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p.75)철학과 과학에서 우리는 문답이라는 2인칭 상호작용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질문과 대답을 거론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논쟁하기와 논증의 결별 그리고 정당화를 네가 나를 설득하기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p.137) 나는 실용주의가 진정으로 경험주의적인 과학철학이라고 보는데 그런 과학철학은 과학 탐구도 인간적 경험의 일종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탐구가 경험과 맞물려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탐구과정 자체가 경험의 한 유형이다.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는 배우기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를 포함한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과학을 삶이라는 맥락 안에 넣고 고찰하려는 태도가 돋보이는 대목이죠. 저는 이것이 과학을 생산적으로, 또 올바로 보는 태도라고 평가합니다. 사실은 철학책을 읽을 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철학책의 저자가 모종의 상대와 논쟁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책속의 논증을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불멸의 철학 고전으로 자리잡은 것이기도 해요. 물론 대화라는 형식에서 그 작품들의 위대함이 모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요. 더 나아가, 무엇이든지 더 큰 맥락 안에 넣고 고찰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주장을 제기해볼 만합니다. 외톨이 개체 따위는 아예 없고,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더 큰 무언가의 일부이거나 더 큰 공간(맥락, 환경, 관계망network...) 안에 들어있다(심지어 내장되어있다 = 뗄 수 없게 붙박여있다)는 식으로요. 제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저서를 여러 권 번역했는데, 그 독일철학자는 그런 공간을 '센스장field of sense'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어로 Sinnfeld인 이 중요한 용어를 이제껏 출판된 번역서들에서는 '의미장'이라고 옮겼었는데, 곧 나올 책(원제는 <Sense, Nonsense, Subjectivity>)에서는 '센스장'으로 옮길 것입니다. 아무튼 무엇이든지 그것이 속한 맥락을 함께 고려하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고 유익한 가르침이지 싶네요.
p.143) 진술은 진술과 비교되지, 경험과 비교되지도 않고 세상과 비교되지도 않으며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술-세상(또는 이론-세상) 대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초적인 범주오류를 범하는 듯 하다. p.145) 나는 정신에 의한 통제control와 정신에 의한 틀짓기framing를 구별하자고 제안한다. 타당한(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실재론적 직관은 단지 생각만으로는 실재가 어떠한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인용하신 143쪽 대목은 장하석이 아니라 노이라트의 말이군요. 꽤 수긍할 만한 말입니다. 장하석은 이 말에 거의 동의하는 듯하고요. 하지만 저는 약간 주저하는 면이 있어요. 왜냐하면 진술-진술 대응만 인정하면, 소위 진리정합론, 곧 진리에 관한 정합이론을 채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하석은 1차 진리와 2차 진리를 구별하고 비교적 덜 중요한 2차 진리에만 진리정합론을 적용함으로써 저의 우려를 불식합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행마라고 봅니다. 진리정합론의 문제는, 진리를 오로지 진술의 영역 안에 가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앞뒤가 맞는 말이라면 다 진리라는 식의 무책임한 얘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거죠. 거듭 말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장하석의 대응은 1차 진리, 곧 작업적 정합성에 의해 정의되는 진리를 기준점으로 설정함으로써 진술의 영역 바깥과의 접촉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framing of mind, 또는 mind-framing을 '정신에 의한 틀짓기'로 번역한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순리에 따른 번역이지만요. '틀짓다'가 국어사전에 있으면 좋겠다 생가하며 찾아봤지만 역시나 없더군요. 여담이지만 저는 '정신의 틀짓기'라는 표현을 썼더랬는데, 저자는 그 표현이 '정신을 틀짓는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다면서 '정신에 의한 틀짓기'로 명료화하자고 했습니다. 명료한 것은 좋은 것이므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p.150~151)선형상화의 오류란 실재가 모든 개념화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잘 정의된 부분들과 속성들을 지녔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p.154)선형상화의 오류는 누메나를 페노메나로 간주하기, 혹은 사물 자체들이 우리의 개념들을 통해 특징지어질 수 있고 특징지어져야 한다고 상상하기에 해당한다. p156)선형상화가 오류임을 깨달으면 실재를 순조롭게 또는 일반적으로 언급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실재함이라는 단어를 정신에 의해 틀지워져있지만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는 존재들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요컨대 장하석이 말하는 '실재함'은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가집니다. 첫째 측면은 정신에 의해 틀지어져있음, 둘째 측면은 과 정신에 의해 통제되지 않음이죠. 