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

D-29
대전투의 결과도 기록하는 걸 잊지 않는 크루소입니다. 기자로 글도 많이 써냈고 잡지도 펴냈던 전력이 있어서일까요, 디포는 정리를 참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묶고 있는 꼬아놓은 청포잎 내지는 골풀을 즉시 잘라 버리고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그는 일어서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고 오로지 몹시도 서글프게 신음소리만 내니 아마 자기를 죽이려고 결박을 푼 것으로만 생각한 모양이었다. 금요일이가 그 사람한테 오자 내가 걔한테 그 사람은 구출된 것 이라고 말해 주라고 하며, 내 술병을 꺼내서 이 가엾은 인간에게 한 모금을 주니, 자기가 구함을 받은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이걸 마신 덕에 생기를 되찾고 일어나 보트에 똑바로 앉았는데, 금요일이는 이 사람한테 가까이 가서 말을 걸려고 하며 얼굴을 바라보다가 어찌나 기쁨에 젖어 그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울고 소리치고 펄쩍 뛰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정신이 나간 친구처럼 펄쩍펄쩍 뛰어대는지, 그 광경을 보는 이라면 누구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라서, 한참 뒤에 가서야 나한테 말을 하게 만들 수 있었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자, 좀 안정을 되찾은 후에 나한테 하는 말인즉,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로빈슨 크루소 p.340-341,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금요일이가 드디어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아버지까지 잡혀오게 된 걸까요? 이 얘기가 뒤에 나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아버지까지 등장하게 한 건지 궁금합니다.
그니까요. 조금 개연성이 없죠? 어린때 읽었을때 프라이데이까지는 읽은 기억이 나는데 프라이데이 아버지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 이번에 읽으면서 이름을 "금요일이"로 번역하는것과 "프라이데이"로 번역하는것의 차이를 생각해봤는데, 각자 선호가있겠지만 전 프라이데이가 더 좋은것 같아요. 금요일이라고하면 이름이 원래 사람이름이 될 게 아닌데 임의로 붙였다는점은 잘 드러나지만, 이름을 부를때 "금요일!"이렇게 부를 수 없어서 다 "금요일이야!" 이런식으로 번역하니 한국어 기준으로 원문에 없는 다정함(!)이 한스푼 들어가는 느낌이어서 좀 어색했습니다. 요즘 사람이면 프라이데이가 영어로 금요일이고 사람이름 같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있을 확률이 높아서... 일부러 바꿀필요까진 없지않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문에 없는 다정함이 한스푼 들어가는 느낌” 오,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저도 그냥 “프라이데이”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알라딘에서 열린책들 번역본 책소개를 보니까 우리가 읽는 을유판에 비해 문장을 짧게 끊어 썼고(을유판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라서 그런지 글투도 예스럽고 문장도 길죠), 프라이데이라고 번역해 놓았네요.
저도 프라이데이에 한 표입니다. 이름은 그 나라 말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내 섬은 이제 사람이 여럿 사는 곳이 되었으니 나는 아주 백성이 넘쳐난다고 생각했던바, 내가 일종의 군주처럼 보인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주 즐거워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땅이 순전히 나의 재산이었고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둘째로는, 내 백성들이 아주 완벽하게 내 밑에 종속되어 있었고, 나는 절대적인 군주이자 법을 부여하는 주군이었으니, 이들은 모두 내 덕에 목숨을 건졌고 그럴 경우가 생긴다면 모두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또한 놀라운 것은 불과 백성이 셋 밖에 없었지만 각자 믿는 종교가 세 가지였다는 것이다. 내 수종 금요일이는 개신교도였고 걔의 부친은 이교도이자 식인종이었으며, 스페인 사람은 구교도였으나, 그럼에도 나는 내 영토 안에서는 모두 신앙의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약간 벗어난 얘기긴 하다.
