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난 누가 날 위해 조건을 맞춰 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난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맞췄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서."
『노변의 피크닉』 p.149,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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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그대는 악에서 선을 행해야 할지니, 달리 선이 나올 데가 없기 때문이다.
『노변의 피크닉』 14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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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처음에는 이 문장이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읽다보니 점점 알게 되더라고요.
꽃의요정
이 문장 보고 아침부터 웅장이 가슴해졌어요!
꽃의요정
나는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역병이 아니라 공포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공포스러웠다.
『노변의 피크닉』 48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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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 입 다물어, 그리고 주위를 제대로 잘 봐, 안 그러면 난쟁이 린던과 같은 일을 겪게 될 거야, 라고 일러 준다. 효과가 있었다. 난쟁이 린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그래야지. 구역에서는 아는 길로 100번을 탈없이 다녔어도 101번째 죽을 수 있다. ”
『노변의 피크닉』 66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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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러고 나서 그는 갓등에서 흘러나온 아늑한 불빛이 비추고 있는 복도의 부드러운 카펫 위를 걸 었다. 이곳에서는 비싼 담배, 파리의 향수, 지폐가 가득 채워진 번쩍거리는 천연 가죽 지갑 냄새, 하룻밤에 500을 부르는 비싼 여인들 냄새, 묵직한 금으로 된 담뱃갑 냄새가 났다. 전부 싸구려 냄새다. 구역에서 자라고 구역을 빨아먹고 배불리 먹고 탈취한, 구역 덕에 살찌운 역한 곰팡이의 냄새. 이 곰팡이에겐 다 상관없었다. 특히 구역에 있던 모든 것을 배불리 먹고 실컷 훔친 다음에 벌어질 일, 그리고 구역의 것들이 밖으로 나가 세상에 뿌리를 내린 후의 일은 더더욱. 레드릭은 노크 없이 874호 문을 밀었다. ”
『노변의 피크닉』 15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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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앞 부분에서 레드릭이 거리의 공감각적인 냄새와 환상을 경험하는 부분과 대비되더라고요. 밝고 정신없는 도시의 풍경과 달리, 정적이고 조용하며 공기가 굳어있는 듯한 호텔 내부. 빠질 수로가 없어 고이기만 하다가 썩어 냄새가 나는 늪지대, 진창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저 호텔이 과연 하몬트에 원래부터 있던 건물일까 생각도 듭니다. 구역과 그 부산물의 재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온갖 검은돈과 사업가, 노름꾼, 탕자, 거물과 뒷세계 사람들의 힘으로 세워진 곳이 아닐까요.
'구역'이 점차 마을 곳곳에 퍼져나가 주변 풍경을 바꾸는 모습에서 곰팡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해 보이네요.
향팔
네, 은화님 말씀대로 메트로폴은 노다지를 노리고 몰려든 수요 덕에 세워진 것 같네요. 하몬트는 본래 그냥 조그만 도시라고 했으니까요. 여드름 택시기사 장면에서도 나오듯이 하몬트 전체가 외부에서 몰려든 하이에나들로 쩔어 버린 분위기에요. 구역에서 스토커의 목숨과 맞바꾼 물건들로 배를 채우는….
레드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들 욕을 하고,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고, 호텔방 바닥에 담뱃재를 떨구고 꽁초를 버리는 모습에서 그가 이 호텔로 대표되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환멸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레드 본인도 그 안에서 한몫 하고 있으니 자기혐오에 시달릴 것 같아요.
은화
154p에서 레드릭은 874호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슈하트를 기다리고 있던 중개상 또는 매수자가 있죠. 그의 눈은 천사처럼 맑고도 푸르다고 묘사됩니다. 반면 작품 초반에서 구탈린은 구역과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지옥과 악마라며 울부짖죠. 천사와 악마의 대비가 눈에 띄는데 혹시나 해서 숫자 '874'를 찾아봤습니다.
'수비학(Numerology)'은 매우 오래된 신비주의로, 숫자 그 자체와 배열이 갖는 관념적 의미를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학문이란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점성술을 통해 인간이 길흉화복과 미래 또는 자신의 상태를 해석하려 하는 것과 비슷한데요. 한마디로 오컬트나 미신의 영역이죠.