이런 식으로 실재가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철학사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등장합니다. 제가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칸트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요, 오늘날의 마르쿠스 가브리엘도 같은 취치의 주장을 합니다. 가브리엘이 보는 '실재함'의 근본적인 두 측면은 '인식가능성'과 '인식불가능성'입니다. 실재하는 놈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아는 놈이면서 또한 아직 모르는 구석이 많은 놈입니다. 그놈을 완전히 아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테고요. '실재함'을 이렇게 이해하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실재하는 놈은 '타인',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타인들, 아마도 가족, 친구, 동지인 것 같지 않나요? 둘째 측면인 '인식불가능성'을 강조하면, 실재하는 놈이란 언제든지 우리의 따귀를 갈겨 우리를 한없이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놈이라고 할 만한데, 흥미롭게도 특히 1960년대 이후 프랑스철학이 그런 실재를 유난히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시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화끈한 예술적 실재를 좋아하는 이들이 꽤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어설픈 예술 취향에 휘둘림 없이, 익숙한 일상의 대상과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인식가능성과 인식불가능성을 함께 보는 철학이야말로 더 성숙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p.164~167)외부세상, 표상, 대응이라는 은유는 과학적 실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물의 구실을 한다. ..죽은 은유...모든 은유를 버리는 것은 어쩌면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질문과 대답의 은유...과학연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질문자이고 우리의 대화상대는 자연이다. .. 그러나 질문은 가능한 대답들의 공간을 정의한다. ..우리가 플라톤의 동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또 다른 동굴로 들어가는 것일 따름이다...그러나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있는 동굴 바깥의 동굴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안쪽 동굴을 벗어나기를 실천하면서 바깥쪽 동굴을 낳는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이 대목, 특히 '우리는 질문자이고 우리의 대화상대는 자연이다'를 읽으면서 저는 당연히 칸트를 떠올렸습니다. 구차한 설명 대신에, 근대철학(우리 시대의 철학을 위한 기반)의 인식론을 요약한다고들 하는 칸트의 위대한 문장을 인용할까 합니다. 1787년에 나온 <순수이성비판> 서문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성은 오로지 이성 자신이 자신의 설계에 따라 산출한 것만 통찰한다는 것, ... 이성은 한 손에 자신의 원리들을(그 원리들에 따르면, 오로지 법칙들에 부합하는 현상들만 유요할 수 있다), 다른 손에 그 원리들에 따라 스스로 고안한 실험을 쥐고 자연에 다가가야 한다. 이는 물론 자연으로 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지만, 이성은 선생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받아 적는 학생의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요구하는 준엄한 재판관의 태도로 그렇게 해야 한다. ... 이성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하는(이성 혼자서는 전혀 알 수 없을) 것을 (날조하여 자연에 덮어씌우지 말고) 이성 자신이 자연에 집어넣는 것에 맞게 자연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저서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56쪽)에서 이 위대한 문장을 인용하고, 이 문장 안에 '공동작품의 원리'가 들어있다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과학도 앎도 삶도 나와 나-아닌-놈이 함께 만드는 공동작품, 일종의 대화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 어떻게들 읽으셨나요? '대응실재론(대응염)' '선형상화의 오류' '과학에 대한 신앙' 같은 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부터는 3장을 읽습니다. 종이책 기준 233~314쪽입니다. 3장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실적인 실재론을 구축해나갑니다. 우선 3장에서 '실재'라는 개념이 재정립됩니다. 3차: 4월 13일(월)~4월 18일(토)_ 3장 실재 지금까지처럼, 각자의 속도로 죽 읽어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질문과 주제를 적어봅니다. 1. 우리는 흔히 존재는 '있다' 아니면 '없다'의 양자택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합적인 활동을 더 많이 지원할수록 '더 높은 정도로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런던의 테러 위험'이나 '광선' 등을 예로 듭니다. '약간만 실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여러분의 직관과 충돌하나요, 아니면 오히려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느껴지시나요? 2. 물리학자 에딩턴은 우리가 사용하는 '딱딱한 나무 책상'과 원자들 사이의 빈 공간으로 가득한 '과학적 책상'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존재론들이 각자의 정합적 활동을 지원한다면 모두 실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존재론적 다원주의'를 옹호합니다. 하나의 사물을 단 하나의 '진짜 모습'으로 확정해야 한다는 유혹을 버릴 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어떻게 넓어질 수 있을까요?