로빈슨 크루소 p.345-346,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이 짧은 단락에 군주, 지배권, 절대적인 군주, 법을 부여하는 주군 같은 단어가 쏟아집니다. 백성이 셋인 상황에서 이 어휘들은 명백히 과잉인 것 같은데, 크루소는 그런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런데 이 자화자찬의 끝에서 갑자기 '약간 벗어난 얘기'라며 발을 빼는데요, 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종교의 자유 얘기를 꺼내다가 스스로 불편해진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관용을 베푸는 군주라는 설정은 절대 권위를 강조하는 앞의 이야기와 묘하게 충돌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금요일에게는 개종을 시켜놓고 자유를 줬다고 하니, 이 모순을 크루소 자신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일까요?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역시 소유권, 지배권입니다. 애초에 이 섬이 왜 크루소의 것인가 하는 겁니다. 자신이 발견했고 농사 지었고 살아남았으니 내 것이다, 이런 논리는 당시 유럽의 식민지 논리와 구조가 같다고 앞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크루소는 이것을 정당화하지도, 설명하지도 않고 그냥 당연한 것으로 씁니다. 지배자가 신변 안전을 보장하고 피지배자가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건 홉스(『리바이어던』 1651)로부터, 노동을 가하면 자기 땅이 된다는 것은 로크(『통치론』 1689)로부터 자연스럽게 흡수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을수록 『로빈슨 크루소』는 당시의 시대가 충실히 내면화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이 단 한 명도 없을 때도 본인이 섬의 군주, 영주, 왕 내지는 황제라며 소유권이 있다고 그랬었으니, 이젠 ‘내 백성들’이 세 명이나 생긴 기쁨에 과잉 어휘를 막 날리네요 ㅎㅎ 25년이나 혼자 있다가 사람이 네 명이 되면 섬이 꽉 찬 듯 느껴지겠죠. 더이상 무늬만 왕이 아니고 진짜 왕 된 기분? 지나간 내용 중에 보면, 내게서 이 땅을 빼앗아갈 라이벌이 아무도 없고 나랑 지배권 다툼을 할 자도 없으므로, 따라서 여긴 다 내 땅이라는 논리(?)를 펼쳤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지시 아래 스페인 사람과 금요일이의 아버지인 야만인 영감은 카누 하나를 타고 떠났으니, … … 이것은 참으로 신이 나는 일이었으니 이제 27년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세월이 흐르도록 나의 구원을 예상하며 취한 첫 번제 조치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여러 날을 먹고도 남을 정도의, 이들의 동포들도 8일 동안 충분히 먹을 만큼의 식량을 빵과 마른 건포도로 줬으며, 무사히 여행하기를 빌면서 배웅을 하고, 이들이 돌아올 때 내가 멀리서도 해안에 닿기 전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신호로 어떤 표시를 할 것인지 서로 약속을 했다. 이들은 내 계산으로는 10월에 보름달이 뜨는 날 순풍을 받고 출항했는데, 정확한 날짜 계산은 내가 한번 틀린 다음부터는 다시는 맞출 수가 없었고 보낸 햇수조차도 그렇게 정확히 계산은 하지 않고 지냈으나 대략 옳다고 생각은 했고, 나중에 내가 날짜 계산을 한 것을 검토해 보니 햇수는 정확하게 셌던 것이 입증되기는 했다.
