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이걸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수십억 하고도 수십억 명은 아무것도 모르며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알게 되더라도 10분쯤 두려움에 떨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노변의 피크닉 270-27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성적으로는 그냥 납득이 안 된다. 그렇게나 근사한데, 백년이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텅 비어 있다니, 거짓이라니, 살아 있지 않은 인형이라니. 여자가 아니라니.
노변의 피크닉 p.275~27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기억을 되짚어 보면, 어머니의 카디건에는 반투명 호박색 단추들이 달려 있었는데, 금색으로 빛나서 뭔가 각별한 달콤한 맛이 날 거란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자신은 그걸 너무나 입에 넣고 빨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막상 그것들을 입으로 가져가 빨면 언제나 끔찍할 정도로 절망했는데, 그 절망의 경험을 매번 잊곤 했다. 심지어는 잊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기억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노변의 피크닉 p.27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저도 예전에 호박단추를 유난히 좋아했어요. 금은 아닌데, 금 같은 투명한 질감이 신비로워 보였거든요. 근데 이렇게 문학적으로 녹여내다니~
제 과거를 들춰봤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자세해서 놀랐어요. 저도 어릴 때 단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특히 호박이나 마노 재질의 단추들은 색깔도 꼭 달고나나 사탕 같아서 정말로 저도 입에 대봤고요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벌써 레드의 이야기도 결말을 향해가고 있네요. 오늘부로 책의 마지막 부에 들어갑니다. 아직 작품을 읽고 계신 분들은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하는 경우, 모임에 들어올 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살아 돌아온 죽은 자들……" 누넌이 중얼거렸다. "뭐요? 아…… 아닙니다. 그건 불가사의하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지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랄까." (243쪽) "기본적인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당신이 말한 죽은 자들은 영구 축전기보다 더도 덜도 놀라운 게 아니란 걸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군. '바로 그'는 그저 열역학 제1법칙을 거스르는 거고, 죽은 자들은 그저 열역학 제2법칙에서 어긋날 뿐, 차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혈거인들이지. 유령이나 흡혈귀보다 두려운 걸 상상 못 합니다. 그런데 인과관계에 반하는 것은 유령이 무더기로 오는 것보다도 무서운 일이지……" (248쪽)
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외계인학이란 공상과학과 형식적 논리를 부자연스레 섞어 놓은 거라 할 수 있지요. 외계의 이성에 인간의 심리를 갖다 붙이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 그 연구법의 근본에 있으니.
노변의 피크닉 227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는 입을 다물고 자기가 마실 커피를 따랐다. 커피는 뜨겁고 진하고 달아서, 지금은 술보다 그걸 마시는 게 더 좋았다. 커피에서 집 냄새가 풍겨 왔다. 구타의 체취. 그냥 구타가 아니라, 가운을 입은 구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아직 볼에 베개 자국이 남아 있는 구타.
노변의 피크닉 p.27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우리 중에 이미 미남으로 불리던 이가 있었는데, 딕슨이란 자로 지금은 땅다람쥐라고 불린다. '고기분쇄기'에 갔다가 어쨌든 살아 남은 유일한 스토커다. 운이 좋았던 거다.
노변의 피크닉 p.29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땅다람쥐의 과거가 여기서 나오는군요. 그가 과거에는 미남이었다니. 참 기구하고도 아이러니한 운명이네요.
그래, 꽤 괜찮은 스토커가 됐을 거다…… 이런 제기랄, 내가 아서에게 미안해하는 건가?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언제 다른 누가 내게 미안해하는 적이 있던가……? 사실 그랬다. 미안해했다. 키릴이 나에게 미안해했다. 딕 누넌이 나에게 미안해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구타에게 마음을 주는 만큼 미안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마 미안해하고 있을 거다.
노변의 피크닉 p.29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그러다가 가슴팍에 아직 거의 가득 찬 설명이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리고는 광기 어린 기쁨에 휩싸였다. 귀여운 것, 내 사랑.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어가기만 한다면. 이제 조금 남았다. 가자고 레드, 빨강머리. 그렇지, 그렇게. 이제 조금 남았어. 신이고 천사들이고 나발이고. 늪지와 천사장들, 방문자들, 그리고 대머리수리의 영혼 전부 지옥에나 처박히길……
노변의 피크닉 p.30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불에 타 버린 길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20~30미터 정도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는데, 그는 겁에 질려 앞을 보지 않고 달궈진 프라이팬 위의 바퀴벌레처럼 지그재그로 기어 왔던 것이다.
