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나는 안다. 그는 마치 구역을 완벽하게 알고 이해한다는 듯 행동한다. 그러니까, 그는 금방 죽을 운명이다.
노변의 피크닉 p.2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내게도 잘못이 있다. 과자로 애를 꼬셔 놨더니, 과자는 항아리 속에 있고, 항아리는 화난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었던 꼴이니……
노변의 피크닉 p.35~3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 트럭들은 정말 불쾌하다니까! 13년을 밖에 서 있는데도 새 것 같잖아…… 스무 보 떨어져 있는 벤진 운반차는 체에 걸러진 것처럼 혼자 녹슬어 있는데, 트럭들은 이제 막 벨트컨베이어에서 완성되어 나온 것 같다고…… 구역이란!"
노변의 피크닉 p.38,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구역에서 노획물을 갖고 돌아오면 기적, 살아 돌아오면 성공, 순찰대의 총을 맞아도 운이 따른 거고, 나머지는 운명이다…….
노변의 피크닉 p.4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저기 과학의 영웅들이 인류와 지성, 그리고 성스러운 영혼의 제단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러 간다, 아멘, 이런 의미로. 아니나 다를까, 15층이나 되는 연구소의 창문마다 동정을 표하는 아가리들이 나타났다. 그저 손수건을 흔들지 않고 오케스트라가 없다 뿐이지.
노변의 피크닉 p.4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말해두는데, 이 우주복은 쓰잘머리가 없다. 우주복 없이도 나는 정말 꽤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만큼은 살 건데, 지금처럼 간절한 순간에 그 한 모금을 못 마시면 우주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노변의 피크닉 p.5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앞에서는 우주복을 칭찬하며 이게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 거라고 떠받들다가 '구역'에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흉보고 불평하는 태도의 전환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비 때문에 주인공의 불안감이 느껴지네요.
저는 이 우주복을 입는 공간 이름이 ‘부인실’이라는 게 특이했어요. 왜 부인실일까 ㅎㅎㅎ 나름 옷을 챙겨 입는 방이라, 파우더룸 같은 의미일까요. 공포의 구역으로 향하는 남성들의 파우더룸이라… (현장에 여성 근무자는 없는 것 같죠?)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가서 인식을 못했는데 부인실이라고 표기했군요. 음.. 왠지 '화장실'이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탈의실도 아니고 부인실이라니. 삭막하고 살 떨리는 '구역'의 연구기관에 몇 안되는 유머코드이려나요 ㅎㅎ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이 판본은 2003년 스탈케르출판사에서 간행한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를 기준으로 한다.” 책을 낸 러시아 출판사 이름이 ‘스탈케르’네요! 러시아어로 스탈케르는 스토커와 같은 말이니(@밥심 님께서 알려주신 타르콥스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노변의 피크닉>에 나오는 ‘스토커’를 따서 출판사 이름을 지은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왠지 SF장르 전문 출판사일 듯 싶네요 ㅎㅎ 출판사명을 스트루가츠키 형제 소설에서 따올 만큼 이분들이 갖는 작가로서의 위상이 높은갑네요.
시어도어 스터전이 쓴 서문에서 ‘작가연맹 내 sf 작가가 가장 큰 나라가 헝가리라는 것을 모른다’ 라는 문장을 읽고 헝가리 sf 작가가 누가 있나 생각해봐도 떠오르지않고 검색해봐도 잘 안 나옵니다. 상당한 수준의 작가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만큼 우리에게 동구권 문학작품들이 잘 소개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죠.
저도 위키피디아에서 헝가리 SF작가 명단을 찾아봤는데 도저히 모르겠네요 😅
전 60쪽까지 읽었는데 일단 흥미진진하네요. 깡통을 비롯한 요상한 이름들이 붙여진 사물(?)들의 정체도 궁금하고 레드릭 슈하트가 리더로서 어떤 활약을 보일지도 기대되고요.
53쪽까지 읽었는데 @밥심 님 말씀대로 너무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sf소설을 왜 잘 안 읽고 살았나 싶습니다. 텅빈 깡통, 꽉찬 깡통, 불타는 솜털, 악마의 배추, 마녀의 젤리 등등 이런 것들은 정체가 뭘까요 ㅎㅎ
“저기, 키릴! 만약 당신한테 충만한 ‘깡통’이 있다면 어떨 거 같아? 응?” “충만한 ‘깡통’?” 그는 되물으며 내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말하기라도 한 양 눈썹을 씰룩인다. “그러니까, 그거. 당신의 그 자기성 트랩. 뭐더라…… 물체 77-B 말이야. 바로 그건데 그 사이에 뭔가 빌어먹을 것이, 푸른 뭔가가 있는 거야.”
노변의 피크닉 26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충만한 깡통이라는 표현이 쫌 어색하다고 생각했어요. 찾아보니 한국어판에서 ‘깡통’이라고 번역한 단어가 러시아어 원문으로는 ‘비어 있는(пустой)’에서 파생된 단어 ‘공갈젖꼭지(пустышка)’였고, 이걸 영어판에서는 그냥 ‘empty’라고 번역했네요. ‘충만한 깡통’은 ‘a full empty’라고 되어 있고요. full empty라… 저 말을 들은 키릴의 반응이 이해가 됩니다 ㅎㅎ 그나저나 그 사이에 있는 “뭔가 빌어먹을 것, 푸른 뭔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ㄷㄷ 왠지 무서와요
역시 번역은 쉽지 않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향팔 님은 전에 러시아에서 상당 기간 머문 적 있다고 하셨는데 러시아어나 러시아 역사 등을 공부하신 건가요.
네, 벌써 20년은 된 이야기네요 ㅎㅎ 러시아에 딸랑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갔었어요. 떠나기 전에 두달 벼락치기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다녀와서도 취미삼아 쪼끔 더 공부했는데 이젠 다 잊어버렸답니다.
저게 민달팽이가 죽은 도랑인데, 그들이 깐 길에서 고작 2미터 거리다…… 굵은뼈가 민달팽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멍청한 자식, 도랑에서 떨어져. 안 그러면 묻어 줄 시체도 남지 않을걸……” 앞을 내다본 말이었다. 결국 그는 시체조차 남지 않았으니…… 구역에서 노획물을 갖고 돌아오면 기적, 살아 돌아오면 성공, 순찰대의 총을 맞아도 운이 따른 거고, 나머지는 운명이다……
노변의 피크닉 39-40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레드는 키릴을 엄청 좋아하나봐요. 레드가 아무리 구역을 잘 안다고 해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곳인데, 1년째 깡통과 씨름 중인 키릴에게 “가여움”을 느끼고, 그의 연구 업적을 위해 거길 간다는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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