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D-29
금빛 구체가 사람들을 꾀어내고 있다는 상상이 재밌네요! 전 '사실 금빛 구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다른 구역의 물건들처럼 인간이 보기엔 알 수 없는 물건이다)' 또는 원숭이손처럼 소원을 들어주되 결과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뤄주는 결말을 상상했어요.
전 맨 뒤에 나온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씨가 쓴 출판업계와 정부의 만행에 대한 글이 더 웃겨서 열심히 읽었어요. "작품집 '의도치 않은 조우들'은 1980년 가을 뒤틀린 가여운 희생양의 모습으로 출간됐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실린 것은 '꼬마' 뿐이었으며 '살인에 관하여'는 5년 전 전쟁터에서 퇴장했고 '피크닉'은 원작자들이 읽는 것은 고사하고 펼쳐 보기도 싫을 만큼 편집 당했다." 책 출판 거부에 대한 서한이 왔다 갔다 한 것도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분통 터짐이 느껴졌습니다.
출판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죠. 존경스러웠습니다. 아, 영화는 어제 밤에 30분 더 봐서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는 뭐 별로 극적인 연출이 없어서 그런지 휙휙 보기가 어렵습니다. "내 영화는 진득하게 볼 줄 아는 놈들만 봐야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야." 하는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는 걸까요. ㅠㅠ
이 세상에서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 최근 몇 달간 그가 살아온 유일한 이유가 기적에 대한 희망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바보에 머저리인 그는 그 희망이란 걸 밀어내고, 짓밟고, 비웃고, 날려 버리곤 했다. 그러는 데 익숙했으니까. 살면서, 아주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았으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을 둘러싼 무정한 혼돈으로부터 돈을 강탈하고 뜯어내고 갉아먹었고, 그만큼 더 자신에게만 의지했다. 언제나 그래 왔고, 어떠한 돈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렁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그 희망이란 것이 ─ 이제는 희망이라기보다는 기적에 대한 확신이었는데 ─ 그의 정수리까지 가득 차올라서 이전에는 어떻게 그런 우울하고 출구도 없는 암흑 속에서 살 수 있었는지 스스로 놀라는 것이었다……
노변의 피크닉 285-286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지나갈 거다, 지나갈 거야, 레드릭은 생각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내 일생이 이러했다. 몸은 똥통에 박혀 있고, 머리 위로는 번개가 치고.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노변의 피크닉 310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너도 그래야 해,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대머리수리를 뒤쫓아 가는 자는 언제나 똥을 먹게 돼 있다. 네가 설마 그걸 몰랐단 말인가? 온 세상이 그런데. 그들이, 대머리수리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청정한 곳이 남아나지 않고 다 더럽혀졌다…… 누넌은 바보다. 빨강머리, 너는 균형을 파괴하는 자라고, 질서를 파괴하는 자라고. 빨강머리, 너는 어떠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할 거라고, 악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하고 선한 질서 속에서도 불행하다고.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땅에 지상낙원이 절대 도래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네가 뭘 알지, 뚱보? 내가 언제 그 선한 질서라는 걸 본 적이 있기나 했나? 네가 언제 선한 질서 속에 있는 나를 봤느냐고……? 나는 일생 동안 키릴들과 안경잡이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 대머리수리들이 그들의 시체 사이로, 그들의 시체를 따라 벌레처럼 지나가며 똥을 싸고, 싸고 또 싸는 것만을 목격하고 있는데……
노변의 피크닉 31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됐다, 당신들은 내가 장단 맞추게 만들었고, 일생 동안 나를 질질 끌고 다녔는데, 나란 머저리는 내 의지대로 살고 있다며 우쭐해했다. 당신들은 맞장구쳐 줬고, 추잡한 당신들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내가 똥통에서, 감옥에서, 술집에서 춤추게 하고, 끌어내고, 끌고 다녔지…… 이젠 충분하다! 그는 배낭 벨트를 풀고 아서의 손에서 술병을 건네받았다.
