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

D-29
내가 언덕 아래로 내려와서 지금까지는 와본 적 없던 섬 끝에 당도했을 때 사람 발자국을 보는 게 내가 상상했듯이 이 섬에서 뭐 그리 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내가 야만인들이 전혀 오지 않는 섬의 반대편으로 떠내려오게 된 것은 특별한 섭리임을 깨달았으니, … 마찬가지로 이들이 서로 충돌이 잦았고 카누에서 싸움을 하다가 승리자들이 죄수들을 이 쪽 해안으로 끌고 와서는 이자들이 모조리 식인종들이니 그들의 끔찍한 풍습에 따라 죽여서 잡아먹었을 법한 일인데, 아무튼 이것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자. 내가 이미 말한 대로 언덕에서 내려와서 섬의 서남쪽 지점인 그 곳 해안으로 갔을 때 나는 완전히 놀라움에 질려버렸으며,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두려움을 말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 정도이니, 해안 사방에 두개골, 손, 발 및 사람 몸의 기타 다른 뼈들이 흩어져 있었고, 특히 내가 한 곳을 자세히 보니 거기에서 불을 지핀 흔적이 있었는데 땅에다 둥그런 구덩이를 보트 좌석처럼 파 놓은 걸 보니, 거기에 둘러앉아 이 처참한 야만족들이 인륜을 저 버린 잔칫상을 벌이고 앉아 동료 인간을 먹었던 모양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p.236-237,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요컨대 내 형편과 경험에 비춰서 내가 온당히 내린 결론인즉, 이 세상의 모든 유익한 것들은 오직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내게 유익한 것이며, 우리가 쌓아두는 것들은 사실 남들에게 주고 말 것이요,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득도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혼자 살면 철학자가 되고마는건가 싶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 대목 밑줄 쳤습니다. 크루소가 하느님에게 의지하며 매사에 감사하려 하거나, 또는 저렇게 득도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그래.. 그래야 위로를 받고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을겨’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세상의 온갖 사악함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기에, 내게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없었다. 나는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갖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탐할 일이 없었고, 영지 전체를 소유한 영주였으며 내가 소유한 이 땅 전체의 왕 내지는 황제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라이벌이 아무도 없었다. 나의 경쟁자가 있어서 나와 왕권이나 통수권을 두고 다툴 자가 없었던 것이다. *「요한1서」 2장 16절.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그러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이 내게는 가치 있었다. 내가 먹을 것과 내가 필요한 것들이 내게 충분했으니 그 밖에 나머지는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 요컨대 내 형편과 경험에 비춰서 내가 온당히 내린 결론인즉, 이 세상의 모든 유익한 것들은 오직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내게 유익한 것이며, 우리가 쌓아두는 것들은 사실 남들에게 주고 말 것이요,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인생이란 참으로 하나님이 섭리대로 빚어내신 울퉁불퉁한 작품이 아닌가! 형편이 달라지는 상황이 될 때마다 우리의 감정이 무슨 비밀스런 힘에 의해 급하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니! 오늘은 사랑하던 대상을 내일은 증오하고, 오늘은 원하던 것을 내일은 꺼리며, 오늘은 욕망하는 바를 내일은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그걸 걱정해서 겁에 질려 부르르 떠는 법이라, 당시 내 경우보다 더 지극히 생생하게 이것을 예시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니, 나의 유일한 고통은, 인간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혼자 외톨이로 망망대해에 에워싸여 있어 인간세계로부터 단절된 것으로 보이는, 내가 이름한 대로 이러한 고요한 삶을 살도록 저주받은 것이며, 나는 마치 하나님이 산 자들의 일원으로 분류하거나 나머지 피조물 속에 끼어 있을 만한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 처지를 고통으로 여기던 바로 내가, 이제는 나와 같은 사람을 본다면 마치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인 구원의 축복 다음가는 축복으로 생각해야 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내가 사람을 만날 두려움에 파르르 떨며 이 섬에 사람 하나가 발을 디뎠다는 그림자 내지는 말없는 표시만 보고도 즉시 땅으로 꺼져 들어갈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2회차 다 끝나가네요, 그래도 탑승하겠습니다! 곧 진도 따라붙을게요. :)
안녕하세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 함께 읽게 되어 반갑습니다~
재미있어서 금방 읽으실거예요
크루소와 디포에 대해 싫은 감정이 계속 쌓여가던 중에, 이렇게 올려주신 글을 다시 읽어보니 명문이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싫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 드네요. 사람을 다시 보기를 바라며 그것을 구원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발자국 하나에 공포의 도가니로 들아간 상태를 정말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이해가 되면서도 싫긴 해요. 야만인 운운할 때도 그렇고, 이런 처지에 있는 나도 이렇게 감사하며 사니까 아무 불평하지 말고 살라는 메시지를 자꾸 주는 것 같기도 해서요.
