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상현상을 보며 원전 사고가 떠올랐는데 의외로 이 작품이 출간된 건 체르노빌 사고보다 훨씬 전이더라고요.
작품발표 : 1972년
체르노빌 : 1986년
[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은화

향팔
뭔가 현실을 예언한 작품 같기도 해서 더 놀랍습니다.

향팔
“ 나는 그를, 구탈린을 아주 좋아한다. 나는 주로 괴짜들을 좋아한다. 그는 돈이 있으면 누구에게서든 노획물을 흥정도 하지 않고 부르는 가격 그대로 사서는 밤이 되면 사들인 노획물을 도로 구역으로 가져가 묻어 놓는다…… ”
『노변의 피크닉』 9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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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저주스러운 구역. 구역으로부터의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어딜 가든 누구와 무슨 얘기를 하든 구역, 구역, 또 구역이다…… 구역에서 영원한 세계와 평화가 흘러나온다는 키릴의 말을 생각해 보는 것은 물론, 좋다. 키릴은 좋은 사람이고, 그를 바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고, 오히려 똑똑한 축에 속하지만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른다. 그는 얼마나 많은 개자식들이 구역 주변을 얼쩡거리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런 일도 생긴 것이다. 누군가가 ‘마녀의 젤리’를 필요로 하는 일이. ”
『노변의 피크닉』 97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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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키릴, 사랑하는 나의 친구, 당신이 실수한 거야. 미안, 그런데 당신이 아니라 구탈린이 옳았어. 여기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구역에 선의라곤 없어.
『노변의 피크닉』 10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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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한평생을 늑대처럼 살았고, 한평생 나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백 년 만에 선심을 쓰기로, 선물이란 걸 하기로 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거지 같은 생각으로 그에게 그 ‘깡통’에 대해 말했을까……? 그 일을 떠올리자마자 목이 죄어 왔다. 내가 아마 정말로 울부짖기라도 했는지 사람들이 슬슬 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듯했는데, 구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
『노변의 피크닉』 105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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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이 얘기 알아? 한 바텐더가 잔을 닦고 또 닦다가 악한 혼을 불러냈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거야.”
[…]
“그래서?”
“ 그냥 그렇다고. 당신은 방문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해? 그는 닦고 또 닦곤 했지…… 당신은 우리를 방문한 게 누구 같아? 응?” ”
『노변의 피크닉』 80-8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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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ori
1주 차 분량을 읽었습니다. 아직은 의문투성이네요. 구역에 대한 진정한 공포감은 스토커들만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불안한 느낌에 긴장하며 읽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1부는 각자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따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이 모인 '구역'의 생태계를 묘사하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읽은 내용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1부에서 레드릭 슈하트가 키릴과 구역에서 돌아온 뒤 샤워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왜 레드는 원하는 노획물을 가져왔고 살아서 돌아왔는데도 울었을까요?
2) 작중 묘사를 보면 정부는 하몬트의 주민들이 '구역' 근처에서 전부 떠나기를 원하는 듯 합니다. 슈하트는 앨로이시어스에게 자신이 하몬트에 남으려는 이유와 명분을 설명하는데요. 여러분 생각에는 레드가 정말로 하몬트에 남고 싶어한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실은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나요?
3) 슈하트의 삶에 있어 키릴은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요? 슈하트는 왜 키릴의 죽음에 그토록 슬퍼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향팔
“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젖어 있었다. 샤워실 문을 잠그고, 술병을 꺼내 마개를 열고서는 빈대처럼 입을 딱 붙이고 빨아들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무릎도 공허하고, 머릿속도 공허하고, 가슴도 공허하다. 센 술을 물 마시듯 쉴 새 없이 들이켠다. 살아 있다. 구역이 놓아줬다. 망할 구역이 놓아준 거다. 이런 빌어먹을. 제기랄. 살아 있다. 초행자들은 그걸 쥐뿔도 이해 못한다. 아무도, 스토커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더니 눈물이 내 양 볼을 타고 흐른다. 센 술 때문이거나, 나도 모르는 이유 때문이거나. 나는 술병에 술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빨았다. 나는 젖어 있는데, 술병은 말랐다. 늘 그렇듯 마지막 한 모금이 부족했다. 뭐, 됐다. 그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 살아 있으니. ”
『노변의 피크닉』 67-68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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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은화 님이 내주신 1번 숙제를 보고 책의 해당 부분을 다시 넘겨봤어요. 구역이 주는 엄청난 공포와 압박에서 살아 돌아와서 한순간 긴장이 탁 풀릴 때 뭔가 허무한 느낌이랄까,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기쁨과 동시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을 듯합니다. 키릴과 텐더 같은 초행자들과 같이 갔으니 더 그럴 테고요. 거기다 스토커로 사는 삶의 비애? 이런 고충을 세상에서 나 혼자만 느끼고 있다는 외로움 등의 감정이 마구 섞여있을 것 같아요.

