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소설이 선택한 방식의 열린 결말이 마음에 듭니다. 애당초 “구역”의 정체에 대해서는 가설만 있을 뿐이지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배경 및 설정에서 결말이 구체적이고도 뚜렷한 방향으로 제시된다면 뭐랄까 이야기의 결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날 것 같았거든요.
선한 주인공이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마지막 희망을 걸어볼 대상은 역시 가족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소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 싶네요.
보통 이야기는 주인공이 편안하게 지내다가 갑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진 후 개고생을 하다가 이를 극복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소설 역시 초중반까지는 비슷하게 진행되었지만 결말에서 다르게 풀어서 신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아내를 흠모하는, 어쩌면 주인공에겐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빌런이 될수도 있었던 누넌의 이야기를 따로 빼준 것도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에 영화를 보려했는데 다른 책들 읽느라 못 봤어요. 이번 주에 영화를 보며 이 소설의 여운을 느껴보려 합니다.
[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밥심

꽃의요정
전 '구역'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근데 왜 거기에 다녀왔거나 다녀 온 사람들의 자식들의 몸에 이상이 생기냐'는 부분에서...인간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하는 게 방사능이라고만 생각하는 무지랭이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화
타르콥스키의 <스토커>를 찾다가 포스터 이미지를 가져왔어요. 첫번째 그림이 러시아에서의 첫 포스터 같습니다. 책 표지로도 제격이네요. 문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건 방문자일까요, 아니면 구탈린이 말한 악마의 '구역' 그 자체일까요. 언덕 위 세 인물이 누구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좀 더 현대적인 실사 포스터의 배경사진인데 아마 주변 지형의 분위기를 보니 채석장 같네요.


밥심
어제도 두 시간 반짜리 영화 중 한 시간을 보고 잠들었네요. ㅋㅎ
포스터에 등장하는 세 명이 누구인지는 알겠는데, 영화가 소설과는 많이 다릅니다. "구역"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은 맞는데 사뭇 차이가 있으므로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감상한다는 기분으로 대하면 될 것 같아요. 영화 시작하고 40분 쯤 되었나 "구역"에 주인공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때까지 칙칙했던 흑백 화면이 화사한 컬러 화면으로 바뀌었을 때 잠깐 놀랐습니다.

꽃의요정
아..볼 책도 볼 영화도 너무 많네요! 근데 스토커도 너무 보고 싶네요. 사실 타르콥스키의 솔라리스는 영어 자막 뿐이라 보다가(사실 좀 지루했어요) 포기했거든요. 유튜브 한글 자막 기능 있다는데 그 정도의 열정이 안 생겼고요.
스토커도 열정이 사라지기 전에 꼭 봐야겠어요.

은화
1) 목차의 소제목에서 레드의 직업과 결혼여부를 통해 독자는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질풍노도의 미혼 시기를 거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책임감과 애착이라는 경험을 하죠. 소제목은 단순히 레드의 상태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그의 정서적/심리적 배경상황을 알려주는 지표이면서 동시에 그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암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혼자였을 때는 독립적이고, 마땅히 쓸 곳도 없으면서 재물의 축적과 소비를 통한 해소에 매달렸죠. 재밌게도 레드릭이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방황하던 미혼일 때는 연구원이라는 고정된 직업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오히려 기혼자가 되어서는 가족이라는 기반을 세우지만 정작 그는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 수입이 불안정해집니다.
즉 직업과 가정은 어떤 인간을 정의하고, 그의 가치관과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돌연 4부에서는 이런 수식어가 다 없어져 있습니다. 4부의 전개가 특이한 또다른 점은 레드의 개인적인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회상과 독백이 많이 나오죠. 가족이나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가 많던 1,2,3부와 대조되는 느낌입니다.
저는 4부를 읽으면서 구타와 레드릭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던 게 아닐까 상상했어요. 아내를 두고도 다른 외간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점, 더이상 가족 얘기나 묘사가 없는 점이 신경쓰였거든요. 어쩌면 구타와 헤어지고 별거를 하고 있거나,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레드는 왜 자신이 금빛 구체를 찾아가기로 동의했는지 물음을 갖는 것으로 4부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계속 레드는 여러 상황과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죠. 구역의 특이현상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에게 반응만 하던 그의 기존 태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자문하죠. 레드는 버브리지의 탐욕이나, 쿼터블래드의 간섭, 딸과 아내에 대한 책임감, 구역의 전리품을 원하는 바깥세계의 유혹으로부터 고립되어 자신의 안으로 계속 파고들어갑니다.
구역은 분명 위험하고 살벌한 곳이지만 과연 바깥 세상이라고 해서 거기서의 삶이 구역보다 덜 위험하고 덜 힘들었을까요? 오히려 작품을 보면 레드는 구역 바깥에서 자기 자신의 삶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심리적 갈등과 제약속에 묶여 꼼짝 못하고 끌려다니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구역은 레드가 도망치고 싶어도 못 벗어나는 모든 사회의 제약과 압박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피크닉' 장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부양자로서의 위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스토커로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우선 과제니까요.
사회가 씌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또 자신의 자아와 근원과 욕망에 대한 답을 찾으러 가는 여정으로서 모든 수사를 빼고 '레드릭 슈하트, 31세'라고만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향팔
마지막 4부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레드가 몽키에 관한 소원을 빌기 위해 금빛 구체를 찾아갈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하아… 이 작품은 정말 심오하군요. 장대한 철학소설 같기도 하고요. SF문학을 몇권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작품은 참 다르게 다가오네요. 가슴이 꽉 메이고, 결말까지 읽고난 후의 느낌을 어떤 말로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만 레드가 몽키만을 위한 소원을 빌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것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 두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운명, 두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이 악취 나는 세상의 모든 나사를 바꿀” 소원을 품고 금빛 구체 앞에 나아갔을 거라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그건 ‘구역’의 종말이자, 세상 모든 것의 끝일지도 모르겠어요.

