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

D-29
나는 한동안 이같이 어중간한 상태로 있었고,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며 어떤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을 것인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집에 가는 것만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꺼려졌던 터였고, 육지에 좀 머물다 보니 내가 겪은 고초에 대한 기억도 점차 사라져 버리니, … 다시 항해할 기회를 살피게 되었다. 나를 처음에 아버님의 집에서 끌어내온 그 액운이, 팔자를 고쳐보겟다는 황당하고 경박한 생각으로 내 등을 떠밀고, 그런 망상을 워낙 강력하게 내 안에 심어 놓아서 옳은 충고나 아버님의 간곡한 부탁과 명령마저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게 만든, 바로 그 액운인지 뭔가가 이제 사업 중에서도 가장 불길한 사업을 내 눈앞에 제시했고, 나는 그만 아프리카 해안을 향해 떠나는 배에 올라탔으니. 뱃사람의 속된 표현대로 기니(Guinea)행 여행길*을 떠났던 것이다. (* 노예무역선을 탔다는 뜻.)
로빈슨 크루소 p.27-28,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크루소는, 고생할 때는 집에 갔어야 했는데라며 온갖 후회를 하고 조금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노예무역선까지 타게 됩니다. 기니는 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지역이네요. '아프리카 서부의 열대우림 및 해안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위 지도를 보면 여러 나라들이 이 지역에 있습니다. 노예무역선들이 대서양 쪽 ㄱ자 모양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주로 사람을 '잡아갔'다고 하는데, 크루소가 탄 배가 바로 그런 배들 중 하나군요. -,- https://www.britannica.com/place/Guinea-region-Africa 기니공화국은 '기니' 지역의 서쪽 끝 해안에 접해 있는 나라입니다. 위 이미지와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tinyl.co/4Qtq
네. 저도 주석에서 기니로 갔다는 말이 노예무역선을 탔다는 말이라는걸 보고 아하 했어요. 흑 그럼 항해에서 얻은 돈도 그런 '무역'으로 번 돈이었을까요 😢
네, 노예무역선 맞습니다. 크루소와 그의 이웃 농장주 친구들이 싸게 노예를 구하려고 서로 돈 모아서 배를 마련하고 항해 경험이 풍부한 크루소를 합류시켜서 항해를 떠났던 거죠. -,-;; 당시 노예무역은 정부 수준에서 독점하고 관리하고 있어서 비쌌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크루소는 불법으로 사람 납치하러 가다가 조난을 당한 셈이죠. 사람을 납치하는데 합법/불법이 있었다는 것도 참 말도 안 되는 역사네요.
로빈슨 크루소가 탄 배가 노예무역선이었군요.
[…] 내 경우도 그렇고 이후에도 늘 주위를 보면,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이란 이런 문제를 이성이 이끄는 대로 결정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참으로 불합리하고 합당치 않게 흘러가는 법이어서, 다시 말해, 죄를 짓는 것은 창피해하지 않지만 뉘우치는 것은 창피해하고, 의당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손가락질당해도 싼 행동은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뿐인데도 수치로 여기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느 선생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그 말씀이 생각나네요.
이 항해가 내가 한 모든 모험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인데, … 이 항해는 나를 항해사이자 상인으로 변신시켜 주었으니, 귀항했을 때 나는 투자한 금액을 사금 5파운드 9온스로 늘렸고 귀국해서 이것을 런던에서 환전하니 거의 300파운드가 되었던 터, 이로 인해 이후 나를 완전히 패망하게 만든 온갖 야심들이 내 머리에 가득 차게 되었다.
로빈슨 크루소 p.29-30,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첫 번째 불행은, 우리 배가 카나리아 제도를 향해,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카나리아 섬들과 아프리카 해안선 사이를 지나던 중에 동틀 무렵 살레 항에서 온 터키 해적선한테 습격을 당한 일로, … … 우리 측은 대포 12문이었고 악당들은 18문이었다. … 우리 배는 못쓰게 되었으며 우리 선원 셋이 사망했고 8명이 부상을 당하니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 포로로 붙잡혀 모로코 인들의 영토인 살레항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 해적선 선장이 자기 몫으로 나를 챙겨놓고 개인 노예로 삼았으니, 내가 젋고 민첩한 게 부려먹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p.30-31,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첫 번째 배는 폭풍에 가라앉아버리고, 두 번째 항해에서는 조금 성공했고, 그 성공으로 인해 다시 바다로 나갔다가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가 돼버렸습니다. 초반에 많은 일들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네요.