향팔
“ 나는 무엇이 나를 여기에 묶어 두는지 당장 말해 주기로 한다.
“뭐겠어요!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이죠. 시립 공원에서의 첫 키스, 엄마, 아빠, 바로 이 바에서 처음으로 취했던 기억, 친애하는 경찰서에……─이때 나는 주머니에서 코 푼 손수건을 꺼내 눈을 덮는다─아니요. 절대 안 떠납니다.” ”
『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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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레드는 고아고, 거칠게 커온 듯하고, 어린 시절 가족들과 달콤했던 추억 따윈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더구나 “친애하는 경찰서”에 들락거렸던 얘기를 흘리면서 코 푼 손수건으로 우는 시늉까지… 잔뜩 비꼬고 있네요.

향팔
“ “앨로이시어스 맥노트 씨!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우리 작은 도시는 촌구멍이에요. 이제껏 촌구멍이었고, 지금도 촌구멍이죠. 다만 지금─나는 말을 잇는다─이 도시는 미래로 뚫린 구멍입니다. 우리가 이 구멍에서 당신네 비열한 세계로 끌어 올리는 것들이 모든 걸 변화시킬 거예요. 삶은 달라질 거고, 바로잡힐 거고, 모두에게 필요한 모든 게 주어질 겁니다. 그게 당신이 말한 구멍이에요. 이 구멍을 통해 지식이 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줄 거고, 다른 행성들에도 가고, 그 밖에도 또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여기 우리의 촌구멍……”
이 대목에서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는데, 어니스트가 상당히 놀란 기색으로 날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난 남의 말을 그대로 반복해 말하는 걸 정말로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마음에 와닿은 말도 내 입으로 그대로 다시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말들은 내 입에서 나가면서 어딘가 비틀린다. 키릴이 말을 할 때면, 넋 놓고 언제까지고 그의 말을 듣고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키릴과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왜인지 잘 안된다. 어쩌면, 키릴이 비밀리에 어니스트에게 노획물을 줘 본 일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뭐, 상관없지만…… ”
『노변의 피크닉』 84-85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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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레드는 자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인 키릴을 동경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키릴의 말을 믿고 싶어하고, 또 어느 정도는 공감도 하겠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전혀 믿지 않는 것 아닐까요. 키릴은 좋은 사람이지만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레드는 하몬트를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론 떠날 수 없는 것 같아요. 애증의 고향 같은 거죠. 하몬트를 딱히 사랑할 이유는 없지만 이곳엔 연인 구타도 있고 친구 키릴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레드가 구역의 스토커라는 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라, 관 속처럼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고,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래서 구역을 증오하면서도 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향팔
“ “제가 당신네 유럽을 모를 것 같습니까? 당신네 따분함을 못 봤을 거 같아요? 낮에는 내내 일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밤에는 역겨운 매춘부의 침대로 파고들어 사생아들을 만들어 내고. 당신네 파업, 시위, 허울만 남은 정치…… 나는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당신네 유럽을 봤습니다. 그 비참한 모습을요.”
“그런데 왜 하필 유럽 얘길 하는 거죠?”
“아, 어디든 똑같지 않습니까. 유럽에 추위만 더하면 남극인 거고.”
그런데 놀라운 건, 내가 그에게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나에겐 우리의 구역이, 지겹고 역겨운 데다 살인까지 자행하는 구역이 그들의 유럽이나 아프리카보다 백배는 더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딱 저치 같은 저능아들 무리에 섞여 퇴근하는 나, 그들의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낀 나, 이 모든 것에 진절머리를 느껴 아무 의욕도 없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을 뿐이다. ”
『노변의 피크닉』 86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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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레드는 다른 인간들을 다 혐오하지만, 예외적으로 키릴과 구타에게만은 진실하다고 느꼈어요. 키릴이 레드를 연구소에 꽂아주고, 스토커인 그를 어느 정도는 사회인으로 살게끔 도와준 듯하고, 레드는 그런 키릴의 순수함과 학자적 열정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키릴은 레드와는 아주 다른 인간이라, 레드 입장에선 살짝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레드가 거칠고 부정적인 어둠이라면, 키릴은 부드럽고 긍정적인 빛 같다고나 할까요. 레드가 ‘충만한 깡통’을 가지러 구역에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한 걸 보면 키릴을 정말 좋아한 모양인데(물론 특별수당도 걸려 있지만), 그의 죽음으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사랑하는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꼴이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레드가 샤워실에서 눈물을 흘릴 때, 키릴에게 드리운 은빛 거미줄의 잔상 때문에 본인도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던 건 아닐까도 싶네요.

은화
사실 전 1부를 읽을 때 거미줄이 진짜로 차고에 있던 사물이 아니라, 레드릭 본인의 어떤 관념이나 자기암시에 의한 환상이 아닐까 상상도 해봤어요. 정말로 그게 '구역'에서 일어나는 특이현상인지, 아니면 레드릭의 과민한 신경증의 발현이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재밌네요.

향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차고 안에 은빛 거미줄이 있다가 사라지고, 키릴은 그걸 보지도 못했고, 등을 계속 확인했지만 없었던 걸 생각하면…. 더구나 구역에선 인간의 머리 속에 무슨 작용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꽃의요정
'충만한 깡통'이란 단어가 오늘의 키워드로 다가왔어요. '하얀 콜라' 이런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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