노변의 피크닉 314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전진, 전진! 그리고 또다시 화면을 보듯 의식 속으로 빠져들었고, 낯짝들, 낯짝들, 수많은 낯짝들을 봤다…… 모든 것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 두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운명, 두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이 악취 나는 세상의 모든 나사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노변의 피크닉 321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이래선 안 된다! 당신, 듣고 있나? 미래에는 이런 게 금지돼야 한다!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다. (이게 키릴이 말한 거였구나, 드디어 생각났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전에도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는다. 사람이 뭐 하러 태어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어났으면 태어난 거다. 그냥 살아가는 거다.
노변의 피크닉 328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직장에라도 나가란 건가?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위해 노동하고 싶지 않으며 당신들이 하는 일은 내게 구역질을 일으키는데, 당신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나? 사람이 직장을 다니면, 언제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거다. 그는 노예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고 싶었고, 나 자신이길 원했다. 모두를, 그들의 애환이나 권태를 신경 쓰지 않고 싶었으니까……
노변의 피크닉 329쪽,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4부 327쪽 ‘생각하다’라는 게 대체 뭔가? 생각한다는 것은 추측하고, 사기 치고, 과장하고, 속이는 건데, 그런데 여기서는 다 소용이 없지 않은가…. 328쪽 사람이 뭐 하러 태어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태어났으면 태어난 거다. 그냥 살아가는 거다. 329쪽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위해 노동하고 싶지 않으며 당신들이 하는 일은 내게 구역질을 일으키는데, 당신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나? 사람이 직장을 다니면, 언제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거다. 그는 노예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고 싶었고, 나 자신이길 원했다. 모두들, 그들의 애환이나 권태를 신경 쓰지 않고 싶었으니까….
노변의 피크닉 4부,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4부 문장 수집 해놓은 것을 올리지 않고 깜박했네요. 뒤늦게 올립니다. 내일은 기필코(?) 영화를 다보고 끝인사 올릴게요. ㅎㅎ
자꾸 영화 보는 걸 까먹고 다른 영화만 보고 있네요.. 저도 내일부터 기필코!
전 드디어 영화를 다 봤는데요. 이 영화가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분석한 동영상을 추가로 봤더니 그제서야 약간 이해가 되려고 하네요(특히 결말 부분).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는 전에 본 <솔라리스>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잘 몰랐었는데 이 분 영화가 상당히 독특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네요. 제가 봐도 두 영화 모두 범상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본 분석 동영상에서는 <잠입자(스토커)>를 거의 종교 영화로 취급하던데 듣다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더라고요. 나중에 보시고 한 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노변의 피크닉>의 다양한 표지들을 찾아봤어요. 아무래도 금빛 구체가 제일 핵심이어서 그런지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 표지들이 가장 많군요.
네 번째 표지는 레드의 표정 같은데 무시무시합니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그래픽 노블로 나온 표지입니다. 버브리지가 준 지도를 형상화 한 것 같은 표지가 인상적이고요. 아홉번째 표지가 개인적으로는 제가 읽으며 떠올린 작품의 분위기와 가장 비슷했습니다. 어둡고 우중충한 하몬트와 도시의 사람들 때문이겠죠.
https://samiazaiez.com/Roadside-Picnic 아티스트 Sami Azaiez가 책을 읽고 상상하여 그린 작품들입니다.
그럴싸하네요. 이미지들 링크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음에 읽을 책은 <신이 되기는 어렵다>입니다.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인간들이 우주로 진출하여 외계에서 중세 수준의 문명을 발견하는데요.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자칫 행성의 역사와 문화를 조작하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기에 이곳에 파견된 주인공 과학자는 모든 접촉을 차단하고 숨어서 관찰만 합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기술과 과학으로 원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지켜만 봐야 하는 입장에서 오는 딜레마와 갈등을 다룹니다. <노변의 피크닉>에서 레드와 등장인물들이 불가해한 초월적 현상과 방문자들의 무관심함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던 위치와 정반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품이 될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신이 되기는 어렵다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초기 대표작. 봉건사회 체제의 외계 행성에 파견된 지구인 역사 연구원을 통해, 자신의 유토피아적 개입이 인간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보를 방해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지 못한 채 관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신’의 불완전한 입장에서 오는 딜레마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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