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2.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이 외부 세상을 인식하는 구조의 한계 때문에 절대로 동굴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이전까지 생각해온, 진실을 발견한다는 과학의 진보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상에 근접해간다는 의미에서 과학은 진보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3.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에 반하는 주장을 접하게 되면 (예를 들어 백신을 반대하는 주장,) 과학이 신념이 되고 유사신앙 비슷한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1님,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까지 해서 2장 읽기도 마무리되어 가네요. 봄날과 함께 이 책도 즐겨주세요~
폴라니는 개인적인 앎personal knowledge 중에 친목함conviviality를 다루는 장에서 앎을 다룰 때 사회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의 지적 열정에 붙는 시민적 계수들civic coefficients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계수들은 신념 공유, 동료애 공유, 협업, 권위나 강제력 행사 등이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암묵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며, 심지어 다양한 비안간 동물에서도 효과를 낸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합리적인 개인 행위자는 사회적 매트릭스에서 발생하지만, 독립적인 생각과 반발의 능력을 갖추고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의 연합으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사회성이 발생한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왜 이 대목을 인상 깊게 읽으셨는지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그저 인용만 하셔서 아쉽네요. 저도 이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개인이 사회를 낳고, 사회가 다시 개인을 낳는데, 개인과 사회는 서로에게 반발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뭔가 심오한 교훈을 주는 듯하거든요. 저는 이런 관계를 "맞선 둘의 얽힘"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다름이 함께 있음"이라는 표현도 쓰고요.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이라는 현학적인 표현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법합니다.
아 이 문단 전에는 패러다임 안의 어떤 걸 구현하는데 인간이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패러다임이라는 단위는 정말 힘이 대단하다, 그 안에 인간은 실험인의 역할을 한다는 건가보다-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이 문장이 나왔습니다. 개개별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반발 능력이 결국 사회성을 끌어올린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 사회안에 개인이 '속한다'는, 부분집합의 개념이 아니라는 게 재밌었습니다.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 변화는 개개인의 생각과 반발로부터 나온다는 것. 이게 개인으로서 꼭 기억해야할 태도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2인칭 상호작용 부분도 재밌었는데 그건 다음에 문장수집과 함께 이어서 해볼게요-
자기를 실현하는 개인들의 연합은 더 높은 수준의 사회성을 발생시킨다. 2인칭 상호작용second-person interaction에서 나는 사회의 동료 구성원을 나와 마찬가지인 개인으로 상대한다. 그 상호작용으로부터 개인들로 환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발생한다. 여기에는 너는 개인이며, 믿음과 행동의 정합성을 의미하는 기본적 합리성을 지녔고, 소통에 필요한 기본적 인지 역량을 지녔으며, 또한 적어도 최소한의 선한 의지와 우호성을 지녔다는 심층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사회적 집단은 복잡하게 얽힌 2인칭 상호작용들을 발전시킨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진짜 문제는 나중에 입장을 바꾸게 될까봐 입장 자체를 내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최근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영화 및 책으로 접하였는데요. 그 스토리는 우리책 p.53~54의 '탐구는 환경에 대처하는 유기체의 필수 활동이며 삶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다', '과학의 목표는 진리 그 자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지구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로 유인탐사선을 보낸다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그레이스와 로키가 과학적 탐구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능동적 앎"의 훌륭하고도 감동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를 앎'이 명제적 지식에 선행하며, 그러한 명제적 지식이 어떻게 능동적 앎에 의존하며 또한 기여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저희 책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나 보네요! 기회가 닿으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한 층의 동굴 시스템 안에서 영원히 떠돌아야 하는 운명일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있는 동굴 바깥의 동굴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안쪽 동굴에서 벗어나기를 실천하면서 바깥쪽 동굴을 낳는다. 우리는 이 동굴을 둘러싼 또 다른 동굴을 창조하지 않으면서 이 동굴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동굴을 만드는 마이더스의 왕이다. 우리가 가는 모든 장소는 동굴의 내부로 바뀐다. (이쯤 되면 내가 플라톤의 비유를 변형하다 못해 해체한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166~16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저도 참 재미있게 읽은 대목입니다. 동굴 바깥으로 나가 직접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철학의 목표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이런 장하석의 얘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얘기에 충분히 공감하는데, 그건 제가 마주하는 진실은 늘 진실의 일부일 따름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위치로 옮겨가더라도 저는 진실의 다른 일부만 보게 되겠죠.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 대한 통속적인 해석에서 말하는 "동굴 바깥으로 나가기"를 제 나름대로 표현하면 "진실 전체를 마주하기"쯤 될 듯합니다. 저는 진실을 그렇게 온전히 마주하거나 움켜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굴 바깥에는 또 동굴이 있다는 장하석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여요. 우리 각자가 무한 층 동굴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결론은 비극적이거나 절망적일까요? 오히려 정반대로 그 결론은 우리를 진지한 대화로 이끄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내가 동굴 안에 있다는 것,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벗어난 다음에도 또 한없이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끝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기꺼이 자기를 수정할 터입니다. 쉽게 말해서, 배우고 또 배울 터입니다. 완성은 없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어요. 진리를 추구해 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그 진리로 만들어진 동굴 안에서 또 다른 진리를 추구하고. 세상이 어떤 규칙으로 움직인다는, 그 규칙을 찾고야 말겠다는 게 과학자들의 동기겠지만, 그렇게 완벽한 규칙은 찾을 수 없다, 지금의 규칙일 뿐이라는 게 고무적입니다. 지금의 규칙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만 다음 동굴로 넘어가는 퀘스트를 깰 수 있겠죠, 그리고 그 동굴은 또 각자의 동굴일테고요. 언어와 이런저런 한계들까지 다 포함해서 설명해주시는 게 재밌습니다.