수비학의 해석 중 하나인 '엔젤 넘버(Angel Number)'는 개인이 살면서 우연히 자주 보게 되거나, 떠올리게 되는 숫자에 영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해석학입니다.
엔젤 넘버에서 '874'는 번영(Prosperity)을 의미한다고 해요. 옥스퍼드 사전의 정의로는 '(주로 재물이) 풍요롭고 성공적인 상태'입니다. 이 숫자를 접한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해왔다면 합당한 보상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므로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말고 더 노력하면 풍족함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2부의 전개를 생각해보면 꽤 의미심장한 숫자 해석이라고 느껴지네요. 예상치 않게 거액의 보상을 챙긴 레드, 생각하지도 않앗던 '팔찌'를 가져가게 된 매수자, 호텔에 들어차 있는 벼락부자와 재물을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 목숨을 바쳐가면서 기진맥진해가며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모든게 무로 돌아가게 생긴 레드와 그의 가족들, 레드의 땀과 피로 편하게 원하는 걸 얻어가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어디까지나 오컬트적 요소이므로 재미로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은화
겉으로 보기에는 천사처럼 평온하고 온화해 보이는 외모,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를 불안감을 내포한 인물. 레드릭과 마주 앉아 있던 쉰 목소리의 노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 모르겠네요. 소설 전반적으로 끊어질 듯 말 듯 고무줄을 팽팽하게 잡아 늘린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이 인물도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성격 좋고 예의 바른 사람 같지만 레드릭은 절대 눈을 떼지 않죠.
다른 작가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소설 하나가 생각나는데요. 미국 작가 할란 엘리슨의 단편소설집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할란 엘리슨이 작품 활동을 할 당시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때였다고 해요. 소설 속 주인공은 교육을 받은 흑인인데, 알게 모르게 그의 인종으로 인해 능력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고 그 차별에 익숙해지고 찌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저평가하며 살아가요. 그런데 이 주인공은 초능력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내면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점잖고 예의 바르며, 순백의 고결해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내면을 품고 있는지를 다루는데 당시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잃어버린 몸중단편만으로 휴고상, 에드거상, 네뷸러상, 브람스토커상, 세계판타지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60여 차례나 수상한 SF, 판타지 소설계의 대부이자 살아 있는 전설, 할란 엘리슨의 국내 첫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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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 […] 하지만 일단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해요. 사진과 내용물이 든 도자기 함. 우리 사진기를 돌려주되 필름엔 사진이 찍혀 있어야 하고, 우리의 도자기 함에는 내용물이 들어 있어야 하고요. 그것들만 돌려주면 당신은 앞으로 다시는 구역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
『노변의 피크닉』 163-16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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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쉰목소리가 하는 말 중에 “우리 사진기”와 “우리의 도자기 함”을 “돌려” 달라고 말하는 게 눈에 띄었어요. 구역의 물건이 마치 원래 자기들 것이라도 되는 것마냥, 아무렇지 않게 돌려달라고 하다니… 쉰목소리의 캐릭터를 나타내주는 대사인 듯해요.
(그와중에 사진기 안의 필름이랑 도자기 함 속 내용물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밥심
수비학이라.. @은화 님 덕분에 신기한 것 많이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저 같으면 우리 집에 가는 버스 노선 번호 중 아무거나 썼을 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
은화
그냥 제가 김칫국을 마시는 것 같긴 하지만요 😂
형제 작가들이 오컬트까지 고려해서 넣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편이 재밌어서 저만의 감성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은화
"바로 그렇게 그는 너희 바보들을 다 속여 먹는다고……"
『노변의 피크닉』 p.17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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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괜찮으니까 기운 내…… 귀는 쫑긋, 꼬리는 빳빳하게.
『노변의 피크닉』 183-18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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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이 말이 또 나왔네요. 키릴을 두고 했던 표현을 구타에게도 하고 있군요.
은화
키릴 때도 그렇고, 구타도 그렇고 레드는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은 개와 같다고 생각하나 봐요. 아니면 충직하고 자신을 배신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사람들을 갈망하는 건지도요.
은화
“ 땅다람쥐가 마침내 절뚝거리며 다가와서는 레드릭에게 잔을 건네고 소심하게 친근감을 드러내면서 집게발 같은 손으로 레드릭은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 딕슨." 레드릭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이게 나에게 딱 필요한 거였어. 언제나처럼 훌륭하군, 딕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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