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제임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가 아는 그 철학자의 유명한 문장 하나를 적어봅니다. 우리가 읽는 책에서 장하석은 실용주의가 '진리'를 외면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논한다고 강조하는데, 그것과도 직결되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하고 내일이면 그 진리를 거짓이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얍삽하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까요? 저는 이 문장이 겸손함을 권고한다고 느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전대호

바닿늘
얍삽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겸손함을 권고한다고 저도 느껴집니다.
상황이 바뀌면 입장 역시 그에 따라 바꿀 수 있는것도.. 요즘에는 정말 필요한 용기 같습니다.

우주먼지밍
전대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척 떨립니다.
몇 해 전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을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정말로 많은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였지요. 저는 이 책을 읽을 당시 너무나도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에서 존 캐그가 니체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여정이 절절하게 와닿았어요. 니체 철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고명섭 선임기자님(기지남께서 현직에서 물러나셨으니..작가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니체극장>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어요 ㅎㅎ
한편 존 캐그께서 니체에 이어 윌리엄 제임스를 다룬 <아픈 영혼을 위한 철학>도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책이었어요.
최근데 전대호 선생님의 최신작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을 읽었는데 최고의 과학 에세이였고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요!
지적 욕구는 많지만 아는 것이 적어 욕구 충족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저같은 일반 성인독자에게 선생님의 과학 에세이...정말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전대호 선생님 그믐에서 뵐 수 있게 되어서 반갑고 영광입니다!
전대호
우주먼지밍 반갑습니다. 애써 번역한 책에 대해서 칭찬을 받는 것은 번역자로서 가장 큰 기쁨입니다. 고맙습니다.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은 저도 참 재미있게 읽고 번역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호텔에 정말 가보고 싶더군요. 온라인 검색으로 외부 모습만 찾아봤는데, 어느 영화에선가 바로 그 호텔이 나오는 걸 보고 반가워했지요.
<아픈 영혼을 위한 철학>도 괜찮은 책입니다. 물론 제임스를 진지하게 공부하기에는 가벼운 입문서 역할만 할 수 있겠지만, 뭐랄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긍정적 측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Frontier 정신이라고 할 만한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해줍니다.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을 좋게 느끼셨다면, 그건 철학적 취향이 다분한 독자이시기 때문일 겁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자부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과학을 삶의 한 부분으로 보는 태도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하석의 철학과 꽤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아조씨
아, 이 세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봅니다. 꼭 읽어볼게요!
세음
1. 저에게 실용주의라는 개념은 우선 형이상학에 반하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의미와 가치를 오로지 현실에서, 인간의 삶에 쓸모가 있는가, 이익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그에 비추어 이해하고 정리하는 사유체제. 해서 좀 거부감이 있었고 장하석 선생님이 실천주의에 가깝다 하신 말씀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ㅎㅎ
2. 지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아는 능력(knowing how)'이라고 정의하신 것은 적확하고 온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몸소 터득한 숙달된 솜씨라고 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음식만들 때 레시피를 한번 훑어보기는 하나 덮어두고, 정확히 계량하진 않고 적당히 있는 재료들로 만들곤 하는데 맛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기본이 되는 지식들이 쌓였고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엔 피클볼을 즐기고 있는데 레슨을 받지 않고 그동안 배우고 즐겨왔던 테니스와 배드민턴과 탁구를 기본으로 참고하여 저만의 구질들을 하나둘 만들게 되었습니다.
3. 작업적 정합성이란 활동의 여러 요소가 목표 달성을 위해 조화롭게 맞물려 '사리에 맞는 상태(make sense)라는 진술은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일단 1주차 뭐라도 함께 책읽기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들어와 보았습니다.

김영사
세음님, 열심히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 '실용주의'는 현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이기도 한데, 그 철학적 의미와 오해에 대한 담론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아쉽네요.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제안해보고는 있습니다만..
2. 역시 살다보면 몸소 터득한 숙달된 솜씨 하나쯤은 많이들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거기에 철학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 같네요.
전대호
1. 실용주의가 인본주의humanism와 연결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대표적인 인본주의 철학자는 칸트고요. "우리 유한한 인간에게"라는 문구를 칸트는 말버릇처럼 자주 사용하는데, 이를테면, 진리란 우리 유한한 인간에게 무슨 의미인가, 라고 묻는 식이죠.
제가 해석하기에 장하석은 훌륭한 칸트주의자입니다.
2. '쓸모'에 대한 거부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저도 그 거부감을 상당히 느꼈었죠. 그 이유는 대체로 윤리학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정할 때 쓸모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있었던 거죠. 이것 역시 칸트적인 성향일 수 있겠는데, 그럼에도 이제 저는 '쓸모'를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깊은 숙고가 필요한 문제라고 느낍니다.
따지고 보면 '쓸모'(목적, 텔로스)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플라톤적인 '형상'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획득합니다.