향팔
“ 그리고 그는 이제 더는 생각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기도를 하듯 그저 절망적으로 스스로에게 되뇔 뿐이었다. "나는 짐승이다. 당신이 보다시피, 나는 짐승이다. 나는 말을 모르고, 나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았고, 나는 생각할 줄 모르고, 그 더러운 놈들이 나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대단하고 전지전능하다면…… 해결하란 말이다! 내 영혼을 들여다보라. 거기에는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을 거라는 걸 난 안다. 그래야만 한 다. 나는 내 영혼을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긴 적이 없으니까! 그건 내 것, 한 인간의 것이다! 당신 스스로 내 안에서 내 소원을 꺼내 보라. 내가 나쁜 것을 원할 리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아무래도 좋지만, 그 녀석이 했던 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니 ─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기분 상한 채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
『노변의 피크닉』 330-33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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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마지막 문장에서 레드의 외침은 금빛 구체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 그리고 독자에게도 전하는 말로 읽었어요. 열린 결말은 잘못 쓰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마무리가 될 수 있죠. 그런데 작가들은 책 전체에 걸쳐 독자에게 레드릭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를 하도록 물음을 계속 던지는 느낌입니다. 특히 4부에서는 레드가 그동안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속사정과 과거를 밝히면서 그에게 서사를 부여하죠.
4부에서 레드는 선행과 악행을 번갈아 반복합니다. 아서를 구해주기도 하지만, 또 그가 죽을 걸 알면서도 비정하게 죽음으로 내몰아 버리죠. 독자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레드의 행적을 갖고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각자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열린 결말 이후에 어떻게 끝이 날 것 같은지 상상하게 하죠.
레드는 협곡을 지나오면서 사람들과 세상에 복수하겠다는 분노를 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인생에 행복했던 순간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또 이런 식으로 한 두명의 사람만이 행복하고 좌절하는 건 의미 없다는 인식의 확장도 경험하죠.
마지막 장면의 구도가 저는 레드가 독자(금빛구체)에게 다가오는, 마주보는 장면으로 그려졌습니다. 레드릭이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내 보라고 말하는 의미는 금빛 구체를 넘어, 자기자신 그리고 독자에게 그의 생사여탈권과 소원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고민하라고 공을 던지는 것 같더군요.

