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 읽기

D-29
20대부터 50대까지, 프리랜서부터 대기업 직원까지, 수입도 직종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들과 한 사람당 한 시간 반 넘게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가족’이 차지하던 중심축을 자기 자신, 즉 ‘자아self’가 대신하게 된 현상 말이다. 이들에게 노동은 가족을 부양하는 활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활동이었고, 여가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계발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재생산 메커니즘이 가족 중심에서 자기 중심으로 전환된 것이다. 나는 이를 자기생산-자기재생산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위험사회Risk Society』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졸업→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표준화된 삶이 가능했던 과거를 포드주의 체제Fordist regime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심해진 현재를 위험 체제risk regime로 정의한다.[ 4 ] 서연 씨는 “둘이 힘을 합쳐 잘살아 보자”는 것이 예전 세대의 마인드였다면, 이제는 “둘이 망하느니 혼자 망하는 게 낫다”는 것이 비혼자들의 마인드가 되었다며 위험사회의 세태를 짚어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커리어 개발에 관해 연구해 온 심리학자 장 기샤르Jean Guichard의 말처럼, 현대사회의 개인은 일평생 자기를 디자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5 ] 자기 커리어를 구축하는 과업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결혼해 가족을 만드는 과업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린다. 비혼 직장인의 커리어 중심적 삶은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나이, 성별, 소득수준이 다양한 21명의 인터뷰 참여자 중 자기 성취나 보람이 아닌 생계 자체가 일을 하는 최우선의 목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민아 씨 외에도 참여자들의 거의 압도적 다수가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기업 부장인 42세 유희영 씨는 이런 성취감이 “재미”와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대표인 강진모 씨도 인터뷰 중 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신이 났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저 역시 직장과 커리어를 선택할 때 자아실현을 중요한 요소로 놓는데요, 이게 현대사회의 고용불안정/1인가구의 증가와 맞물린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네요. 이부분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후기 산업사회에 최적화된 선택이 인간의 안위에도 최적화된 선택인 것은 아니다. 혼자 남겨진 공간에서 각 개인은 부실한 식사, 돌봄의 공백, 신체 건강의 위협, 정신 건강의 위기와 맞닥뜨리고 있다. 만약 홀로 사는 삶이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라면, 이 그림자 또한 결국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일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흐름의 결과라면,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위기를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책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으로, 사회적 흐름이 1인 가구 증가를 이끌었다면 사회제도도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죠. 이를테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가족 건강검진 혜택을 받지 못하는 1인 가구에게는 그만큼의 비용을 상쇄하는 개인 세부검진을 보장하는 식으로요. 오래 한가지 주제에 천착한 학자의 실무적인 지식을 엿볼 수 있어 좋았고, 충분히 제도화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계보다 자아실현이 우선의 가치가 된다면, 일의 양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인터뷰 참여자가 ‘나의 성취와 재미’를 노동하는 1순위 동기로 꼽았다. 그 결과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아실현의 유무가 일자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유명한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이론'에서는, 낮은 단계의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면 더 높은 단계의 욕구가 발생하고, 가장 높은 5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가족을 이루지 않고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1인가구가 증가하는 것을, 사회 변화에 따른 노동력 재배치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덜어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사회의 발전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곧 성인이 될 딸아이의 미래가 어떨지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어서 같이 읽어 보려합니다 오늘 첨으로 그믐에 가입했고 처음 참여하는 모임,첫 글 입니다. 김새섬님을 통해서 그믐을 알게 되었고 독서 모임 기대됩니다^^
네 반갑습니다^^
내가 연구를 위해 만난 혼자 사는 노동자 21명의 여가시간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형태로 자본주의 사회를 위한 재생산 활동을 이어나갔다. 가족의 노동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대신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활동으로 말이다. 나는 이를 자기재생산self-reproduction이라 정의했다. 자기재생산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오늘의 나를 연마하는 자기계발, 노동하며 소진된 마음을 복원하는 자기힐링, 그리고 약해진 건강을 관리하는 자기관리다. 1인가구의 여가시간은 이 새로운 재생산 활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오늘부터 3-4장 읽기 시작입니다
하지만 내가 연구를 위해 만난 혼자 사는 노동자 21명의 여가시간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형태로 자본주의 사회를 위한 재생산 활동을 이어나갔다. 가족의 노동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대신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활동으로 말이다. 나는 이를 자기재생산self-reproduction이라 정의했다. 자기재생산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오늘의 나를 연마하는 자기계발, 노동하며 소진된 마음을 복원하는 자기힐링, 그리고 약해진 건강을 관리하는 자기관리다. 1인가구의 여가시간은 이 새로운 재생산 활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우리는 자아라는 시추탑에서 자기힐링이라는 드릴로 자기 내면을 파헤쳐 내일의 노동을 위한 에너지를 뽑아 올린다. 자기힐링은 현대사회의 폭력적인 속도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도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그 멈춤 또한 다시 달리기 위한 것이다. 수리된 마음은 다시 출근길에 오른다. 그렇게 힐링은 노동의 멋진 신세계를 돌아가게 만드는 또 하나의 톱니바퀴로 기능한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현대에 유행하는 힐링과 자기치유는 1인 가구 사회의 재생산 매커니즘일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예전의 핵가족/정상가족이 치유와 재생산을 담당하는 사회가 아니니까요.
네. 저도 이 부분이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었고, 2장에서 "현대인들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제일 충성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라는 문장이 가장 남는 문장이었습니다.
보통 여가는 지인들과 만나 어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탐방하기도 하고, 직장 뒷담화를 하며 회포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가를 혼자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혼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54.9%로, 가족(29.8%)과 보내는 사람이나, 친구나 인(13.2%)과 보내는 사람의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2023년보다 4.4% 높아진 수치다.[ 10 ] 사실 자기계발과 자아성찰을 하며 나를 일구는 데 집중하다 보면 타인과 어울리는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지나치게 자기에게 몰입하는 현대인들은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을 소실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젊었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나이가 들면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30대 후반부터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는 건 혼자 사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1인가구의 건강은 다른 가구에 비해 확실히 더 취약하다. 실제로 2021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지난 2주 동안 아픈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38.9%나 됐다. 아팠던 기간도 평균 11.3일이었다. 이는 전체 가구의 유병률 25%과 유병일수 9.9일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15 ]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역설적이게도, 1인가구에게 주어진 ‘자유’ 때문이다. 내가 만난 1인가구들은 하나같이 일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었다. 여가도, 자기돌봄도 일보다 뒤였다.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결혼한 사람들보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옆에서 “이제 좀 쉬어”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악화 속도도 빠르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자녀가 태어나 자라고 학교에 들어가고 결혼해서 독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을 체감한다. 젊은 시절에 유지했던 생활방식도 가족들의 생활리듬에 맞추어 조금씩 조절이 된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같이 침대에 눕다 보면 본인도 잠이 들어 어느새 아침이 된다. 아이들 아침밥을 먹이려고 내 밥도 챙기게 된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외부자극이 거의 없다. 현재 40대인 경수 씨의 말처럼, “나이 들어서도 20대에 살았던 방식 그대로 일하고 자취하는 삶이 계속” 이어진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변화, 즉 몸에서 보내는 경고 신호를 받았을 때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나이 들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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