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합적인 감정 때문일 듯 한데 안도감이 제일 클 것 같아요.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곳에 갔다가 생존해서 귀환했을 때 그런 마음이 크게 들지 않을까요.
2. 최근에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읽어서인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더 신경이 쓰이네요.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3. 거칠게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른, 어쩌면 자신이 누리고 싶었던 삶의 모델이라고 키릴을 생각했던게 아닐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밥심

은화
1) 67p에서 레드릭은 '구역이 놓아줬다. 망할 구역이 놓아준 거다. 이런 빌어먹을. 제기랄. 살아 있다.' 라고 말합니다. 살아서 멀쩡히 돌아왔는데도 이를 전혀 기뻐하지 않죠.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 아니며, 단지 '구역'이 선심을 썼기에 지금까지 스토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어떤 자조감이나 회의감이 밑바닥에서 느껴집니다.
현재는 2부 중간을 읽고 있는데, 레드의 보다 구체적인 배경이나 과거가 나와야 알겠지만 그는 다른 직업을 가질 여유가 없어 보이거든요. 그의 교육 수준이나 가정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레드 본인의 학력이나 돈 씀씀이를 볼 때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당장 손에 쥘 현금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죠.
이는 악순환인데, 레드릭이 돈이 궁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감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자극에 노출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보다 자극적인 해소 수단에 빠집니다. 술을 입에 달고 살고, 카드놀이나 슬롯 머신으로 기껏 번 돈을 날리고 있죠. 돈을 원하지만, 정작 그 돈이 들어왔을 때 순간의 욕구를 참아 만족을 이연시킬 정도의 심리적/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화가 많이 나거나, 짜증과 피로가 누적되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레드릭은 결국 구렁텅이에 빠져있다고 생각됩니다.
궁핍한 삶 → 급전을 마련할 수 있는 위험한 직업 → 불확실한 보상과 높은 스트레스 → 당장의 불안과 욕망을 해소할 욕구의 폭발 → 배설하듯 무의미하고 폭력적인 소비 → 이하 반복... 인 셈이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부터 끊어야 할지 모르겠는 악순환이 레드릭은 지긋지긋할 겁니다. 살아야 하기에 버티기만 하는 삶 속에서 그가 기대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죠.
이후의 2번 질문과도 연관되는데, 전 레드릭이 앨로이시어스에게 답한 빈정 섞인 응답에서도 그렇고 내심 현재의 삶이 끝장났으면 하는 욕망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읽고 있는데요.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으며, 무엇 하나 제대로 가져볼 수 없는 그의 인생은 오히려 '구역'이 그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역이 놓아줬다'라고 말한게 아닐까 싶네요.
구역을 통해서만 먹고 살 수 있으나, 그 구역 때문에 항상 마음이 편하지 못하며 지옥 같은 두려움을 안고 가야 하는 인생.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마저도 '구역'에게 뺏긴 슈하트는 '이번에도 죽지 못했다'는 가장 깊은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린 것 같습니다.

은화
2) 전 그래서 레드릭이 기회만 된다면 하몬트를 떠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구역'에 경제적으로/심리적으로 종속되어 있기에 하몬트를 떠날 수 없죠. 더구나 사랑하는 연인 구타가 있기에 그는 책임도 져야 하는 입장이고요.
자신이 무언가를 정말 너무나 싫어하는데도 그것을 뿌리칠 수 없을 때 사람은 자괴감을 느끼죠. 남는 수단은 자신의 처지를 낮추고 자조함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슈하트가 거친 삶을 살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듯 살아가는 이유도 이런 심리적 기반 때문인 것 같고요. 스스로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서 언제든 허무하게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인생을 산달까요.
그런 복잡한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민국의 사무직 관리가 와서는 속 편하게 '왜 나이도 젊은 사람이 아직도 이런 곳에 남아있냐'라고 말했기에 레드는 더 빈정댄 것 같습니다. 자신 같은 사람들의 현실을 모르는 정부와 외부인들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부러 하몬트에 남는 이유와 명분을 말하지만, 그건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조롱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고요.

