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살 무렵, 나는 지금은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 있는 우리 집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피를 철철 흘리는 한 남자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등에 칼을 맞은 상태였다. 당시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열되기 전이었는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를 죽이는 지역적 소요가 있었다. 카데르 미아Kader Mia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일용 노동자인 이슬람교도로 적은 일당을 받고 우리 이웃집에 일하러 왔다. 그리고 힌두교도 지역인 이곳에서 동네 불량배들에게 길에서 칼을 맞은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을 주면서 집안의 어른을 큰 소리로 불렀고, 잠시 후 아버지는 그를 병원으로 급히 데려다 주었다. 그는 가면서 자기 아내가 이런 때에는 적대적인 동네에 가지 말라고 말렸다고 했다. 하지만 카데르 미아는 집에 먹을 게 없기 때문에 적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 일해야만 했다. 그의 경제적 부자유는 결국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 경험은 내게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훗날 공동체와 집단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것을 포함해, 편협하게 정의된 정체성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숙고하게 됐다(앞으로 이 문제도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직접적으로, 이 사건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빈곤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경제적 부자유 때문에 다른 종류의 자유를 침해 받는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카데르 미아는 그의 가족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푼돈을 벌기 위해 적대적인 지역으로 일하러 올 필요가 없었다. 사회적·정치적 부자유가 경제적 부자유를 길러낼 수 있는 것처럼, 경제적 부자유도 사회적 부자유를 키울 수 있다. ]
〈서론〉
[자유로서의 발전 - 아마르티아 센] 일단 혼자 읽기
D-29
장맥주
진공상태5
써주신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후 카타르항공에서 몇년동안 일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그 경험은 저에게 정말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는데요, 장맥주님께서 써주신 내용을 저는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먼저 경험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기회가 닿아서 세상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때 세상을 돌아다닐 기회가 생겼고 그러면서 인종과 그 외 여러가지 것들을 피부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경험들은 저에게 어떠한 각인처럼 남아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는데요, 만약 장맥주님께서 저같은 경험이 없으시다면 글만 읽고 제가 느끼는 인종적인 불안함? 혹시 그런게 느껴지시나요? 저는 카타르의 경험이 없었다면 장맥주님께서 써주신 내용을 제가 이해했을지 잘 모르겠거든요. 책을 통해서, 제가 피부로 했던 경험들을 느낄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지금 제가 한국의 서울에서 생활하기에, 예전에 제가 일상적으로 느꼈던 것들, 예를 들면 장맥주님께서 써주신 글의 내용이 나에게서 아주 멀어진것 같아서 어떤 안도감 같은게 들거든요. 이게 이기적인 감정이라고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일단 저는 그렇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면에서는 참 힘들었어요. 저런 장면을 목도하고 직접 겪는다는건 저에게는 어떤 정신적인 면이 흔들리는 많이 불안한 느낌이었거든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또 살아야 하는지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저런 글을 읽을때 사람이 배우게 되는 것이.. 당연히 불안감을 느끼면서 밖에 배울수 없는건가? 라는 궁금함도 듭니다. 제가 말이 두서없어서 죄송합니다..
장맥주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교환학생이나 해외 장기연수 경험도 없어요. 평생 외국에 머물렀던 기간을 다 합해도 6개월이 안 될 거예요. 한국 안에서도 외국인, 특히 저와 인종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거나 함께 일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인종에 관련한 이슈는 거의 다 간접 체험입니다. 해외여행 중의 불쾌한 경험 몇 차례 정도를 제외하면 피해자가 된 적도 가해자가 된 적도 현장 목격자가 된 적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불안함에 대해서도 상상만 할뿐 체감하지는 못했어요.
장맥주
사실 이 책의 주제인 빈곤, 그것도 인간의 기본적인 역량을 박탈할 정도의 절대 빈곤에 대해서도 저는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기근을 걱정해야 하는 단계는 지난 개발도상국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으니. ‘사회적·정치적 부자유가 경제적 부자유를 길러낼 수 있는 것처럼, 경제적 부자유도 사회적 부자유를 키울 수 있다.’는 문장은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여깁니다만, 그 이해도가 얼마나 깊은지는... 뭐라 말 못하겠어요.
장맥주
나는 돈이 없어서 해야만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부자유 때문에 심각하게 사회적 부자유를 겪어야만 했던 적이 있나 곰곰 생각해봤는데 내세울 만한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피곤한데 택시비 아까워서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 아르바이트로 생존했던 짧은 기간에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의 덕을 많이 봤던 것? 대단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 아니었지만 딱히 물욕도 없는 편이고, 사회에 나온 이후로는 불안감을 해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만큼은 벌었다 싶네요. 제가 갖고 싶어 했던 직업들(기자, 작가)은 의사나 클래식 음악처럼 진입하기 위해서 교육비가 많이 드는 영역도 아니었어요. 약간 시니컬해지자면 경제적 부자유 때문에 사회적 부자유를 경험하는 건 바로 요즘인데, 영 정이 안 가는 동네에 선택권 없이 살고 있네요.
장맥주
그나저나 트레버 노아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알게 되네요.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만 읽어봤는데 김혜정 대표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극찬해서 조만간 읽어보려 합니다. 대니얼 데닛의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도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올라 있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팅테솔스를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스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곧 다른 존 르 카레의 다른 작품도 읽고 모임을 열고 싶습니다. 데닛 책은 나름 벽돌책인 점도 있지만, 책 자체가 저에게 어려워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매우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추천합니다. 최근에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라는 책이 제가 신뢰하는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믐에서 꼭 한번 다뤄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마도) '재수사'를 읽으면서 '인생의 모든 의미'를 알게 되었고 기획이 마음에 들어서 홀린 듯이 샀는데, @장맥주 님의 인생책일 줄은 그믐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공허해지면 펼쳐보려고 합니다.
장맥주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대해 몰랐어요. 존 르 카레의 많은 작품 중 하나겠거니 했고, 영화가 나온 다음에는 책 표지에 배우들 사진이 찍혀 있는 게 내키지 않아서 손이 안 갔습니다. 3부작의 1부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함께 카레의 대표작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겨우 알았네요.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대니얼 데닛의 책은 『마음의 진화』와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그리고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함께 집필한 『이런, 이게 바로 나야!』 1, 2권을 읽었습니다. 나름 제가 알차게 써먹은 저자입니다.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 ‘심오롭다’는 신조어가 나오는데 그걸로 칼럼을 한 편 썼고, 『이런, 이게 바로 나야!』에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황에 대한 사고실험이 나오는데 그게 SF 단편 「당신은 뜨거운 별에」의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스파이 스릴러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전작 19편이 정식 판권 계약을 맺고 출간된다. 2005년 여름 가장 먼저 선보이는 소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