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연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장, 2장

D-29
마투라나는 살아 있는 체계들이 물질의 출입에 대해서는 열려 있지만 관계의 동력에 대해서는 닫혀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체계 자체의 독자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 세포나 유기체 같은 개별 생명체들은 모두 더 넓은 관계의 사슬에 매여 있으며, 따라서 이 ‘관계의 동역학’은 닫힌 것이 아니라 더 큰 ‘관계의 동역학’의 한 부분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4, 장회익 지음
그녀의 나무들은 패트리샤가 의심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사회적이다. 개별 존재란 없다. 심지어 분리된 종조차 없다. 숲의 모든 것들은 숲이다. 경쟁은 협조의 끝없는 변종에 속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오버스토리-203p, 장회익 지음
얼마 전에 다른 그믐방에서 열렸던 책의 한 구절인데 이 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올려 봅니다.
오버스토리<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 올해의 책 선정, 맨부커상 최종후보작.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난 작가 리처드 파워스의 신작. 미대륙의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네, 저도 『오버스토리』 조금 밖에 못 봤지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책이었어요. 모두 연결돼있지만 우리 인류가 문명이라는 역사를 거쳐오면서 하나씩 혹은 뭉텅이로 괄호 밖으로 내보내온 것 같습니다.
유기체에 적용된 기준으로 보면 세포는 자체생성성을 지녔다고 할 수 없으며, 반대로 세포에 적용된 기준으로 보면 유기체가 순환형 조직을 가졌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마투라나와 바렐라도 자신들의 규정에 담기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이것들을 본질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영향perturba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돌리고 있다. 이와 함께 자체생성성 이론에 관련하여 더욱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은 개별 생명제들이 결코 자체생성적일 수 없다는 너무도 명확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6, 장회익 지음
그런데도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들의 사고 속에 물질(에너지)의 층위와 관계(조직)의 층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질(에너지)의 층위와 관계(조직)의 층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관계의 층위에만 주목하면서 물질의 층위를 그 아래에 깔린 하나의 상수로 취급한다. 이 점은 앞에서 인용한 마투라나의 언급, 즉 "이 체계는 물질의 출입에 대해 열려 있지만 자신을 산출하는 관계의 동역학에 대해서는 닫혀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이들이 굳이 '조직'과 '구조를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물질의 출입' 또한 '관계'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관계의 주요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마투라나가 말하는 '관계의 동역학'은 이러한 '물질의 출입'에 따라 규정되는 '관계이기에, ‘물질의 출입’도 관계의 한 담지자로 봐야 할 것이지 단지 배경에 깔린 하나의 상수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활동의 원천이 되는 자유에너지의 출입마저 ‘관계;에서 제외한다면 이들이 말하는 ‘관계’는 도대체 무엇에 의해 유지된단 말인가?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로젠도 그렇고, 마투라나와 바렐라처럼 관계를 중시하고 연결을 중시하고 doing(함)을 중시하는 분들이, 그저 개체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이렇게 유기체라는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걸까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관련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 이론이 비교적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리학에서 출발하여 생명에까지 폭넓은 사고를 한 것으로 인정되는 카프라Fritjof Capra는 그의 저서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에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이론을 중요한 개념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 또 한 그들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성성을 살아있음의 한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을 우리의 일상적 생명 관념에 부합하는 최선의 개념 정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77, 장회익 지음
(1) 참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따금 이런 물음을 던져본다. 나는 진정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이 물음이 필요한가? 혹시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허깨비가 내 안에 들어앉아 내 행동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내가 내 삶 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 터. 그러니까 내가 진정 내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내 행동들을 결정하고 있는 그 어떤 존재가 과연 나 자신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또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p.241-249, 장회익 지음
p.241~249에 긴 박스글이 있습니다. 장회익선생님이 어느 분의 부탁으로 쓰신 글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한 삶의 주제로서 정 말 내가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 이 책에 재수록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를 몇 달에 걸쳐 그믐에서 읽어갈 계획을 하고 이곳에 모임을 열었는데, 제가 다른 일로 여력이 없어서 계속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녹색아카데미(https://greenacademy.re.kr)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거나 세미나에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모임을 닫기도 아쉽고, 수료증을 드리기 위해서는 글 100개가 돼야 해서(^^;) 이 박스글 중 일부를 연달아 올리려고 합니다. 모임에 참여해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오! 처음부터 다시 읽으신 줄 알았어요. 끝까지 책임지고 모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르구인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에 또 뵈어요!
