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누구나가 다 마음이 가는 대로 가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만이 정답인가. 안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가 다 자기 상황이라는 게 있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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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편견(내로남불)이 생기는 것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맥락이 있어 그런 것이고
남도 실은 나와 같은 맥락인데 그게 그 맥락과
이어지지 않아 그런 것이다.
이것은 남의 글의 의도가, 실은 그게 아닌데
부정적인 것 한 구절만 떼어내 그를
비난하는 것하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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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모른다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용납하면 안 된다.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다.
나만 살아남고 잘살면 끝.
로또를 그렇게 줄을 서서 사고 국민이 다 사행심만 늘어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 교육의 본령(本領)을 모르고 경쟁이 심화되어
다른 선진국이 교육이 이게 뭐냐며 한국 교육을 한심해 한다.
애들을 밤 10까지 공부(주입과 단순 암기식 기능) 시키는 게
정상인가?
그런 애들이 크면 뭐가 되나?
의대 가서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환자를 보는 것이다.
근본과 본질을 한국이 잊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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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쓰잘머리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마라.” 평소에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쓰잘데기’가 표준어가 아닌 걸 혹시 알았다면
우리말에 대해 많이 아는 거다.
사전에서 ‘쓰잘데기’를 쳐 보면 ‘쓰잘머리’의 경상,
전라 방언이 라고 설명돼 있다.
‘쓰잘머리’는 ‘사람이나 사물의 쓸모 있는 면모나
유용한 구석’이란 뜻이다.
그런 쓰잘머리 없는 공상은 그만두고 공부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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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찜/아귀찜
TV에 나오는 음식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음식점에
‘아구찜’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표준어는 ‘아귀’다.
‘아귀’는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60㎝ 정도이고 넓적하며,
등은 회갈색, 배는 흰색이다. 머리 폭이 넓고 입이 크다’라고
국어사전에 적혀 있다.
인천에서는 아귀를 ‘물텀벙이’라고 하는데,
워낙 못생겨서 잡히면 바로 뱃사람들이 바다에 텀벙
소리 나게 버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아귀’를 ‘아구’라고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귀’보다 발음이 쉽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출을 하여 맛있는 아귀찜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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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체적으로 사는 걸 가장 강조하는 것 같은데 그러려면 자신을 알고 자기가 고유하게 가진 걸 잘 활용할 것을 결심해야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게 된다. 무조건 주체성을 기르라고 하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듣는 사람에게 쓰잘머리가 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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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친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슬픔은 같이 하지만 기쁨은 안 나누려고 한다. 질투를 한다. 그러나 책은 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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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와 고독
한밤에 한 여자가 전화한다.
오늘따라 보고 싶다고.
나를 적신다.
이제 그녀는 없다.
주룩주룩 봄비가 내리고 고요한 가운데 주변이 가라앉는다.
감상에 빠진다.
봄밤에, 봄비가 창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런 날은 미로를 헤매는 토속주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처량하다.
고독을 사랑한다.
그녀를 만날 기쁨은 어디로 가고 나를
연민하며 고개를 떨군다.
술은 쓰지만,
고독에 잠기는 모습과 심정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이런 날은 그저 고독에서 나오기 싫다.
음울과 시심(詩心)에 젖는다.
봄비에 젖고 술에 젖고 눈물에 젖는다.
봄비와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이은하의 ‘봄비’와 지아의 ‘술 한잔 해요’가
연속해서 나를 감싼다.
그것도 날 채우지 못하면 영화 「클래식」을 보며
더 깊게 고독 속으로 빠진다.
봄비와 고독이 흘러넘친다.
나는 열정(熱情)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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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없게 화를 내면 안 된다. 그냥 인형을 상대라고 생각하고 마구 바늘로 찌르는 게 낫다. 그게 효과가 있으면 모르지만 나만 힘들면 그냥 더러운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아예 그 인간하고는 거리를 두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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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체적으로 사는 것하고 현실에서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방법을 엄청나게 강조한다. 결국 현실을 버텨내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게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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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산만해지는 환경에서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압도적인 우의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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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타인
책 한 권 가지고도 그를 다 표현할 수 없는데,
한 구절만 떼어내 그를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만일 누가 나를 그런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엄청 불쾌할 것이다.
남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남은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바른 것이고
오히려 건강하고 겸허한 태도다.
나는 그의 맥락(Context)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를 모른다.
그 사람이 그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그의 처지에 있지 않은 이상,
-내가 그가 아닌 이상-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남도 내 위치에 있지 않아 나를 모르는 것처럼.
남이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것이 그런 것처럼
내가 남을, 내 입장에서만 쉽게 재단(裁斷)하는 것은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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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강하게 끌린다는 것은 그곳에 우리의 재능이 닿을 자리가 있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에 귀 기울이겠다는 적극적 선택이다. 그렇게 흥미를 따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만이 결국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자신의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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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체적인 삶과 세상의 다양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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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간이 되면 죽는다. 아마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죽을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 몸이 별로 건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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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기대되지도 않는 인간들에게 잘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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