크루소가 무어 해적선에 잡혀서 2년 동안 살았던 곳이 모로코 살레(Salé)라는 곳이었네요. 아래 링크로 가시면 지도를 보실 수 있어요. 현재 살레는 가까이 있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와 함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로코 살레 지도 https://maps.app.goo.gl/XZn5VXrZzhdpUyBu9 위키피디아 살레 항목 https://en.wikipedia.org/wiki/Sal%C3%A9
내가 보기에, 내 자신 말할 수 없이 기뻤던 것은, 그토록 비참하고 거의 절망적인 처지에 빠져 있다가 구출되었다는 내 말을 그들이 그대로 믿어 주었다는 사실인데, 나는 곧바로 갖고 있는 것을 모두 선장에게 구출해 준 보답으로 헌납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그 분은 관대하게도 나한테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으며, 내가 갖고 있는 소유물은 브라질에 도착하면 모두 그대로 돌려주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구출한 것은 나 역시 누군가 내 목숨을 건져주면 반가웠을 것이라는 그 조건으로 한 것일 뿐이며, 나도 언제이건 똑같은 형편에 놓일 가능성이 늘 있는 것이고. 게다가 내가 댁의 나라에서 매우 먼 곳인 브라질까지 댁을 데려가면서 소유물까지 뺏는다면 거기서 굶어죽기 십상이니, 그리 되면 내가 내내 목숨을 다시 뺏으려고 댁의 목숨을 구해 준 셈이 될 것이오. 안 될 말이오, 영국인 양반, 이보시오, 영국인 양반, 나는 댁을 브라질에 공짜로 데려다 줄 테니 갖고 있는 물품들을 거기 가서 팔아 생계에 충당하고 조국으로 돌아갈 뱃삯이나 마련하시오.”
로빈슨 크루소 p.51,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선장은 내 보트가 아주 괜찮은 배였기에 그걸 보고서는 자기 배에서 사용할 테니 팔라고 하면서 얼마를 받겠냐고 물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나한테 후히 대했으니, 차마 어떻게 보트 값을 부르겠냐며 알아서 적당히 달라고 하자, 그분은 브라질에 가면 80스페인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어음을 써 주면서, 거기 가서 만일 다른 사람이 더 높은 가격에 배를 사겠다고 하면 그 차액만큼 더 주겠다고 했다. 또한 그분이 내 수종인 쥬리의 값으로 60스페인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니 이 돈을 받기가 꺼려졌는데, 이 아이 를 선장의 소유물로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자유를 되찾는 데 그리도 충직하게 도움을 준 아이의 자유를 팔아넘긴다는 것이 꺼림칙해서였다. 내가 꺼리는 이유를 말하자, 선장은 그 타당성을 수긍하여 중재안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이 아이가 기독교로 개종한다면 10년 뒤에는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준다는 각서를 써 준다는 것이어서 이 조건을 받아들였고, 쥬리 또한 선장을 따라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기에, 나는 선장에게 아이를 넘겼다.
로빈슨 크루소 p.52,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크루소는 해적에게 잡혀 2년 동안 집안일과 고기잡이를 하며 노예로 살다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합니다. 온갖 고생 끝에 포르투갈인 선장의 배에 구조되어 브라질까지 가게 됩니다. 브라질에 도착한 크루소는 탈출에 사용했던 무어인의 배를 선장에게 팝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탈출 과정에서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어준 소년 쥬리까지 돈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충직하게 도움을 준 아이를 파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말 한 마디, "10년 후에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선장의 약속 한 마디에 깔끔하게 거래를 마무리하네요. 배 값으로 얼마를 받겠냐는 선장의 말에 크루소는 "알아서 값을 쳐달라"고 하고, 선장은 "공짜로 취하지 않겠다"며 공정한 거래를 강조하면서, '우리는 문명인'이라는 듯 점잖게 행동하다가, 어린아이를 돈으로 사고파는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러고는 "쥬리 또한 선장을 따라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기에, 나는 선장에게 아이를 넘겼다."라고 하면서 마음의 부담을 탁! 털어버리네요.
