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연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장, 2장

D-29
(10) 그렇다면 주체적인 삶을 통해 내가 기여할 중요한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뚫고 내려가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곧 나라고 하는 것이 나를 만들어주고 있는 이 전체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은 내 작은 몸과 내 짧은 생애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체 생명에서 왔고 더 큰 전체 생명과 맞물려 활동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명명했듯이 이 전체 생명을 '온생명'이라 이를 때, 내 몸은 바로 이 온생명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주체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나는 이미 온생명을 주체로 살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온생명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1) 나는 물론 이러한 내 활동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이러한 내 삶은 일단 내 생애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 한시적으 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이 이 온생명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안에서 이를 주체적으로 영위할 시간과 여건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한계에 대해 너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 안에 서도 가치와 의미의 차원에서는 무제한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즉, 제한된 여건 아래 무제한의 의미를 담아낼 가능성을 나는 이미 내 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점을 나는 종종 흔히 릴레이라 불리는 이어달리기 경기를 통해 생각해본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은 한 팀에 넷 또는 그 이상의 선수가 나와서 바통을 주고받으며 일정한 거리를 나누어 달리는 경기인데, 우리 삶이 이 경기와 매우 흡사하다. 이어달리기 선수가 바통을 받아 자기에게 할당된 구간을 달리게 되듯 내가 살아가는 것도 어느 날 현생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아 한평생을 살아가 다가 마침내 다음 세대에게 이를 물려주고 조용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2)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어달리기 경주에서는 바통을 받아 쥐기 전부 터 내가 이 경주에 참여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음에 비해 우리의 삶에서는 경주가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비로소 내가 지금 바통을 쥐고 달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각별히 의식하지 않는다면 뜀박질이 다 끝날 때까지도 자기가 지금 이런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마칠 수도 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삶 또한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기여하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현역으로 뛰는 이 기간에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바로 이 이어달리기 경기를 빼닮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이어달리기 경기는 훨씬 더 깊은 의미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이어달리기의 경우, 참여하는 전수들은 모두 이중의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지닌다. 팀 전체로서의 자신과 그 일원으로서의 자신이 그것이다. 경기에 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담 전체로서의 승부가 주 된 관심사이지만, 그 일원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기여 여부 또한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자기 팀이 이겼더라도 자기 자신이 여기에 별 기여를 하지 못 했다면 그만큼 기쁨이 덜할 것이고, 자기는 잘했는데 팀이 졌어도 그것 또한 원통한 일이 된다. 우리의 삶도 이러하다. 삶의 이어달리기에서 우리는 태고로 부터 이어지는 삶 전체, 곧 온생명으로서의 자신과 그 일원인 낱생명으로서의 자신으로 여기에 참여한다. 이것이 '큰 나', 곧'온 생명으로서의 나'와 '작은 나’, 곧 낱생명으로서의 나'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3) 우리는 흔히 낱생명으로서의 나만을 의식하고 온생명으로서의 나는 잊어버리고 사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대개 나라는 것이 출생할 때에 나타나서 사망할 때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낱생명으로서의 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내 몸을 비롯하여 내 삶 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부모 혹은 그 위의 몇몇 선조들에게서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적어도 수십억 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지며 지구와 태양, 그리 고 그 안의 전체 생태계가 하나로 엮여 기능하고 있는 커다란 한 생명체, 곧 온생명의 일부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4) 그러니까 이 커다란 생명체가 '큰 나를 이루는 것이고, 다시 한 개인의 생애에 해당하는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활동이 흔히 생각하는 나, 곧'작은 나를 이 무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내가 의식해야 할 것은 팀의 승패, 곧 온생명의 성공적 인 생존이 일차적인 것이며, 다시 이 팀의 일원으로 내가 현역으로 뛰면서 여 기에 어떻게 기여하느냐 하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즉, 나 또한 온 생명으로서 그리고 날생명으로서 이중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삶의 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삶 그 자체가 가지는 본원적 가치와 주체적 삶이 지니는 이런 독특한 성격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은생명으로서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지닌 본원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인데, 이는 마치 이어달리기 경기에서 팀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반면 낱생명으로서의 나는 내게 주어진 내 삶의 몫을 살아내야 하는데, 이는 곧 이 어달리기 경기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내 몫을 뛰고 있는 입장에 해당한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5) 여기서 내 몫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개체로서의 내 신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주체적으로 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주체성이 결여된다면 내가 한 생명 현상의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은 되어도 이를 진정한 의미의 '내 삶'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말했듯이 하나의 삶이 지니는 삶으로서의 깊이는 여기에 가해지는 내 주체성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내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나는 여기서 매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온생명은 이미 30~40억 년에 걸쳐 이어달리기 경주를 해왔으면서도,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려온 대부분의 주자들은 자신이 이러한 경주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참여해왔다는 점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6)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는 내가 여기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 온생명의 우주적 승부가 판가름 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이 거대한 생명이 30~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깨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인간은 바로 이 온생명의 '정신'에 해당하는 위치에 놓여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개체로서의 나는 비록 제한된 기간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독자적으로 참여하여 하나의 주체로서 기여하게 될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부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7)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게 이런 소중한 기회가 부여되었는지, 또 나라고 하 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도 아직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우주 안에 좋 인 온생명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물줄기가 어떤 신비한 목표를 향해 내달고 있는지 아직 소상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한명한 것은 나는 이 거대한 삶의 무대에 이미 올라와 있으며, 그 어떤 연습이 아닌 실제의 삶을 이미 영위하 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내가 이 거대한 생명의 주체가 되어 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여기서 내가 취할 태도는 오직 최 선을 다해 바른 삶의 방향을 찾아 나가겠다는 마음가짐 이외에 어떤 다른 것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18) 이를 위해 나는, 내 안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그 어떤 본능이나 취향 그리고 고착된 그 어떤 가치관에도 매이지 않고, 항상 더 분명한 그리고 더 신뢰할 만 한 앎을 최선을 다해 추구하면서, 이것이 말해주는바 내 최선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자세를 추구할 때 모든 것을 아우르며 가장 깊은 바닥 을 훑고 떠오르는 내면의 내 목소리가 내 삶 전체를 통해 울려나오게 된다. 반 면 내 앞의 작동이 끝나고 더 이상 이 생생한 내면의 목소리가 올려나오지 않 을 때, 내 주체는 주체로서의 기능을 잃게 될 것이고, 내 손에 돌린 생명의 배동 은 오직 굴러가는 관성 덩어리로 굳어버릴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 생명의 바른 모습, 물리학의 눈으로 보다 p.241~249, 장회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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