은화
2) 저는 레드가 금빛 구체로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혐오하던 버브리지와 같은 인간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아서와 함께 출발할 때만 해도 레드릭은 여유가 있어 보였고, 아서에 대해 이런저런 감상을 품고 있어 보였는데요. 버브리지와 달리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청년을 보면서 이 청년도 크면 스토커가 되었을까 상상하는 모습에서는 자기 자신을 겹쳐 보거나, 또는 하몬트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할 한 사람의 미래를 걱정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늪지대의 불지옥에서도 어떤 다른 이유나 의도 없이 아서를 구해줬다고 회상하죠. 이때까지만 해도 레드는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오물이 들어찬 협곡(버브리지의 똥무더기와도 같던)을 지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상태에 놓였는지, 왜 삶이 매번 힘들고 고단한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보다도 더 흔들고 좌지우지 해온 모든 세상과 인간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몽키를 위한 희망에서 시작했던 여정이 점점 증오로 물들어 갑니다.
애초에 자신이 스토커가 되어야 했던 건 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던 '방문자'와 '구역'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구타와의 결혼과 이후 몽키에 대해 이웃들은 호의적이지 않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 뿐인데 군대와 뒷세계의 큰 손들은 그의 경제적 자유를 쥐락펴락 하며 통제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버브리지 같은 인간 쓰레기들과 엮여 자신도 쓰레기 같은 처지가 되는 경험을 해야 했고요.
레드의 삶을 통제하는 이런 '보이지 않는 손'들은 '구역'과 비슷합니다. 구역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정체를 알 수 없고, 어디에 뭐가 숨어있는지 알 길 없듯 레드릭이라는 개인의 삶을 조종한 이 역학 관계는 실체가 없음에도 그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계속 잡아 끌어내리는 어떤 불가항력이 느껴지죠. 레드는 누구를 욕해야 할지, 누구를 잡아와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해 비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그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왔습니다.
레드는 자신의 아버지가 공장? 또는 일터?에서 돌아와 지치고 넋이 나간 모습에서 세상의 이런 피할 수 없는 힘과 무기력함을 느꼈을 거에요. 누군가의 밑에서,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젠가는 영혼을 팔아넘기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게 싫어서 직장을 구하지 않았지만(또는 못했지만) 스토커가 되어서도 그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구역에서 흘러 나오는 괴이하고 추악한 물건들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돈을 버는 생활.. 알고 싶지 않은 이유와 목적으로 유물들을 모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의 삶은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런 진창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인도 죄와 악을 품어야 하죠. 그럼에도 레드릭은 더 아래로,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버티는 인간이었습니다. 몽키가 남들과 다르더라도 이웃들에게 잘 해주면 마을에 남아 섞여 살 수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죠. 잘못된 직업과 잘못된 삶 속에서 그는 선을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레드는 생각이 바뀝니다. 스토커 생활로 돈을 모아 부족함이 없지만 그 돈은 깨끗하지 못한 돈이며, 그의 삶은 오물 위에 지어졌을 뿐이죠.
'참아왔는데.. 어떻게든 살아왔는데.. 왜 내 삶은 매번 이렇게 힘들지..' 생각해보니 결국 자신의 인생이 버브리지와 같은 자들의 뒤꽁무니만 쫓으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죠. 죄와 악행 속에서 선을 지키고 살려면 남의 똥만 주워담아야 하지만, 자신도 버브리지 같은 비열한 인간이 되면 추할지언정 주워 먹는 인생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악취는 분명 아서에게서 나는 거였고, 그의 뒤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할 지경이었는데, 얼마 후 레드릭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17
이때부터 레드는 비열한 인간이 되기로 하고 아서를 몰아붙입니다. 협곡을 지나오면서 그는 결국 버브리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금빛 구체로 가기 위한 티켓으로 아서를 바치죠. 어쩌면 이미 레드는 자신의 복수를 실현하는 발걸음을 내딘 건지도 모릅니다. 버브리지가 그토록 아꼈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까요.

은화
3) 레드릭의 행복한 미래를 응원하고 싶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허무한 결말로 끝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전 금빛 구체가 과연 정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인지도 의심스럽거든요. '바로 그'가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지만 충전기의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들고 다녔다고 하죠. 금빛 구체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사람의 소망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버브리지의 자녀들에게 닥친 일을 생각해 보면 대가를 치뤄야 하는 원숭이손 같은 존재거나,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겠고요.
레드가 금빛 구체에 도달하지만, 소원을 빌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거나 소원을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금빛 구체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작품 내에서 구체는 절망 속 희망 또는 인간의 내면에 깃든 근원적인 선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었는데요. 금빛 구체에 관심도 없었을 적의 레드의 삶이 고난과 방황의 연속이었던데 비해 아끼는 가족이 생긴 뒤로 버브리지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이전에는 값어치가 있을 만한 물건들을 구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집했지만, 4부에서 레드는 목적과 희망을 품고 구체를 찾아갑니다. 늘 남들을 통해 돈을 얻고, 자기 자신만 알며, 뺏거나 빼앗기는 삶을 살아야 하던 그가 이제는 돈보다는 다른 이유로 구역으로 향하죠. 이전의 레드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온갖 지저분한 오물과 황량한 폐허를 지나 보물섬처럼 순백의 공간에 숨겨져 있는 구체는 마치 내면의 얼룩과 상처, 부정한 감정에 가려진 양심처럼 보입니다. 양심 또는 선은 대가를 바라고 행하지 않죠. 단지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행동할 뿐입니다. 설령 선행의 결과가 오히려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미래의 결과 때문에 양심을 거스르고 다른 선택을 내리지는 않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 속성을 생각하면 금빛 구체로 가는 과정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믿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며, 또한 얼마나 허탈할 수 있는가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레드가 채석장에 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사고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꽃의요정
저도 타르콥스키 영화 보려고 roadside picnic으로 검색하다 이런 걸 발견했어요. 심지어 제가 사랑하는 매튜 구드 님이 레드 역할인 거 같아요. 눙물이!!
https://youtu.be/8Dts0rjp5V8?si=Y7vgLp6TPq0bL_aE
근데 신기한 게 제작되지 않은 거 같아요.
The project was written by Jack Paglen, directed by Alan Taylor, and starred Matthew Goode as Redrick "Red" Schuhart. The series was ultimately not picked up or released. -> 이렇게 구글에....