네, 이런 부분이 장하석 선생님 책을 읽는 재미인 것 같아요. ㅎㅎ
동굴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저는 색안경을 벗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변형해서 곱씹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 각자의 관점에서 실재를 본다는 것을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색안경을 벗을 길은 없다면, 끊임없이 색안경을 바꿔 쓰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이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장하석이 해석하는 동굴 비유와 꽤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우리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사물들을 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음을 겸허히 인정하자. 그 자리가 현재 우리가 갇혀 있는 동굴이건, 자랑스럽게 발 디딘 봉우리건 간에 말이다. 모순적인 '어디도 아닌 곳에서의 관점'을 추구하는 것은 부질없다.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여,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서 보는 그림을 '실재'로 간주하자.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231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어디도 아닌 곳에서의 관점'은 'view from nowhere'의 번역입니다. 원문의 저작권자는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이에요. 같은 취지로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은 '신의 관점God's Eye View'를 언급했지요. 이 두 사람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미국 철학자로 꼽을 만합니다.
먼 옛날 인간들은 사냥감이나 자연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지칭하는 방식으로 소통했을 것이고, 갓난 아기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세상을 배워나가죠. '저것은 이렇게 부르자'가 '이렇게 불리우는 저것이 있다'가 되고, '이렇게 불리는 것들의 원형(누메나)가 존재한다'가 되는 식으로, 선형상화의 오류 및 대응실재론 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가짜대응이든 간에 말이죠). 실재는 인간 정신에 의해 틀지어져 표현됨으로써 재현된다는 주장에도 공감이 됩니다. 쿠키커터의 비유가 마음에 들었어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외계생명체인 로키는 시각이 아니라 음파로 세상을 인지합니다. 따라서 그레이스 박사가 동그란 벽시계를 보여주는 것은 로키에게 아무런 의미나 정보가 없습니다(반죽된 쿠키 도우 상태). 그래서, 시계의 숫자를 요철이 튀어나오도록 다시 붙여서 보여주자 로키가 그 동그란 물건이 시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시계를 가져와 보여줍니다(쿠키 커터를 거쳐 모양이 생긴 상태). 그들은 각자의 시계를 "시간"이나 "수"라는 누메나와 각각 대응 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들 페노메나적 시계끼리 대응시킴으로써 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실용주의 과학철학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철학을 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발전적이다'는 주장인 것 같아요. 정신에 의해 틀 짓는 사유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한계를 받아들이고, 실재 개념을 이상화하거나 인간을 동굴 안에 같힌 죄수로 격하하지 말자. 흥미로운 2장이었습니다.
여우는님 말씀들 보고 저도 <프로젝트 헤일메리> 보려고 예매했어요! ㅎㅎ 2장을 잘 읽어주신 듯해 저도 기분이 좋네요!
지칭(가리키기)과 이름이 언어적 소통의 출발점이었으리라는 추측은 꽤 그럴싸하지만, 어쩌면 허점이 있는 듯합니다. 과연 어떤 서술description과도 무관한 순수 지칭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그런 지칭에 쓰이는 단어가 '저것' 또는 '이것'일 텐데, 이런 단어들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순수 지칭이 엄연히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우선 실재의 개별화부터 간단한 문제가 이닙니다. 제가 '여우는' 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것'이라고 말하면, 더 나아가 이름을 붙여 '여우는'이라고 부르면, 저는 '여우는'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개인을 가리키고 지목하는 것일까요? 만약에 제가 코의 모양에 몰두하고 있는 관상학자라면, 그 상황에서 제가 말하는 '이것'은 여우는 님이 아니라 여우는 님의 코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제가 피부색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라면, 제가 말하는 '이것'은 여우는 님의 얼굴 색의 미묘한 색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저 멀리 우뚝한 산을 가리키며 '이것'이라고, 또는 '지리산'이라고 발화한다고 해봅시다. 제가 먼 산을 가리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또 산을 명확한(또는 대충 그을 수 있는) 경계선을 가진 개체로 간주하자는 암묵적 규칙을 전제하지 않으면, 제가 말하는 '이것'이나 '지리산'을 옳게 이해할 길이 없을 터입니다. 콰인의 '가바가이' 얘기가 이와 비슷한 취지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지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터입니다. 그 인정은 이른바 서술주의descriptionism로 나아가는 중요한 한걸음일 테고요. 최초의 소통에 관한 논의는 어차피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저도 나름의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최초로 발화된 언어가 당연히 감탄사였다고 추측합니다. '으악!', '와!' '아이쿠!' '끼야호!' 등이 인류의 조상이 내지른 첫 마디였을 것입니다. 이런 발성이 복잡한 암묵적 규칙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을 테고, 그런 소통이 한참 무르익은 뒤에야 지칭이 작동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선형상화의 오류 및 단순소박한 대응실재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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