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그러게요.. 구역의 물체들은 현재로서는 인간에게 위험하거나, 원리도 모르는 물건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그래도 골동품이나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으니 부호나 권력자들은 '구역'의 물건이라는 이유 그 자체로 얻고 싶어하나 봐요. 원래는 매매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물체들이니까요. 다만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도 있는 걸 생각해보면.. 안좋은 목적으로 본인들이 개발하고 활용하려는 세력들이 탐낼 것 같습니다. 애초에 시장에 나오는 방법도, 유통되는 과정도 모두 불법적인데 이런 데 손을 뻗치는 세력은 일반적인 목적이 아닐테니까요.
스토커들로부터 구역의 물건을 사들여서, 그걸 군사적 목적이나 테러 목적으로 원하는 세력들에게 팔면 톡톡히 돈을 벌 것 같아요.
근데 사용할 줄은 아는 건가요? 제가 읽은 부분까지는 다들 그 물건들을 가지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ㅎㅎ
글쎄요 ㅎㅎ 지금 암것도 모르더라도 일단 적보다 먼저 확보하고 있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바로 그’라는 구역에서 가져온 물건은 자동차 동력원으로 잘 사용하는 내용이 3부에 나오긴 합니다.
역시...인간들은 뭐든 해내는 거 같아요. 참 인류가 싫긴 한데, 뭔가를 해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합니다.
뭐, 나야 좋지. 나는 칭찬 받는 걸 좋아하니. 특히 미스터 렘천이 마지못해 하는 칭찬을. 이상하다. 어째서 우리는 칭찬받는 걸 좋아하나? 그런다고 돈이 불어나는 것도 아닌데. 명예? 우리가 명예로울 수 있단 말인가?
노변의 피크닉 p.19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앞의 2부에서 레드와 누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 대화가 겹쳐 보이네요. 돈도 명예도 둘 다 필요하지만, 정작 둘 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게 되고요.
도시에서는 저런 게 유행이었다.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노는 것. 우리가 활기차고 끈기 있고 의지가 굳은 젊은이들을 길러 낸 것이다……
노변의 피크닉 p.196,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발을 흔들며 눈앞을 오가는 구두코를 음울하게 바라보면서 누넌은 그까짓 당신네 포상이야, 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네 그따위 훈장들은 화장실에나 걸어 뒀다고. 자기가 무슨 현자인 줄 아나, 상대가 어리면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네놈이 말 안해도 난 여기서 내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잘 아니까 내 적에 대해 설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하란 말이다. 내가 언제 어떻게, 뭘 망친 건지…… 그 개자식들이 또 무슨 짓을 한 건지…… 어디서, 어떻게, 대체 무슨 빈틈을 찾아낸 건지……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다. 난 뭣 모르는 애가 아니란 말이다. 벌써 반백 년을 살았고, 그따위 훈장이나 받자고 여기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노변의 피크닉 p.20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속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누넌에게서 직장인 또는 하급자의 설움이 느껴지네요. 50대가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치여 사는 모습을 보니 이 인물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싫은 소리와 타박을 받으면서 모멸감을 뒤로 삼키는 내면 묘사가 좋았습니다.
"… 회장님, 제 구역에서 밀렵은 사실상 끝난 것 같습니다. 위 세대는 떠났고, 젊은 세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게다가 수작업의 이점도 예전만 못하죠. 기술이, 스토커 로봇이 도입되고 있어요."
노변의 피크닉 p.205,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제 벌써 새로운 스토커들, 사이버네틱스로 무장한 스토커들이 등장했다. 과거의 스토커는 동물적인 집요함을 갖춘 지저분하고 음침한 인간으로, 구역을 조심조심 기어가 큰돈을 벌어들이곤 했다. 신세대 스토커는 넥타이를 맨 멋쟁이 엔지니어로, 구역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어딘가에 앉아 입에는 담배를 물고 팔꿈치 옆에는 에너지 음료가 든 잔을 두고 편안히 앉아서 화면들을 본다. 샐러리맨인 것이다. 상당히 합리적인 장면이다.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논리적이다.
노변의 피크닉 p.222,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여기도 자동화, 기계화의 길을 피하지 못하는군요; 더 이상 예전처럼 노하우와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후줄근한 스토커가 아니라, 양복을 빼입고 음료 한 잔을 들고 여유롭게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하며 물건들을 회수해 오는 엔지니어. 소설임에도 낯설지가 않네요.
누넌은 계속 지껄이면서, 구역이 낳은 그 끔찍한 두 사람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맙소사. 대체 이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노변의 피크닉 p.270,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특히 3부의 마지막 부분은 읽으면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마치 누넌이 되어 함께 술자리에 동석한 기분이었습니다. 인연으로 엮여 있음에도 정작 어떤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죠. 어울리지 않는 것들만을 억지로 모아 강제로 한 자리에 앉힌 느낌이랄까요. 누넌의 생각대로 '의도된 게임과 역할극'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유희를 즐겨야 하는 자리.. 차마 분위기 때문에, 레드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누넌. 똑같은 심정이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려는 레드의 객기. 당연한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하지만 그 안 곳곳에 부자연스러움이 가득하네요.
이 번 장을 읽고 노변의 피크닉 이유가 궁금했는데 완전 반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 사고와 시각으로 움직이는지 뼈 때리는 강력한 한방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저 세상이 이렇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렇기 때문이다. 방문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뭔가 다른 일이 있었을 거다. 돼지는 어떤 상황에서든 진흙탕을 찾아낼 테니……
노변의 피크닉 p.223,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외계인학이란 공상과학과 형식적 논리를 부자연스레 섞어 놓은 거라 할 수 있지요. 외계의 이성에 인간의 심리를 갖다 붙이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 그 연구법의 근본에 있으니."
노변의 피크닉 p.227,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아니면 이런 가설도 있습니다. 방문은 실제로 일어났지만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사실상 현재 우리는 접촉 상태지만, 우리가 그걸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방문자들은 구역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소상히 연구하면서 '미래에 닥칠 잔혹한 기적들'을 준비중이다."
노변의 피크닉 p.234,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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