로빈슨 크루소 p.355-356,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무려 8일째 꼬박 이 사람들을 기다리던 중 이상하고도 예상치 않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으니, 이런 일은 도무지 그 어떤 경험담 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일 터. 어느 날 아침 내 오두막에서 곤히 잠이 들어 있던 중에 내 수종 금요일이가 내게 달려오며 큰 소리로 하는 말이 주인님, 주인님, 그들 와요. 그들 와요. 이러는 것이었다. 나는 위험도 아랑못하지 않고 벌떡 일어서서 옷을 걸치는 대로 곧장 나아가서 내 작은 관목 수풀 사이를 통과해가니, … 내가 바다로 눈길을 돌리자마자 즉시 보이는 것이 약 4, 5마일 되는 지점에 보트가 한 척 보이고 해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중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대로 '양고기 어깨살 돛' , 즉 삼각형 돛을 달고 있었고 바람을 제법 잘 받아 이쪽으로 순탄하게 오는 중이었으며, …
로빈슨 크루소 p.356-357,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프라이데이 아버지를 포함해 한 팀을 보내고 나서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다른 배가 등장했습니다. 또 한 판 스펙타클 액션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제가 모임 스케줄을 짤 때 4/12(일)을 끝으로 했는데, 날짜를 잘못(12를 13으로) 입력했네요. ^^;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 읽기는 4/13(월)에 끝납니다. ^^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잘 모르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를 @르구인 님 덕분에 완독하게 되었네요. 역자의 말에서 역자가 말하는것처럼 디포는 (소설이라는 장르적 개념도 확립되어있지 않던 시절) 문학사의 첨병이자 근대 문명 자체의 첨병이라는 설명이 와닿았습니다. 끝까지 자기 '소유의' 섬을 챙기는 모습이나, 속편을 예고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마지막까지 크루소가 크루소했다... 라고 해야할까요? ㅎㅎ 그런 느낌입니다. @향팔 님, @르구인 님 함께 읽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저도요. 어렸을 때 읽은 기억과 많이 달라서 재미있기도 하고, 또 이 모임에서 @모시모시 님과 @르구인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깨닫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향팔 님, 정말 감사합니다! 모임 참여해주시고 여러 좋은 책들 추천도 해주시고, 재미나고 의미 깊은 이야기들도 나눠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다시 감사드려요! *^^*
정말 감사합니다! @모시모시 님! 함께 책을 읽는 건 혼자 읽는 것과 정말 다르다는 걸 이곳에서 모임 하면서 계속 느낍니다. 이야기 나눠주시고, 모임을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이거 보시오, 선생, 내가 당신을 구출해 보려고 할 경우, 두 가 지 점을 나와 약조할 수 있겠소?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벌써 내 제안을 지레짐작하고서 하는 말이, 자신과 자기의 배를 만약 되찾게 된다면 전적으로 모든 점에서 나의 지휘와 통제를 받겠으며, 또한 만약 배를 되찾지 못한다면 나랑 이 세상 어디로 자기를 보내건 나와 함께 살다가 함께 죽겠다고 하니, 나머지 두 사람도 똑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아무튼 내 조건은 오직 두 가지 뿐이오" 라고 내가 했 으니, 첫째, 당신이 이 섬에서 나와 함께 머물러 있을 동안은 전혀 아무런 지배권을 행세하려 들면 안 될 것이며 내가 만약 총기를 당신 손에 쥐어준다면 어떤 경우에건 나한테 다시 그걸 반납할 용의가 있어야 할 것이며, 이 섬에서 나나 내게 속한 자들에게 불리한 행위를 일체 하지 않을 것이며 여기 있는 동안은 내 명령에 의해 통제받을 것과, 둘째, 만약 배를 되찾았거나 되찾을 수 있다면 나와 내 수종을 영국까지 무료로 태우가 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로빈슨 크루소 p.366,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크루소는 일관되게도, 누굴 만나 일을 도모하기 전에 항상 먼저 계약부터 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 계약이라는 게, 상대방 쪽에서 보면 원하는 걸 얻은 후 나중에 발뺌을 하고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도리가 없는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도 크루소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섬을 떠날 때 나는 기념품 격으로 내가 만들었던 큼직한 염소가죽 모자와 내 우산과 내 앵무새를 가지고 탔고, 앞서 언 급한 바 있는 돈도 가져가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것들이 하도 오랫동안 쓰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해서 녹이 슬어 얼룩이 져 있어서 표면을 문질러 손질하지 않으면 전혀 은화 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또한 스페인 난파선에서 발견한 돈도 가지고 왔다. 이리하여 나는 이 섬을 이 배의 달력에 의거해 확인한바. 1686년 12월 19일에 떠났으니, 내가 이곳에서 스물여덟 해와 두 달 열아홉 날을 살았던 것이며, 살레의 무어인들에게서 대형 보트를 타고 탈출했던 바로 같은 달 같은 날에 이 두 번째 감금에서도 구출되었다. 이 배를 타고 긴 여행 끝에 영국에 도착하니 그때가 1687년 6월 11일이라, 서른다섯 해 동안 영국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p.398,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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