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그렇구만요. 몇 점 찾아보니 사실주의 화풍이 강렬하네요. 전 러시아 출신 화가로는 말레비치와 칸딘스키 정도만 압니다. ㅋㅎ
톨스토이와도 친분이 있어서 초상화를 많이 그려줬다고 하네요. 요 책 표지로 쓰인 그림도 레핀의 작품이래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위대한 소설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시절에도 채울 수 없었던 톨스토이의 마음을 만족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깨달음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은 후 작품의 색깔까지 완전히 바꾸어 집필한 10편의 명 단편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독자들과 만난다.
말씀듣고 보니 그의 화풍 같네요. 어쨌든 @은화 님 덕분에 러시아 출신 화가 한 명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몽키를 팔에 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이를 깨울까봐 무서웠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구역과 죽음에 물들어 마귀처럼 더러웠다.
노변의 피크닉 p.13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깨끗이 씻은 맨발이 시원한 바닥에 닿는 감촉을 음미하며 그는 창고로 걸어가 걸쇠를 잠갔다.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팔꿈치까지 올려 끼고서 자루에 든 것들을 탁자에 꺼내 놓았다. '깡통' 두 개. '옷핀'이 든 상자. '배터리' 아홉 개. '팔찌' 세 개. 그리고 고리처럼 생긴 것. '팔찌'와 비슷한 모양인데, 백색 금속으로 되어 있고 팔찌보다 더 가벼우며 직경은 30밀리미터 더 크다. 비닐봉지에 담긴 '검은 물방울' 열여섯 개. 보존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주먹 크기의 '스펀지' 두 개. '근질이' 세 개. '탄산진흙'이 든 병. 자루에는 유리섬유로 세심하게 싸여 있는 도자기 함도 있었는데, 그건 꺼내지 않았다. 그는 탁자에 놓인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노변의 피크닉 p.14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스토커는 구역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구역'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 물건들은 마치 일종의 부산물이나 노폐물로 느껴지네요. 이것들이 인간에게 주로 안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그렇고, 또 이것들을 얻기 위한 과정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밖에서는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유통되고, 수상한 사람들이 노린다는 점에서 구역의 물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추잡하고 지저분한 인상을 줍니다. 구탈린이 왜 악마의 것은 지옥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네요.
@은화 님 글을 읽다보니, 구역은 ‘방문자’들의 폐기물 하치장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역의 물건들은 방문자들이 지구에 피크닉 왔다가 버리고 간 쓰레기에 불과한 것일까요.
우리도 쓰레기를 버릴 때 별 생각 없이 버리는 것처럼 외계인도 별다른 의도 없이 그랬을 수도 있겠군요ㅎㅎ 이전 스타니스와프 렘이 모임에서도 외계인들이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 때문에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단편이 있었는데 그 내용도 떠오르고요. 전 책 시작 부분에서 '구역'의 좌표가 지구본을 돌리면서 선을 쏘인듯 이어진다고 교수가 말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외계에서 실험이나 그냥 관찰 목적으로 방사선마냥 강한 무언가를 쏜 게 아닐까 하는..
상식에 의거하지 않고, 어떠한 도덕적 망설임도 없이 두 악한은 생명 없는 지구의 바위에 상해 버린 젤라틴 풀 여섯 통과 알부민 페이스트 두 통을 쏟아붓고는, 그 혼합물 위에 발효한 인산, 오탄당, 과당,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곰팡이가 핀 아미노산 세 병을 비우고는, 끈끈한 더미를 왼쪽으로 휜 석탄 삽과 역시 왼쪽으로 휜 부지깽이로 섞어서, 장래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단백질을 왼쪽으로 휘어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7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폴란드가 낳은 SF 문학의 거장이자 소설가, 극작가, 미래학자, 문명학자, 과학 철학자, 문학 평론가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전방위적 문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가 공인된 폴란드어 판본, 원전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그 왼쪽으로 휘는 성질과, 이러한 악의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서 오늘날까지 작용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으로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이름 지은 이 아르테팍툼 아브호렌스, 끔찍한 인공물이 고통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닌가요?
노변의 피크닉 p.7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오, 렘의 단편에 그런 내용이 있군요. 지난 모임에 참여를 못했는데, 렘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그분 작품에도 부쩍 호기심이 생깁니다.
렘 님은 그믐에서 읽었던 3개의 작품으로, 제 마음의 아파트 중 펜트하우스에 입주하셨습니다.
오.. 꽃의요정님 말씀에 더 구미가 땡깁니다요 ㅎㅎ <솔라리스>부터 읽어보려고요! 지난 렘책 모임에서 나누셨던 얘기들도 중간중간 열어보면서요.
근데 지구인들도 그럴 거 같아요. '지구만 깨끗하면 되지 뭐'란 생각으로 어느 행성을 식민지화해서 그곳에 쓰레기부터 갖다 버릴 것 같아요. 다들 '쓰레기'는 내 눈 앞에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이잖아요.
같은 생각입니다. 당장 서울에서 나오는 쓰레기만 봐도 다른 지역으로 계속 떠넘기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우리 동네’에 소각장 생기는 것도 억울하다 주장들을 하고 있고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잠시 후 저편에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와 짧은 신호음이 들렸다. 그러자 레드릭은 몸을 일으키고는 몽키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제 더는 아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바지와 재킷을 입었다. 몽키는 여전히 조잘거렸지만, 그는 정신을 딴 데 두고 입만 웃어 보였고, 그렇게 아빠 슈하트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입술을 깨문 채 주변 세계를 차단해 버렸다.
노변의 피크닉 p.143~14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 부분에서 전 슈하트가 무서운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정황상 잠도 못자고 꼬박 밤을 새운 상황인데도 마음이나 육체의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일 앞에서는 가족이라도 마음을 차단하는 면모가 굉장히 차갑게 다가오네요.
저도 이 대목 읽을 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2부 마지막에 가서 가족을 생각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드러나는 문단을 보면 이 정도 굳은 마음가짐과 집중이 아니면 안되겠다고 이해가 됩니디.
제가 레드의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버틸 수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네요. 레드가 거칠고 때론 부정한 일에 가담하기는 해도 근본은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그의 인생이 매순간 순탄하지 않아 안타깝기도 하고요. 절친하던 친구가 죽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도 않고, 생계를 위해 여전히 위험한 스토커 일에 매달리고 있고, 건강마저도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고요. 매페이지마다 쓴맛이 느껴집니다.
"너 거만해졌구나." 누넌이 나무라듯 말했다. "거만하다니. 돈을 한 장 한 장 세고 있는 게 싫을 뿐이지."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누넌이 정신을 딴 데 두고 대꾸했다. 그는 옆 의자에 놓인 레드릭의 서류 가방을 무심히 보더니 슬라브 문자가 새겨진 은판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다 맞는 말이야. 사람에게 돈이 필요한 이유는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지……"
노변의 피크닉 p.14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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