관이 내 내면에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4)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고 이것들이 이리저리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 행위를 결정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이것들을 빼버린다면 내 안에 나라고 불릴 그 무엇이 더 이상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내가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들의 총체에 불과할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나는 여전히 이것들에 이끌려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내가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인정하기에는 어디엔가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이것들 안에, 이것들을 조정하는,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전히 주체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그 무엇, 끝없이 내려가도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그 무엇을 나는 끝내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그 무엇이 있을 때, 이것을 놓고 비로소 이게 바로 나'에 해당하는 것이라 말해도 좋지 않을까?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5)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것이 존재하는가? 이제 내 내면을 좀 더 깊이 파헤쳐 보자. 무엇이 내 가장 깊은 내면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본능, 내 안에 심어진 가치관, 내가 항상 열망해온 그 어떤 성취의 꿈 등이 뒤엉켜 때로는 서로 맞물려 들어가고 때로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때그때의 행위가 결정되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설혹 자신의 주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결국 어느 선에서인가 이들에게 결정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당도한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는 이들의 작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내게 주어지고 심어진 것이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말 하기가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당면하고 있는 커다란 딜레마이다. 내가 나 자신을 애써 찾아보니 그것은 이미 밖에서 주어진 그 무엇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찾아보려 애써도 이것 이외에 또 다른 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6) 그러니까 설혹 나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나임을 일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책임질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나는 이렇게 되게끔 만들어진 존재이니까 내가 나를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고, 따라서 좋든 나쁘든, 잘했든. 못했든 간에 그것은 내가 이제할 바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둘은 결국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임을 할 수 있다.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한 실제가 지닌 두 개의 측면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나라고 여 기는 순간 이것은 내 주체의 관할 아래 들어오게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7) 어떤 이유로 이것이 나'가 되었든 일단 이것이 바로 나라고 여기는 이상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내 책임 아래 들어오게 된다. 한마디로 이것이 나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이를 내가 주제로 여기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일 뿐,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선에서 주체적 판단을 포기하고 이러한 요인들에 나 자신을 맡겨버린다면, 그 순간 바로 나는 '나'이기를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내가 '나' 된다는 것, 곧 내가 한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한 주체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미 나 자신을 비판하고 수정해야 하며, 이는 다시 내가 나 자신을 만들어가 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그 어느 것에도 매임이 없는 전적으 로 내 고유의 작업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를 어떻게 해나갈까 하는 문제 또한 내 스스로가 해결해가야 한다. 이는 곧 내가 자신에게 가하는 비판적 행위가 내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의 기준도 모두 넘어서야 하는 극한적 대결의 지속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나 자신에 대해 최대한의 충실을 기한다는 이야기가 되며, 이는 다시 내 내면을 뚫고 들어가 끝없이 나 자신의 깊이를 되새기는 일이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8) 이에 견주어 최대한의 충실을 기하지 않는 삶, 진정한 의미에서 나 자신이 되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은 그러니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삶을 위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생각을 멈춘다든가, 어느 선에서 더 이상의 추구를 포기하고 내 기존의 내부 결정 기구에 내 행위를 내맡기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의 기존 관념에 매여 더 이상의 반성적 사고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사람의 생애를 성장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거의 아무런 반성적 사고를 하지 않는 다. 그는 단지 본능에 의해 몸을 움직이고 있으며 또 본능적 생리에 의해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그러다가 점차 두뇌의 기능이 활발해짐에 따라 주위의 사물은 인식하게 되고, 부모의 보살핌과 함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행동의 규범을 익히게 된다. 이렇게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치면서 사고의 기능이 크게 향상되지만 아직 독자적인 통합적 사고의 단계에는 이르지 않는다. 이런 성장기를 거쳐 대략 청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르면 기존의 행태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반성적 사고의 단초를 드러낸다.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다시 경험과 사고가 성숙해짐에 따라 반성적 사고 또한 어느 정도 향상되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점진적으로 정체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노년에 이르면 많은 경우 새로운 사고를 하기보다는 기왕의 사고에 고착되어버 리는 성향을 가진다. 그러니까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실한 자신의 삶을 사는 기간이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9) 물론 사람이 지닌 이러한 성향을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아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사고를 지니든 본인으로서는 이에 만족하고 이를 즐 길 수도 있으며, 이러한 삶이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삶도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며 더구나 제3의 척도에 의해 이것의 본원적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시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의식적인 내 결단이 아닌 어떤 다른 것 에 따라 내 행위가 결정되는 것은, 그것이 설혹 내 안에 들어있는 무엇이고 그 결과가 설혹 내게 만족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내 삶의 주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내 삶의 소중함이 바로 이 주체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때, 내 사고가 이렇게 고착되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소중함을 그만큼 덜어버리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삶 그 자체가 아무리 존중되어야 하고 또 본인과 주변에 