나의 이렇게 감사하는 자세는 나머지 시기 내내 계속 이어졌으며 금요일이랑 대화를 하면서 보낸 시간 덕에 우리가 그곳에서 같이 살았던 3 년 세월은 하늘 아래 이 세상에서 완전한 행복이란 걸 실천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읽으면서 예전에 어렸을때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 사이의 우정?!이 인상깊었었다는 생각이 나네요.
네.. 어린이 책에서는 '우정'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프라이데이 입장에서도 완벽한 행복이었는지, 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참 궁금해요. ^^;
이리하여 나는 이 섬을 이 배의 달력에 의거해 확인한바, 1686 년 12 월 19 일에 떠났으니, 내가 이곳에서 스물여덟 해와 두 달 열아홉 날을 살았던 것이며, 살레의 무어 인들에게서 대형 보트를 타고 탈출했던 바로 같은 달 같은 날에 이 두 번째 감금에서도 구출되었다. 이 배를 타고 긴 여행 끝에 영국에 도착하니 그때가 1687 년 6 월 11 일이라, 서른다섯 해 동안 영국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 이들이 만약 나를 건드리려 시도했거나 내가 즉시 이들을 습격하는 것이 나의 즉각적인 자기보전에 필요함을 확인했다면 뭔가 나를 정당화할 근거가 생겼겠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이들의 영향권 밖에 있고 이들이 나에 대해서 사실 알지 못하기에 나를 어쩌겠다는 계획을 품지 않은 형편이고, 따라서 내가 이들을 습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행각들, 즉 원주민을 수백만 명씩 죽인 것도 정당화될 것이니, 비록 이들이 우상 숭배자이자 야만인이며 산 사람을 자기들 우상에게 바치는 등의 야만적인 의식이 그들 풍습의 일부였다고 해도,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친 게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었는데도, 이들을 그 땅에서 몰살해 없애버린 것이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당시에 극히 혐오스럽고 경멸할 일이란 식으로 얘기가 돌았으며, 유럽의 다른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순전히 생사람 잡는 학살이요 피비린내 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잔혹함으로서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들 말했던 바, 그래서 이로 인해 ‘스페인 사람’이란 말 자체가 인간성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 아니면 기독교적 연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름 끼치고 끔찍한 말로 받아들여져서, 마치 스페인 왕국이 특별히 내세울 자랑거리가, 이렇듯 일체의 자비의 원리도 모르며, 불쌍한 자들에게 누구나 속으로는 느끼는 동정을 다들 너그러운 심성의 표시로서 인정하건만 이것을 일체 결여한 인종을 배출했다는 사실인 양 생각했다.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이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당시 다니엘 디포를 비롯한 영국인들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과 학살을 아주 비판적으로 바라봤나 보군요. (훗날 조지프 콘래드가 <어둠의 심장>에서 벨기에가 저지른 콩고 수탈을 비판했던 것도 떠오르네요.) ‘우리 영국인들이라면 스페인 쟤네들처럼 무식하게 막 죽이지 않고, 야만인들을 현명하게 잘 교화할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요. (영국과 스페인은 서로 종교도 달랐고 하니..) 그래서 장차 영국은 스페인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제국주의 국가가 된 걸까요. (뭐, 그놈이 그놈이긴 합니다만 ㅎㅎ)
흥미롭습니다. 스페인의 태도가 원주민 다 죽이고 금은보화 캐서 본국으로 가져가자! 는 느낌이라면 영국은 식민지에서 원료 사와서 가공해서 뭐 만들어서 비싸게 팔기도하고, 동인도회사 같은거 세워서 식민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중국에 아편도 팔고..) 방향으로 간 것 같네요. (무조건 후자가 덜 악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체계적으로' 악랄했달까.....)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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