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당신네 유럽을 모를 것 같습니까? 당신네 따분함을 못 봤을 거 같아요? 낮에는 내내 일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밤에는 역겨운 매춘부의 침대로 파고들어 사생아들을 만들어 내고. 당신네 파업, 시위, 허울만 남은 정치…… 나는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당신네 유럽을 봤습니다. 그 비참한 모습을요.”
“그런데 왜 하필 유럽 얘길 하는 거죠?”
“아, 어디든 똑같지 않습니까. 유럽에 추위만 더하면 남극인 거고.”
그런데 놀라운 건, 내가 그에게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나에겐 우리의 구역이, 지겹고 역겨운 데다 살인까지 자행하는 구역이 그들의 유럽이나 아프리카보다 백배는 더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딱 저치 같은 저능아들 무리에 섞여 퇴근하는 나, 그들의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낀 나, 이 모든 것에 진절머리를 느껴 아무 의욕도 없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을 뿐이다. ”
『노변의 피크닉』 86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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