만족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주체적 삶이 지니는 이런 반성적 자세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주체적 삶을 통해 자신이 기여할 중요한 한 가지 가능성을 방기해버리는 결과가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0) 그렇다면 주체적인 삶을 통해 내가 기여할 중요한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뚫고 내려가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곧 나라고 하는 것이 나를 만들어주고 있는 이 전체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은 내 작은 몸과 내 짧은 생애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체 생명에서 왔고 더 큰 전체 생명과 맞물려 활동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명명했듯이 이 전체 생명을 '온생명'이라 이를 때, 내 몸은 바로 이 온생명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주체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나는 이미 온생명을 주체로 살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온생명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1) 나는 물론 이러한 내 활동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이러한 내 삶은 일단 내 생애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 한시적으 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이 이 온생명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안에서 이를 주체적으로 영위할 시간과 여건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한계에 대해 너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 안에 서도 가치와 의미의 차원에서는 무제한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즉, 제한된 여건 아래 무제한의 의미를 담아낼 가능성을 나는 이미 내 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점을 나는 종종 흔히 릴레이라 불리는 이어달리기 경기를 통해 생각해본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은 한 팀에 넷 또는 그 이상의 선수가 나와서 바통을 주고받으며 일정한 거리를 나누어 달리는 경기인데, 우리 삶이 이 경기와 매우 흡사하다. 이어달리기 선수가 바통을 받아 자기에게 할당된 구간을 달리게 되듯 내가 살아가는 것도 어느 날 현생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아 한평생을 살아가 다가 마침내 다음 세대에게 이를 물려주고 조용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2)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어달리기 경주에서는 바통을 받아 쥐기 전부 터 내가 이 경주에 참여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음에 비해 우리의 삶에서는 경주가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비로소 내가 지금 바통을 쥐고 달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각별히 의식하지 않는다면 뜀박질이 다 끝날 때까지도 자기가 지금 이런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마칠 수도 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삶 또한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현역으로 뛰는 이 기간에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바로 이 이어달리기 경기를 빼닮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이어달리기 경기는 훨씬 더 깊은 의미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이어달리기의 경우, 참여하는 전수들은 모두 이중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지닌다. 팀 전체로서의 자신과 그 일원으로서의 자신이 그것이다. 경기에 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담 전체로서의 승부가 주 된 관심사이지만, 그 일원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기여 여부 또한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자기 팀이 이겼더라도 자기 자신이 여기에 별 기여를 하지 못 했다면 그만큼 기쁨이 덜할 것이고, 자기는 잘했는데 팀이 졌어도 그것 또한 원통한 일이 된다. 우리의 삶도 이러하다. 삶의 이어달리기에서 우리는 태고로 부터 이어지는 삶 전체, 곧 온생명으로서의 자신과 그 일원인 낱생명으로서의 자신으로 여기에 참여한다. 이것이 '큰 나', 곧'온 생명으로서의 나'와 '작은 나’, 곧 낱생명으로서의 나'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3) 우리는 흔히 낱생명으로서의 나만을 의식하고 온생명으로서의 나는 잊어버리고 사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대개 나라는 것이 출생할 때에 나타나서 사망할 때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낱생명으로서의 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내 몸을 비롯하여 내 삶 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부모 혹은 그 위의 몇몇 선조들에게서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적어도 수십억 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지며 지구와 태양, 그리 고 그 안의 전체 생태계가 하나로 엮여 기능하고 있는 커다란 한 생명체, 곧 온생명의 일부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4) 그러니까 이 커다란 생명체가 '큰 나를 이루는 것이고, 다시 한 개인의 생애에 해당하는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활동이 흔히 생각하는 나, 곧'작은 나를 이 무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내가 의식해야 할 것은 팀의 승패, 곧 온생명의 성공적 인 생존이 일차적인 것이며, 다시 이 팀의 일원으로 내가 현역으로 뛰면서 여 기에 어떻게 기여하느냐 하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즉, 나 또한 온 생명으로서 그리고 날생명으로서 이중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삶의 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삶 그 자체가 가지는 본원적 가치와 주체적 삶이 지니는 이런 독특한 성격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은생명으로서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지닌 본원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인데, 이는 마치 이어달리기 경기에서 팀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반면 낱생명으로서의 나는 내게 주어진 내 삶의 몫을 살아내야 하는데, 이는 곧 이 어달리기 경기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내 몫을 뛰고 있는 입장에 해당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5) 여기서 내 몫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개체로서의 내 신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주체적으로 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주체성이 결여된다면 내가 한 생명 현상의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은 되어도 이를 진정한 의미의 '내 삶'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말했듯이 하나의 삶이 지니는 삶으로서의 깊이는 여기에 가해지는 내 주체성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내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나는 여기서 매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온생명은 이미 30~40억 년에 걸쳐 이어달리기 경주를 해왔으면서도,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려온 대부분의 주자들은 자신이 이러한 경주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참여해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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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책 증정] 『모든 계절의 물리학』을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증정]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하다! 《시간의 물리학》 북클럽마음의 그림자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로저 펜로즈의 양자역학적 의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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