은화
3) 지금까지 나온 인물들 중 키릴은 몇 안되게 레드를 '대가 없이'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입니다. 순찰대와 UN장교들은 그를 권위적으로 대하며 항상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죠. 보르시치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업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온통 '구역'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몬트 외부 세계의 사람 들이나 과학자들은 그가 보기엔 몸 편하게 앉아 자신이 지옥에서 퍼내온 물건들의 이익을 가져가는 착취자나 위선자들이고요.
하지만 키릴은 레드의 눈으로 보기엔 바보스러울 정도로 '구역'이 주는 선물을 통해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레드에게 말해왔고요. 주변 모든 것이 혐오스럽게 보이는 슈하트에게 키릴은 몇 안되는 정신적 탈출구였을 겁니다. 실제로 키릴이 말한 미래가 가능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런 분위기와 이상을 가진 사람이 자신과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27p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됐다. 나의 키릴이 완치됐다. 귀가 쫑긋 서고 꼬리도 빳빳해졌다." 마치 개처럼 키릴을 묘사했죠. 순수한 충성심과 인간을 따르는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개를 사랑하죠. 말 그대로 레드에게 키릴은 개와 같은 동반자라는 심리를 한 문장으로 담아냈네요.

꽃의요정
은화 님의 글을 읽기 전엔 레드릭에 대해 '알콜중독의 피폐한 젊은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읽은 후에는 결국 인간이란 지켜야 할 존재(사랑하거나 받을)가 없이 괴로운 상황에 노출될 때, 특히 젊을 때 레드릭 같은 모습이 되기 쉬워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갈수록 사는 게 힘들고 내가 왜 애를 낳아서 이렇게 지구에 쓰레기를 버리고, 낭비를 하고 살아야 하나란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란 끈 때문에 저를 파괴하며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의 부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역으로 저를 지켜준다는 쓸데없는 이야기였습니다. ^^;;
(아직 '구타'에 대한 부분을 안 읽어서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borori
1)전 구역에서 키릴과 함께 있을 때 제대로 조언해 주지 못한 감정과 그에 대한 직감적인 무언가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2)구역에 대한 두러움과 호기심 같은 복합적인 감정과 함께 스토커로서 일할 수 있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동료 이상으로 자신을 인정해 준 진정한 동료여서 그런 것 아닐까요?
1부 내용은 무언가 짐작하기에 궁금함 투성이라 질문만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안개같이 가려진 무언가를 걷어내기 위해 빠르게 읽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꽃의요정
저 사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고 75p까지 읽다가 '옮긴이의 말'을 읽고 아하! 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요.
아마 더 읽어 봐야 발제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영영 못 하거나...ㅎㅎ)

은화
전반적으로 1부에서 느껴지는 주된 분위기는 '불안함'이었습니다. 레드릭의 심리와 행동이 안정되어 있지 않죠. 그의 경제상황이나 직업의 기반도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구역'이라는 환경 자체의 예측불가능한 속성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불안함이 전달되죠.
불안은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거나,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때 발생하죠. 이런 통제불능에서 오는 '무기력감과 불안'은 작품에서 계속 액자처럼 반복하여 되풀이 되는데요.
가령 '구역'의 경우, 구역은 인간이 원한 적이 없으며 '방문'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지구와 인간은 그저 방문을 받아들여야 했을 뿐이죠. 비록 시간이 지나 UN과 국제기구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기본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요.
슈하트 같은 스토커들은 불안정한 구역에서, 언제 뭐가 나올지 모르는 환경에 노출된 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노획물을 위해 스스로를 밀어 넣습니다. 더 좁게 들어가면 당장 다음 둔덕에 무슨 보이지 않는 이상현상이 있을지 알 수 없죠.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자연환경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위험합니다. 마치 '무해한' 버섯처럼 의심 없이 접근했다가 치명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슈하트는 구역에만 들어서면 오한을 느끼고, 밖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됩니다. 아니, 다른 인간이 되어야만 하죠. '구역'이라는 낯선 곳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슈하트는 구역에 들어가면 살아도 살아있는 몸이 아니며, 자신의 모든 감각과 정신을 구역에게 바치듯이 헌납했다가 구역이 이별을 허락해야만 떠나는 인질의 처지가 되어 버렸죠.
자신의 인격도, 정신도, 심리도 모두 구역에게 바친 레드릭은 인생에 의지할 만한 것이 얼마 없고 그로 인해 근원적인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 불안을 잊고자 자극과 중독에 매달리고요.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이 휑하니 비어있고 구멍이 뚫려 있으며 그 빈자리는 '구역'이 들어차 있습니다.
레드릭이 구역에서 노획물을 가져오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구역에게 스스로를 빼앗기고 있는 중일 겁니다. 레드릭만이 아니라, 모든 스토커와 구역으로 먹고 사는 인간들 전부 처지가 다르지 않죠. 자신들이 구역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구역이 오히려 그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니까요.

