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 읽기

D-29
40대 전후로 찾아온 몸의 변화는 일을 향해 달려온 비혼 직장인의 삶을 흔들었다. 일 중심으로 짜여 있던 생활패턴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싱글들은 건강이 나빠진 뒤 일을 줄였다. 심지어 아예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가족이 있는 40대 생계부양자들은 보통 이들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자녀 교육비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시기라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한다. 반면 돌봐야 할 가족도, 나를 돌봐줄 가족도 없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40대가 되면 여태껏 인생을 쏟아부었던 일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렇게 22명이 가진 세 가지 자본의 수준을 각각 조사해 하나의 표로 정리해 보았다(표1). 그러자 흥미로운 현상이 보였다. 경제자본 상위집단 중 상당수가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에서는 의외로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경제적으로는 가난해도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상, 중, 하를 색깔로 표시했을 때,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의 다른 영역들이 하얗게 비어 있는 경우가 있었고,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돈만 있다면 허전함이나 고독함 정도는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만난 1인가구 중에는 경제자본을 쌓아 올렸지만 다른 영역들이 상당히 결핍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감정이라기보다, 돈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을 놓쳤기 때문에 생긴 것에 가까웠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나는 오늘날 1인가구라는 사회집단에게 가장 가치가 높은 체화된 문화자본은 생활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역량이란, 사람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요리, 빨래, 청소를 능숙히 해내는 살림역량이 대표적이다...한편 내가 만난 경제자본 상위집단 1인가구들은 학력과 같은 제도화된 문화자본은 높은 반면, 생활역량과 같은 체화된 문화자본은 그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저는 사실 여기서(오늘날 1인가구에 가장 가치있는 문화자본이 생활역량) 잘 스스로 설득이 되지는 않았어요. 생활역량의 대부분은 아웃소싱이 가능한것 같고(요리, 빨래, 청소, 각종 문제해결 서비스) 경제자본이 있으면 쉽게 메꿀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1인가구라고 가정했을때도 그다지 살림역량을 키우고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냥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지...
살림역량이 있지만 본인이 바쁘기 때문에 남에게 맡기는 것과, 살림역량이 부재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맡기는 것은 그 결과가 같아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음식을 하는 능력이 그렇습니다. 예전 저속노화 선생님 책에서 읽었는데, 개인피티를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식사를 해서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1인가구의 신체검사를 해보니 마른 비만으로 나와서 충격받은 사람의 일화가 있었어요. 외식은 화려하고 맛있는 건 많아도 건강하게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맛없으면 안팔리니까요) 집에서 직접 해먹는 식사를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행위여서 외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집을 정리하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게 돈밖에 없다고, 돈 외에 소유한 게 거의 없다고 봐야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건강이 안 좋아지고, 치아가 망가지고, 고지혈증이 와서 매일 약을 먹고 있어요. 지금까지 진짜 일밖에 모르면서 살았는데, 좀 벗어나 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돼요. 사람들을 만나면 되지 않냐 물어보는데, 이제 그거는 또 너무 지친다는 거예요. (강진모, 중소기업 대표, 53세)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경제자본이 저절로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나 만족스러운 일상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다인가구에서는 한 구성원이 경제자본을 얻으려고 일에만 집중하더라도 다른 구성원이 완충장치가 되어준다. 개인의 생활역량이 부족해도 서로 채워줄 수 있다. 함께 일상을 나누며 의지하는 식구들은 가장 단단한 사회자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1인가구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회자본이나 체화된 생활역량을 쌓기가 쉽지 않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새로운 사실을 많이 접했지만 특히 이 부분에서 가장 의외성을 느꼈습니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1인 가구가 오히려 더 외로울 수 있다고요.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소득의 함수(소득이 높아지며 다른 문제도 해결되는)의 성격을 보이지만 인간관계는 결코 그렇지만은 않네요.
네. 여기는 저도 공감이 가더라구요. 사회자본은 경제자본으로 살 수 없는것이고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니까요.
내가 만난 저소득 1인가구들은 대부분이 고졸 이하이고 무학력자도 있을 만큼 제도화된 문화자본의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체화된 문화자본인 생활역량은 상당한 수준인 사람들이 많았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기에 “몸으로 때워” 왔던 것이다. 손발이 고생한 만큼 생활역량이 축적되면서 그렇게 생활의 달인이 되어 갔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하지만 모든 저소득 1인가구가 인적 관계망이 부실한 건 아니었다. 이들 중에는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면서 사회자본을 쌓아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승민 씨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낯선 타인과의 교류를 불편해한다. 누군가를 의무감으로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고소득 1인가구들은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을 선별해 사귀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결국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저소득 1인가구들은 경제적 결핍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회복지제도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의무적인 교류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이들의 사회자본을 회복시켰다.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든 새롭게 형성된 사회자본은 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이 다층적 자본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돈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경제수준 안에서도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의 조합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인간관계가 거의 없고 생활역량이 부족한 경우 공허감이 깊었고,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족해도 살림을 꾸릴 줄 알고 지인들과 꾸준히 교류하는 사람들은 안정된 일상을 유지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특히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비물질적 자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고소득층 1인가구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려고 더 많은 경제자본을 축적하고자 한다. 정작 그들의 위험은 돈의 결핍이 아니라 생활역량과 관계의 결핍에서 온다.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생활의 지혜와 신뢰할 만한 타인과의 교류가 부족하다면 삶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돌이켜보면 유튜브 댓글들의 세찬 반발은 한국 사회가 사람들에게 수십 년간 주입해 온 공식에 대한 절박한 신앙고백처럼 느껴진다. “공부 열심히 하고 일 열심히 하면, 돈이 뒤따르고,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그 신화가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우리는 그럼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해진다. 아노미 상태가 된다...경제자본이 넉넉한 1인가구라도 다른 자본이 결핍되어 있다면 지속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 확률은 높지 않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오늘부터 3주차입니다. 3주차: 3월 30일 - 4월 5일 5장. 왜 셰프도 혼자 살면 라면만 먹을까? - 6장.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정말 1인가구가 살림하는 법만 익히면 부실한 식사를 하지 않게 되고 자기를 돌보는 데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는 걸까? 개인의 역량만 강화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내가 보기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멕시코의 식생활 문화를 연구해 온 우리베Ana Cecilia Reyes Uribe 교수는 2019년에 「나는 위층에서 혼자 TV를 보며 밥을 먹어I Go Upstairs and Eat in Front of the Television」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6 ] 그녀는 65세 이상의 혼자 사는 노인 여성들을 인터뷰했는데, 젊은 시절 가족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았던 이들이 자녀 분가와 남편 사별 이후 거의 식사를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주로 가족과 생활하던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이 아니라, 위층 침실에서 TV를 보며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위의 사례들은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살림 9단이라도 혼자 살게 되면 부실한 식사를 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혼자 밥 먹기 어려운 이유는 혼밥의 노하우나 살림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바로 그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의 이유이다. 내가 ‘자기를 돌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정부의 방침이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상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돌보는 사람도 나 자신이고, 돌봄을 받는 대상도 나 자신"인 1인가구에게 살림의 동력은 '자기 마음'이 된다. 그래서 마음에 의욕이 넘칠 때는 살림도 수월하게 하지만, 정작 어디가 아프거나 허한 마음이 되어 돌봄을 받아야 할 때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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