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들이 만약 나를 건드리려 시도했거나 내가 즉시 이들을 습격하는 것이 나의 즉각적인 자기보전에 필요함을 확인했다면 뭔가 나를 정당화할 근거가 생겼겠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이들의 영향권 밖에 있고 이들이 나에 대해서 사실 알지 못하기에 나를 어쩌겠다는 계획을 품지 않은 형편이고, 따라서 내가 이들을 습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행각들, 즉 원주민을 수백만 명씩 죽인 것도 정당화될 것이니, 비록 이들이 우상 숭배자이자 야만인이며 산 사람을 자기들 우상에게 바치는 등의 야만적인 의식이 그들 풍습의 일부였다고 해도,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친 게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었는데도, 이들을 그 땅에서 몰살해 없애버린 것이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당시에 극히 혐오스럽고 경멸할 일이란 식으로 얘기가 돌았으며, 유럽의 다른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순전히 생사람 잡는 학살이요 피비린내 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잔혹함으로서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들 말했던 바, 그래서 이로 인해 ‘스페인 사람’이란 말 자체가 인간성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 아니면 기독교적 연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름 끼치고 끔찍한 말로 받아들여져서, 마치 스페인 왕국이 특별히 내세울 자랑거리가, 이렇듯 일체의 자비의 원리도 모르며, 불쌍한 자들에게 누구나 속으로는 느끼는 동정을 다들 너그러운 심성의 표시로서 인정하건만 이것을 일체 결여한 인종을 배출했다는 사실인 양 생각했다. ”
『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문장모음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