이렇듯 나는 내 처지를 못내 후회하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이웃한 사람하고 이따금 만나는 것 외에는 대화할 상대가 아무도 없었고, 내 손으로 직접 하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수행할 수 없었으니, 나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적막한 섬에 버려진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의 현재 처지를 더 안 좋은 형편과 비교하면서 불평하는 생각을 품으면, 하늘은 다시 현재보다 더 좋지 않은 처지와 맞바꿔 주셔서 불평했던 예전의 삶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시니, 참으로 마땅한 처사이지 않은가? 참으로 마땅한 처사라는 말이 그야말로 내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이, 내가 머릿 속에 그려 본 그대로 완전히 적막한 외딴 섬에서 보낸 참으로 고독한 삶이 내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며, 당시 그대로만 계속 지냈으면 아마도 십중팔구 상당히 부유하고 풍요롭게 되었을 터, 그럼 에도 그 당시 내 생활을 툭하면 무인도 생활에 비교했던 것은 지극히 적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p.54,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앞으로의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는 '고전적 방식의 복선'이네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 길이 없었다.' 같은. ^^;
그래서, 내 이야기를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바른 순서대로 얘기를 하자면, 내가 브라질에서 거의 한 4년째 살고 있었고 내 농장 사업은 순조롭게 잘 풀렸다고 할 만했는데, 나는 그 나라 언어를 배웠을 뿐 아니라 동료 농장주들과 또한 그 지역 항구인 산살바도르 상인들도 알게 되어 친구로 사귀었으며,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기니 해안에 내가 두 번 항해했던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고, 거기서 어떤 식으로 흑인들과 거래를 할 수 있는지 설명하며, 그쪽 해안에서는 구슬, 쇠붙이, 칼, 가위, 도끼, 유리 조각 따위 하찮은 물건들을 주고 금가루, 기니 곡물, 상아 등을 살 수 있을 뿐더러 흑인들을 한 묶음씩 살 수 있으니, 브라질로 데려와서 써먹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내가 이런 화제를 꺼내서 얘기를 할 때마다 매우 열심히 들었는데 특히 흑인을 사는 문제와 관련된 부분에 관심을 보였으니, 이것은 당시에는 별로 많은 사람이 손을 댄 장사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직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왕의 계약서 내지는 허가가 있어야만 할 수 있었고, 공적인 독점 거래 대상이어서 그 결과, 살 수 있는 흑인이 많지가 않았고 값도 매우 비쌌다.
로빈슨 크루소 p.59,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아는 상인과 농장주들과 같이 앉아서 이런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얘기들을 나눈 후, 그 다음날 아침에 이 가운데 세 사람이 … 내게 비밀 제안을 할까 한다며, … 이들은 기니로 가는 배를 하나 마련할 생각이 있고, 자기들도 나처럼 모두 농장들을 갖고 있는데 일손을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인력이 모자라는 게 제일 힘든 문제일 터, 하지만 대놓고 흑인들을 구매할 수 없으니, 사적으로 은밀히 흑인들을 데려온 후 각자 농장에서 쓸 수 있게 나눠 갖자며, 단도직입적으로 나보 고 기니 해안에서 거래를 담당할 배의 화물 관리인 역을 맡아 줄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조건으로, 내 돈은 전혀 투자하지 않아도 내 몫의 흑인을 똑같이 나누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 나는 내 이성보다는 환상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좇아 성급하게 길을 나서서, 배에다 모든 장비를 갖추고 화물을 싣고 나서 내 여행의 동업자들과 합의한 대로 모든 일을 마무리지은 후, 그 불길한 날인 1659년 9월 1일에 배에 올라탔으니, 이날은 내가 헐에서 아버짐과 어머님을 버려두고 부모님의 권위에 반항하며, 내 이익에 반하는 바보짓을 시작했던 8년 전의 그날과 바로 똑같은 날이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p.60-62,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소설 속에서 노예 무역을 작당하는 장면이 너무 적나라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에는 ‘아시엔토 데 네그로스(Asiento de Negros)’라는 노예 공급 독점권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왕이 쥐고 있었다고 하네요. 국왕이 특정 회사나 개인에게만 노예 공급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시장에 나오는 노예의 수는 적고 가격은 아주 높았다고 합니다. 당시 브라질 농장주들은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었고, 결국 비싸고 복잡한 공식 루트 대신 자금을 모아 직접 배를 띄워 노예를 '밀수'해오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크루소처럼 기니 해안을 항해해 본 경험자는 이 위험한 불법 거래를 성공시킬 일종의 기술자로 대접받았던 셈입니다. 특히 "구슬, 쇠붙이 같은 하찮은 물건"을 주고 사람을 "한 묶음씩" 사 올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당시 유럽인들이 가졌던 인식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네요.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siento_de_Negros
그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이 땅을 살펴보며 내 거처를 정하고 내 물건들을 안전하게 보관해 두기에 적당한 터를 찾아보는 것이 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형편이라,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여기가 대륙인지 섬인지,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 지, 맹수들의 위협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던 것 인데, 내가 서 있는 데서 한 1마일도 채 안 되는 지점에 언덕이 하 나 있었고 우뚝 솟아 있는 그 봉우리에서 능선처럼 북쪽으로 산이뻗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사냥용 한 자루와 권총 한 자루, 화약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이것들로 무장을 한 후 지세를 살피러 언덕 위로 향했는데, 무척 힘겹게 땀흘리며 올라가서 막상 둘러보니, 내 숙명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으니-이곳은 섬이라서, 사방이 온통 바다로 에워싸여 있었고 한참 멀 리 떨어진 데 있는 바위섬 말고는 땅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으며, 그 섬보다 작은 크기의 섬 두 개가 서쪽으로 한 9마일 정도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p.78-79,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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