은화
아, 저도 유튜브에 책 리뷰어들이 올린 후기나 소개영상 찾아보다가 봤어요. 소설을 읽을 때의 제 기대(?)보다는 훨씬 더 밝고 현대적인 배경과 분위기라 색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책 내용의 비장함, 추잡함, 지저분한, 절망감 때문인지 저는 이 책의 배경과 색감이 매우 어둡게 다가왔습니다.
붉게 녹슨 철골들, 페인트가 벗겨져 다 드러난 바닥과 벽들, 군데군데 부서진 나무판자들, 안닫히는 문과 창, 뭔지 모르겠고 불길한 얼룩들, 거미줄들, 곰팡이, 오물.. 이런 심상들이 계속 맴돌더라고요.
과학자들이건 스토커건 마을사람이건 다들 칙칙한 옷과 삶에 지친 얼굴이 눈에 그려졌고요.

은화
2016~2017년에 TV시리즈로 제작하려다가 취소되었지만 당시 구상한 컨셉아트들이 남아 있네요.
https://www.behance.net/gallery/53869529/Concept-art-to-Roadside-Picnic-TV-series?locale=ko_KR
첨부된 그림들은 아티스트 Alex Andreev의 작품들입니다.
TV시리즈로 만들기 위해 책에는 묘사되지 않은 현상이나 경관도 추가할 계획이었나 봐요. 소설을 읽을 때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TV시리즈는 좀 더 현대적인 디자인도 많이 반영되었고요.




은화
아마 중간의 아역 사진은 몽키이겠죠?




꽃의요정
저도 청바지에 티한장 입고 맨몸으로 가는 걸 상상했는데, 저렇게 우주복 같은 장비 입고 가는 장면을 보고, 제가 책을 잘못 읽었나 했어요. 좀 세련돼 보이긴 하는데, 책에서의 거칠고 지저분한 느낌이 덜 드네요.

꽃의요정
인류의 가장 영웅적인 행동은.....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 낼 생각이라는 거다.....그래도 어쨌거나 빌어먹을 놈들이다, 그가 방문자들을 두고 말했다.
『노변의 피크닉』 251p,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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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2) 아서를 처음에 살려 준 건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 죽어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마지막 금빛구체를 만나기 전까지 애껴 뒀어야 했기에...
레드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실용적인 사람이란 느 낌입니다.
3) 금빛구체에게 먹힌다.에 한 표입니다. 소원은 이미 영혼이 잠식 당해 빌지도 못했겠지만 빌었던들 당연히 안 들어 줬을 거고요.
어벤저스도 없이 금빛구체에 접근하다니....
4) 스타니스와프 렘 님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스트루가츠키 형제님들도 쌍봉낙타네요. 이를 어째
제 비루한 미사여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감동 그 잡채입니다.

borori
저도 강력히 공감합니다. 렘에 홀딱 빠졌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동시에 존경하는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일지 엄청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정말 은화님 덕분에 찐한 SF명작과 작가님들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 너무나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화
매번 모임에 참여해주셔서 저도 감사해요. 😄 요즘의 과학소설들도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전SF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모임이었거든요.
과거부터 시작해 계보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과학소설 모임이 많지 않기도 하고 고전SF는 더더욱 드물기도 하고요. 그믐 외에도 다른 독서모임이나 플랫폼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찾아봐도 제가 원하는 성격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내어 그믐에 모임을 열어봤는데 매번 와주시는 분들도 있고,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