^^ 감사합니다! 꽃의요정님 덕분에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위에 글을 좌르륵 올린 이유는, 글이 100개가 넘어야 수료증 발급이 된다고 해서, 인상 깊은 박스글을 하나 골라 좍~ 올렸습니다. ^^;;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안에 별도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박스글들이 좀 있는데요. 재미있고 중요한 글이 많습니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30쪽에 있는 "진리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도 과학에서 이뤄지는 질문과 답 찾기에 내포된 순환 논리, 인식 주체의 역할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 맞아요. 저도 책의 전체적인 내용도 좋았지만, 연두색 박스 안에 있는 글(특히 수녀님께 부탁 받았는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는)이 더 흡인력 있어 집중해서 읽었어요. ^^ "진리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저도 이 문장 읽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까묵 ㅎㅎ
ㅎㅎ 이미 아시는군요! 그리고 각 챕터마다 마지막에 있는 '생각해볼 거리'도 좋습니다. 1장 질문은 <쥐라기 공원>과 관련된 거라 더 재밌어 보이네요. 그동안 생명과학이 너무 발달해서 지금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2) 이를 생각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되새겨보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자기 행동의 선택을 자기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자기 내면에 있는 그 무엇이 이런 행 동의 선택에 가담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면에 무엇이 있기에 그 안에서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가?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것부터 말한다면 내가 지니고 있는 각종 본능들이 있다. 이는 나 그리고 내 종족의 존속을 위해 내 몸 에 구현된 매우 중요한 생리적 기능의 일부이다.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할 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몸이 적절한 온도 영역에서 벗어났을 때 추위 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3) 이와 함께 내 안에는 또 이러한 본능들을 억제할 문화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배가 고프기는 하나 남의 음식을 함부로 집어 먹어서는 안 되며, 덥거나 춥더라도 상황에 따라 이를 견뎌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많은 경우 내 성장 과정에서 교육적으로 주입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터득되기도 한다. 또 내 안에는 그 무엇을 이루거나 갖고자 하는 염원이 들어 있다. 현재의 상황이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기에, 더 나은 상황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이를 지향하려는 심리적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또 더 나은 그 무엇을 해야 하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뚜렷이 잡히지 않아 불안해하거나, 이를 놓고 고민하는 마음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내 안에는 그 어떤 대상을 사랑 하거나 미워하는 심정도 함께한다. 내 안에는 또 특정의 정치적 이념이 있고 불교적 신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의식하든 안 하든 간에 그 어떤 형태의 가치관이 내 내면에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4)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고 이것들이 이리저리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 행위를 결정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이것들을 빼버린다면 내 안에 나라고 불릴 그 무엇이 더 이상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내가 아니라 이러한 모든 것들의 총체에 불과할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나는 여전히 이것들에 이끌려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내가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인정하기에는 어디엔가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이것들 안에, 이것들을 조정하는,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전히 주체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그 무엇, 끝없이 내려가도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그 무엇을 나는 끝내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그 무엇이 있을 때, 이것을 놓고 비로소 이게 바로 나'에 해당하는 것이라 말해도 좋지 않을까?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5)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것이 존재하는가? 이제 내 내면을 좀 더 깊이 파헤쳐 보자. 무엇이 내 가장 깊은 내면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본능, 내 안에 심어진 가치관, 내가 항상 열망해온 그 어떤 성취의 꿈 등이 뒤엉켜 때로는 서로 맞물려 들어가고 때로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때그때의 행위가 결정되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설혹 자신의 주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결국 어느 선에서인가 이들에게 결정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당도한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는 이들의 작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내게 주어지고 심어진 것이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말 하기가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당면하고 있는 커다란 딜레마이다. 내가 나 자신을 애써 찾아보니 그것은 이미 밖에서 주어진 그 무엇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찾아보려 애써도 이것 이외에 또 다른 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6) 그러니까 설혹 나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나임을 일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책임질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나는 이렇게 되게끔 만들어진 존재이니까 내가 나를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고, 따라서 좋든 나쁘든, 잘했든. 못했든 간에 그것은 내가 이제할 바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둘은 결국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임을 할 수 있다.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한 실제가 지닌 두 개의 측면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나라고 여 기는 순간 이것은 내 주체의 관할 아래 들어오게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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