은화
“ "당신이 언제나 개자식이었기 때문이지, 대머리수리." 레드릭이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개자식이라. 맞는 말이야. 개자식이 아니면 안 되지. 하지만 다들 개자식 아니었나. 파라오도, 민달팽이도. 그런데 나만 남았네. 왜인지 아나?" ”
『노변의 피크닉』 p.11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은화
“ "도살자, 빨리 도살자에게 데려다주게!" 버브리지가 온 몸을 앞으로 내밀고 레드릭의 뒷목에 열에 들뜬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황급히 말했다. "지금 바로 그에게 데려다줘! 지금 당장! 그는 내게 700 빚진 게 있어. 그러니까 빨리 가게. 왜 기어가는 건가, 습지를 지나가는 진드기처럼!" 그러더니 갑자기 침을 튀기고 기침을 하느라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리며 무기력하게, 그런 중에도 악에 받쳐서 상스럽고 지저분한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
『노변의 피크닉』 p.126~12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은화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추잡함과 지저분함이 느껴지는 상황 묘사였습니다. 자기 몸이 그 지경이 되고, 딸과 자식 걱정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바로 자기에게 빚진 상대에 집착하는 모습. 버브리지는 다리를 잘라도 오히려 '싸게 먹혔다고' 좋아할 사람일 것 같네요.

은화
상황 설명을 보며 저는 일리야 레핀 화가의 '이반 뇌제, 아들을 죽이다'가 떠올랐습니다. 버브리지가 딱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레드릭 뒤에서 악착같이 침 튀기며 매달릴 때의 얼굴 표정이 딱 저러지 않았을까 상상했습니다.

밥심
오호, 그럴듯합니다.
근데 일리야 레핀을 전 처음 들어서 찾아봤더니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미술가로 꼽힌다네요? @@
제가 문학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고 서구 위주로 천착해왔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네요.

향팔
레핀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랍니다 :D @은화 님께서 올려주신 이반 뇌제 그림도 좋고, 저는 ‘볼가 강의 배끄는 인부들’을 제일 좋아해요. 러시아에 있을 때 미술관에서 그림 엽서도 많이 사왔지요 ㅎㅎ
밥심
그렇구만요. 몇 점 찾아보니 사실주의 화풍이 강렬하네요. 전 러시아 출신 화가로는 말레비치와 칸딘스키 정도만 압니다. ㅋㅎ

향팔
톨스토이와도 친분이 있어서 초상화를 많이 그려줬다고 하네요. 요 책 표지로 쓰인 그림도 레핀의 작품이래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위대한 소설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시절에도 채울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마음을 만족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깨달음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은 후 작품의 색깔까지 완전히 바꾸어 집필한 10편의 명 단편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독자들과 만난다.
책장 바로가기
밥심
말씀듣고 보니 그의 화풍 같네요.
어쨌든 @은화 님 덕분에 러시아 출신 화가 한 명 더 알게 되었습니다.

은화
그는 몽키를 팔에 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이를 깨울까봐 무서웠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구역과 죽음에 물들어 마귀처럼 더러웠다.
『노변의 피크닉』 p.13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은화
“ 깨끗이 씻은 맨발이 시원한 바닥에 닿는 감촉을 음미하며 그는 창고로 걸어가 걸쇠를 잠갔다.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팔꿈치까지 올려 끼고서 자루에 든 것들을 탁자에 꺼내 놓았다. '깡통' 두 개. '옷핀'이 든 상자. '배터리' 아홉 개. '팔찌' 세 개. 그리고 고리처럼 생긴 것. '팔찌'와 비슷한 모양인데, 백색 금속으로 되어 있고 팔찌보다 더 가벼우며 직경은 30밀리미터 더 크다. 비닐봉지에 담긴 '검은 물방울' 열여섯 개. 보존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주먹 크기의 '스펀지' 두 개. '근질이' 세 개. '탄산진흙'이 든 병. 자루에는 유리섬유로 세심하게 싸여 있는 도자기 함도 있었는데, 그건 꺼내지 않았다. 그는 탁자에 놓인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
『노변의 피크닉』 p.14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은화
스토커는 구역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구역'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 물건들은 마치 일종의 부산물이나 노폐물로 느껴지네요. 이것들이 인간에게 주로 안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그렇고, 또 이것들을 얻기 위한 과정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밖에서는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유통되고, 수상한 사람들이 노린다는 점에서 구역의 물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추잡하고 지저분한 인상을 줍니다.
구탈린이 왜 악마의 것은 지옥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네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