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같이 읽어요.

D-29
20세기의 포스트모던과 달리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지방에서는 아직 지역공동체가 건재했고, 전근대적 통념과 습관을 지닌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폭주족 같은 형태로 지역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 청년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는 포스트모던의 대안으로 프리모던​(전근대)이 잔존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랫폼은 점점 더 우리의 행동에 압력을 가하고,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선동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타임라인에 떠오른 정의를 의심치 않는 이들의 충돌은 정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포스트모던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목적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던 속에서 우리의 행동과 태도는 어디까지가 자유의 산물인지, 나는 새삼 묻고 싶다. 이 거대한 질서 속에서 당신은 얼마나 자유롭고, 또 얼마나 부자유로운가, 하고 말이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이 책을 읽을수록,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안전과 청결에 대한 댓가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 흔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 또한 너무 많기에 예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수록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장의 2번째 읽기를 하는 중입니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서로에게 불편이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개개인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해악의 원칙을 포함한 공리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1 5장과 6장에서 보았듯,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드러낼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안에서 활발하게 시민운동이 펼쳐진 서양 사회와, 최대한 자신의 주장을 억제하고 시위와 파업은 물론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엄마에게마저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일본 사회는 둘 다 ‘공리주의의 실현’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지라도 그 내용은 전혀 같지 않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밀이 《자유론》에서 기술한 공리주의와 해악의 원칙은 현대의 개인주의를 고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개념임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밀이 예상했던 사회는 다양한 인간과 의견이 공존하며, 주류 사상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비주류에게까지 강요되지 않는 사회였다. 계급 상승을 지향한 부르주아적 사상과 라이프스타일이 모든 개인을 옭아매는 사회는 분명 아니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매매와 의사소통의 자유, 출신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결혼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는 대채로 밀의 지향대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사회계약이라는 삼위일체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즉 부르주아 계급에서 출발한 사상과 라이프스타일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만 실현된 것이다. 지역공동체적 사상과 라이프스타일은 더 이상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주의 역시 대안적 사상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더 많은 행동과 태도가 위해 요소이자 민폐로 간주되고, 더 많은 행동과 태도가 일탈로 규정되어 의료와 복지의 관리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념은 둘째치고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주류의 관습과 통념, 부르주아 계급에서 비롯된 다양한 생활 규범에 맞춰 행동하며, 해악의 원리를 위반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애써야만 한다. 이 약속을 어기고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했다가는 언제 어느 순간 타인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다만 내가 확인해두고 싶은 것은, 오늘날 도쿄에서 해악의 원리를 충실히 지키려면 밀이 상정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까다로운 행동 기준을 고수해야 하며, 공리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그 자유를 크게 제약한다는 점이다. 《자유론》을 떠올려보면 밀은 분명 이런 사회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사회가 진보할수록 사회는 ‘남성 부르주아처럼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적합한 형태로 변화한다. 실제로 현재 사회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를 낳고 싶거나 기르고 싶은 남녀에게 최적화된 사회는 아니다. 사회가 진보하고 개인의 부르주아화가 심화될수록 아이를 낳고 기르기 어려운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근대 시민사회가 뿌리내릴 틈도 없이 일본에서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사회계약의 논리가 대도시권에서 지방으로 침투되었고, 도시의 시민운동과 지방의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동시에 집어삼켰다. 시민운동보다 사생활이 우선시되는 일본 사회는 청결하고 건강하며 질서 정연한, 언뜻 근대 시민사회와 비슷해 보이나 전혀 다른 형태의 다양성을 띠게 되었고, 각각의 개인은 기업화되고 부르주아적 주체가 된 삶을 살게 되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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