바닿늘
드디어 오늘부터
모임이 정식적으로 시작되었네요.
본격적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에디트
1. 실용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영실 선생님입니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먼저 보고, 문제해결을 하셨죠. 그리고, 실용주의하면 '현학적이지 않다'라는 것과, 실현가능성 이라는 단어도 떠오르구요.
그런데, 실용주의와 관련한 내용에서 29쪽에 과학에 '깊이'란 없다. 어디에나 표면이 있다; 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앞뒤 맥락을 보면,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배제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깊이가 없다, 표면이 있다. 라는 것을 언급한 보다 명백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영사
장영실의 과학 정신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에 이르러 그 나름대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책 만들면서 실용주의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실학사상이 떠오르곤 했답니다.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말씀하신 29쪽 부분은 인용문입니다. 원문은 "In science there are no ‘depths’; there is surface everywhere"입니다. 말씀하신 문장 바로 앞에 "어두컴컴한 먼 곳과 불가해한 깊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보면 '깊이'는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 너머 숨겨진 궁극적 실재 따위를 이르겠고, 표면은 그와는 다르게, 인간이 실제로 관찰하고 측정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경험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 아닐까요?
꼼꼼히 읽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전대호
지적하신 문장이 빈 학단의 논리실증주의 선언문의 한 대목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은 아니고요. 논리실증주의는 오직 감각 데이터sense data와 형식논리만을 정당한 앎의 요소로 인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로지 형식논리와 감각 데이터만으로 이루어진 과학이라면 '깊이'가 없는 과학이라고 표현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키
"실용주의 정신이 권고하는 바는 철학이 삶에서의 다양한 실천으로부터 동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작가의 실용주의가 매우 와닿습니다. '실천에서 효과적'인 견해, "지식과 관련한 좋은 실천들을 이해하고 증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가치가 입증될 생각"들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기대됩니다
전대호
장하석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상보적 과학complementary science'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을 돕겠다는 뜻을 확실히 밝히는 거죠. 그는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이 과학자를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테이블
1. '실용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언제부터인가 정치 담론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래그머티즘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봅니다.
2. 지식을 정보의 습득이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아는 능력'(knowing how)으로 정의한다면, 암묵지와 비슷한 의미일까요?
3. 작업적 정합성이란 활동의 여러 요소가 목표 달성을 위해 조화롭게 맞물려 '사리에 맞는(make sense)' 상태를 뜻한다는 정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다만 "처음에는 엉성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여러 동작이나 조건들이 조율되어 성공했던 경험이나 순간"은 너무 광범위한 얘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국어 서문과 들어가는 말을 읽어보고 있는데, 저자의 진리관이 언뜻 당연한 듯 하면서도(적어도 제 경우에는), 또 여러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어가며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대호
2. 암묵지와 '어떻게를 앎'은 겹칠 수도 있겠지만 엄밀하 따지면 다르죠. 암묵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앎'이니까 앎의 내용에 있어서는 '어떻게를 앎'일 수도 있고 '무엇을 앎knowing what'일 수도 있잖아요. 다른 한편, knowing how는 암묵적일 떄가 많겠지만 경우에 따라 명시적인 앎explicit knowledge일 수도 있죠. 예컨대 '나눗셈 할 줄 앎'은 얼마든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앎이잖아요.

테이블
예, 설명 감사합니다. 그러면 knowing how이 더 포괄적인, 아니면 좀더 화용론적인(이렇게 얘기하는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요.
mariposa
1. 최근 몇 달간 "실용주의"가 개인적 화두였습니다. 나는 학자나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실생활과 문화적 향유의 범위 안에서 쓸만한 사고 방식이 무엇일지를 찾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실용주의로 귀결이 된 듯합니다. 예전에는 실용주의에서 '세속적임'이라는 함축을 읽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삶을 더 잘, 가능하면 올바르게 살기 위한 관점으로서 강력한 후보입니다. 다만 내 목적은 진리 추구가 아니고, 책에서 강조하듯 '어떻게 (행위)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나와 아주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2. 저도 어떻게 하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일본어를 따로 공부한 경험은 희박한데도(어릴 적에 초급과 문법 정도) 원서를 읽게 됐습니다.
3. 2에서 이어서, 아마도 너무 읽고 싶고 굶주려서 무작정 원서를 사곤 사전과 검색에 의존해 꾸역꾸역 읽다 보니 읽히게 된 거 같습니다. 성취감을 느낄 모먼트는 없었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영어도 읽다보니 읽히면 좋겠네요.

김영사
나와 잘 맞는 책을 만나는 건 큰 기쁨이죠!
전대호
1.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는데,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장하석의 실용주의란 '실천하겠다는 다짐', '어떻게든 해나가겠다는 다짐'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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