노변의 피크닉 p.30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감사해요, 슈하트 씨! 당신이 저를 끌어내 주셨군요." 레드릭은 침묵했다. 이건 또 무슨 거지 같은 말인가. 감사하다니! 너는 나의 인질이 된 거다. 내가 널 구함으로써.
노변의 피크닉 p.30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지나갈 거다, 지나갈 거야. 레드릭은 생각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내 일생이 이러했다. 몸은 똥통에 박혀 있고, 머리 위로는 번개가 치고.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노변의 피크닉 p.31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괜한 짓을 하는군. 그가 행복하게 생각했다. 너는 지금 아버지를 상기시키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그런데, 상관없다……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통증으로 신음했다. 옷이 몸에, 화상 입은 피부에 완전히 들러붙어 이제는 그 안에서 뭔가가 아프게 터졌고, 마른 붕대가 상처에서 떨어져 나가듯 뭔가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노변의 피크닉 p.31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한 모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슈하트 씨?” 레드릭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가슴팍으로 집어넣어 버리고선 말했다.
노변의 피크닉 p.31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늪지대에 있던 불지옥에서 빠져나왔을 때 처음 걱정한 것 보다는 몸이 훨씬 멀쩡한 상태로 살아 나왔다고 언급하죠. 이때까지만 해도 레드의 화상은 견딜만 했습니다. 그리고 레드는 의도치 않게, 어떤 목적이나 이익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 없이 선행을 하기도 했죠. 버브리지가 싸지르고 간 똥통을 지나갈 때 레드는 태도를 바꿔 모질고 비정한 인간이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몸에 있던 물집들이 터지면서 몸에 고통을 주죠. 그런데 작가는 굳이 물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안에서 뭔가가 아프게 터졌고, 마른 붕대가 상처에서 떨어져 나가듯 뭔가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레드는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모른 척 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고, 역겨운 버브리지를 버려두지 않고 살려왔으며, 딸을 위해 그네를 만들었고, 키릴이 좋아할 것 같아 충만한 깡통을 선물로 줄 생각이었던 사람입니다. 행동과 말투가 거칠고 사나우며, 늘 남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불법적인 일로 먹고 사는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임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레드가 자신과 함께 구역을 지나온 아서를 앞에 두고는 이제 비정해지죠. 출발하기 전만 해도 농담도 주고 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술도 잘 건네주던 레드는 이제 가장 필요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거두고 냉정해집니다. 그 순간 터지고 떨어져 나가 그를 아프게 한 건 물집만은 아닐지도요. 어쩌면 그의 본성 깊은 곳에 있던 선함, 양심, 그의 인간성일지도 모르겠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책의 제목처럼 하몬트로, 그리고 '구역'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피크닉을 다녀오는 기분의 작품이었습니다. 일부러 마지막 몇 장은 남겨뒀다가 저녁 늦게 읽었는데 결말의 비장함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마지막 주차의 내용으로 4부와 결말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1) 4부는 기존과 달리 제목부터 남다릅니다. 1,2,3부는 레드와 딕 누넌의 결혼 여부나 직업이 소제목으로 적혀있는 반면 4부는 어떤 설명도 적혀있지 않는데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2) 레드릭은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그를 도와주기도 하고, 또 끝에 가서는 그의 최후를 방관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레드를 어떻게 보시나요? 그는 비정하고 악한 인간이 된 걸까요? 아니면 아직 선함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3) 마지막 장의 열린 결말에서 여러분은 각자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고 상상하셨나요? 레드는 금빛 구체에 무사히 도달했을 것 같나요? 그가 어떤 소원을 빌었을 것 같나요? 4) 책 전반의 느낀 점과 감상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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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 47. 달밤에 낭독, 입센 1탄 <인형의 집>[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
봄에는 봄동!
단 한 번의 삶방랑자들여자에 관하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편견을 넘어 진실로: 흑인문화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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