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 읽기

D-29
만약 비혼 1인가구가 원가족에게 해왔던 실천을 공동체를 위해서도 했더라면, 그들이 가족에게서 그토록 얻기를 바랐던 시민권을 공동체 안에서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인터뷰와 각 인터뷰이들의 분석, 생활역량으로서의 문화자본, 살림과 돌봄, 대가족->핵가족->1인가족으로 진행되는 노동력 뽑아먹기의 경쟁적 진화 등 자료 수집과 분석도 심도 있고, 생각해볼만한 지점도 많이 제시한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다만, 셰어하우스, 커뮤니티공간, 협동조합식의 지역 공동체... 등의 논의는 있으나 실제화가 어렵거나 좌초된 경우가 주로 보이는 해결 방안만을 보여주는 데 머무른 건 좀 아쉽네요. 바우만의 리퀴디티 문제제기를 언급하고도 그 부분에 대한 무언가..가 없는 것 같아서요. 해결책이 어렵고 명쾌한 게 없으니 학자의 라이프워크가 될만한 거겠죠. 앞으로 논의를 더 기대해보게 됩니다.
1인가구가 겪게 되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공동체의 부재인데, 동시에 가장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는 없어지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렵고, 그래서 기존 공동체 - 혈연가족이나 교회 등- 이 나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존속하고 있고요. 학자 한명의 연구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겠고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제고될수록 대안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심하게 아팠던 경험은 1인가구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전통적인 생애주기에서는 결혼, 출산, 분가, 사별처럼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가족적 사건을 경험하지 않는 1인가구들에게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생애사적 사건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의 건강 변화를 꼽았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처럼 내가 만난 1인가구들은 죽는 순간, 즉 사망death이라는 사건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모든 인간은 혼자 사망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임종을 맞더라도 사망 자체는 한 개인이 고스란히 겪어야 할 본래적으로 고독한 순간이다. 그래서 1인가구라는 이유로 혼자 맞게 될지 모를 사망의 순간을 특별히 더 두려워하진 않았다. 오히려 적지 않은 1인가구가 염려했던 지점은 사망에 이르기 전에 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카스텐바움과 모어먼의 죽어감-사망-사후로 이어지는 죽음의 과정으로 보자면, 죽어감dying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죽기 전에 크게 아프지 않고 사망하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이 지병을 앓고 있거나, 가까운 사람의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런 바람이 더 컸다. 백승민 씨처럼 부모님이 병환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모습을 지켜본 1인가구들은 자신은 이런 고통 없이 “깔끔하게” 떠날 수 있길 바랐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하지만 이렇게 죽음 앞에서 나름 초연한 태도를 보이던 1인가구들조차 공통으로 두려워하는 죽음의 장면이 있었다. 22명 중 20명에 이르는 압도적 다수가 가장 두려워한 죽음의 지점은 죽기 이전도 죽는 순간도 아니었다. 바로 죽음 이후after death의 상황이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처럼 1인가구가 느끼는 고독한 죽음에 대한 공포는 혼자서 죽는 사건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홀로 “발견될” 자기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두려움은 인간의 죽음 경험이 지극히 사회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방증한다. 사실 죽음 이후는 죽은 자가 인식할 수 없다. 본인이 직접 맞닥뜨리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1인가구가 죽기 전에 자신이 몸소 겪게 될 고통보다 죽은 다음에 자기 모습이 타인에게 추하게 비춰질까 봐 걱정했다. 자기 죽음을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맥락화하는 것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유희영 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 애도의 과정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비록 죽기 전에 가족구성원에게 “당신은 좋은 아내였어, 좋은 엄마였어”라는 말을 들을 순 없겠지만,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사회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면 무의미하지 않은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통적으로 가족이 수행해 왔던 애도를 사회가 함께하면서 죽음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원하는 것이다. 희영 씨가 인정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소셜 아이덴티티 즉, 사회적 존재감이다. 한 인간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존중하면서 사회 안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애썼다’라는 위로와 함께 ‘네가 우리의 구성원이어서 기뻤어, 함께 해주어서 고마웠어’라는 메시지를 사회로부터 받고 싶어 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처럼 내가 만난 1인가구들은 자신의 ‘인체’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예의가 갖춰진 끝을 맞이하기를 소망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그래서 이 혼자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고독한 죽음을 존엄한 죽음으로 감싸는 공동체적 포옹일 것이다. 고독사 사망자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는 마음.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애도하는 과정. 망자와 그 주변에 예의를 다하는 사회적 장례시스템. 이처럼 마무리가 있는 생애가 가능하다면, 위기에 처한 1인가구들을 애써 발굴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 손을 내밀며 사회 밖으로 나올 것이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고독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본질적 해법이다. 이를 위한 장례희망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상상되길 바란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죽음은 오롯이 혼자서 겪는 과정이고, (내세를 믿지 않는다면) 죽고 나서 감정을 느낄 나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쓸쓸하고 비참하게 느껴질까봐 걱정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사람의 고통과 죽음은 그냥 물리적인 사건이 아닌 사회적으로 해석되는 사건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많은 1인 가구가 죽기 전에 자신이 몸소 겪게 될 고통보다 죽은 다음에 자기 모습이 타인에게 추하게 비춰질까 봐 걱정 - 자기 죽음을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맥락화 - 한다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모임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금은 작은 가족을 만들었지만 오래 1인가구를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1인 가구는 이전처럼 가족을 만드는데 실패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사회의 주류에 가깝다는 것, 그 외에 여러 가지 신선한 통찰을 읽고 감사했습니다. 1인 가구가 우울증에 특히 취약한 편이라는 통계를 읽으면서는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며 독립하고, 저나 배우자도 언젠가 1인 가구로 다시 서야 할 날이 오겠지요. 그 때를 위한 지혜를 미리 빌린 느낌이었습니다. 같이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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