1. 직관과는 충돌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제한적이고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저장의 주강이 현실은 더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는 아직 잘 못했지만) 2. 우리의 인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와 비슷하게 모든 대상물이 이상적인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지만, 실재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아직까지는 양자역학 한계까지 활용하는 기술은 나오지 않았지만 향후에는 분명히 기술적 도약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일정에 따라 3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심오한 형이상학자들에게는 이 모든 논의가 상당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여기에서 펼치는 생각은 많은 철학자가 즐겨 논하는 실재the reality, 혹은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 'Reality'(실재)-곧 존재 전체totality of existence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의미의 실재가 관여하는 정합적 활동들을 도무지 생각해내기 어렵다. 이런 거창한 실재 개념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또는 신비주의적인 담론에서만 등장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사리에 맞게 그런 담론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며 공식적인 저술을 통해 그런 담론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250~251쪽)는 부분을 읽고, 그 앞에 나온 "엑스칼리버는 허구적 영역 안에서 실재하는 대상이다"(248쪽)라는 말과 "실재성(실재함)은 정도 차이가 있"다(276쪽)는 말을 떠올려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자는 그런 '존재 전체'로서의 실재는 구체적인 작업적 효용이 없는, 오만한 구성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 옳다고 했는데, 저자의 표현대로 '많은 철학자'가 그것을 '즐겨 논한다'면(물론 저는 철학에 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여 이와 관련한 인물이나 저서 등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요), 적어도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신비주의적 담론'이라는 영역 안에서 그런 대문자 실재는 딱 그만큼은 실재한다는 것일까요? 아무튼 실재성에도 정도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흥미롭습니다. 더 읽어보겠습니다. :)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존재 전체는 적어도 형이상학적 담론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실재하지 않을까?' 간단히 대답하면, 예, 실재합니다! 형이상학적 담론 안에서만큼은 '존재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쓰임새가 있고, 적어도 형이상학적 담론이 아예 무의미하다고 치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쓰임새를 가진 '존재 자체'는 그 담론 안에서 엄연히 실재합니다. 문제는 형이상학자들이 '존재 전체'를 그런 식으로 모종의 담론 영역 안에서만 유의미한 개념으로 내세우느냐, 하는 것이에요. 그럴 리가 없죠. 그들이 내세우는 '존재 전체'는 그야말로 만물을 포괄하는 절대적 전체잖아요. 필시 그들은 '존재 전체'를 그런 식으로 특정 담론 영역과 관련지어 제한하는 것 자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강변되는 '존재 전체'라면, 장하석 교수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겠죠. '존재 전체'를 형이상학적 담론 안에서만 유의미한 개념으로 보고 고찰하는 작업이 있다면, 그 작업을 메타-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 비판이라고 부를 만한데, 사실 그 작업은 아조씨가 인용하신 대목에서 장하석이 이미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존재 전체' 혹은 '실재 전체' 혹은 '궁극의 전체 집합'은 자기모순적이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훌륭한 철학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는 그 주장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지요. 전문용어로 하면, 모든 센스장을 아우르는 궁극의 센스장은 없다, 라고 표현합니다. 제 식으로 표현하면, 만물이 속한 궁극의 맥락은 없습니다. 그런 궁극의 통일된 맥락이 없다는 생각은 존재론적 다원주의, 또는 다원주의적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한걸음입니다.
'존재 전체'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한눈에 굽어보는 궁극의 지혜를 꿈꾸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야심 있는 인간이라면 그런 꿈을 품어볼 만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은 가늠할 길 없는 풍요가 아닐까 싶어요. 괴테가 말한 '찬란한 생명의 나무des Lebens goldender Baum'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파우스트를 찾아온 젊은이에게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적으로 말하죠. Grau, teurer Freund, ist alle Theorie, / Und grün des Lebens goldner Baum (잿빛이야, 소중한 친구, 모든 이론은/ 푸른 건 찬란한 생명의 나무라네. 잿빛 이론(통일된 존재 전체 )과 푸르고 찬란한 생명의 나무(가늠할 길 없이 다원적인 풍요)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일까요? 어느 쪽이 플라톤이 말한 선(좋음)의 이데아에 더 가까울까요? 대답은 자명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도 장하석, 가브리엘과 마찬가지로 존재론적 다원주의자예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잘 읽고들 계신지요. 3장은 '실재'를 다루었는데요, '레고주의'라는 재미있는 개념도 나왔습니다. 오늘부터는 4장 '진리'를 함께 읽습니다. 4차: 4월 19일(일)~4월 24일(금)_ 4장 진리 '진리'가 뭔지는 내가 잘 안다고, 누구나 아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지요. 4.1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게 간단명료한 사안이 아니며, 이 사안과 관련하여 당신이 느낄지도 모르는 자기만족은 이 디스토피아적인 21세기 벽두에 이미 사라졌어야 마땅하다. 지금 지구 곳곳의 많은 사회는 진리를 둘러싼 매우 기초적인 몇몇 문제에 관하여 합의에 도달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안타깝게도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가장 사려 깊은 첨단 인문학 연구 중 일부는 전통적인 진리, 사실, 객관성, 합리성 개념에 파괴적인 의심의 빛을 비추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역효과를 내왔다." 4장은 내용이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쩌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정치적 양극화, 가짜 뉴스 등의 사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트럼프 이야기도 나오고, 평평한 지구 이야기도 나오지요. 아무리 진심으로 말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활동의 성공(작업적 정합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저자의 단호한 기준은, '가짜 뉴스'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현실적인 잣대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사안이나 태도를 염두에 두고 읽어보시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실마리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4장에서 종종 언급되는 인물인 리 매킨타이어의 책들도 한국에 번역, 소개되어 있습니다. 함께 들춰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이번에는 특정한 질문이나 주제는 남기지 않겠습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느낀 점, 궁금한 점, 와닿은 문장, 자신의 경험 등 모두 환영합니다.
제게는 너무 어려워 따라가기 정말 쉽지 않지만, .... 학생시절 논문을 쓰면서 리뷰어에게 과학지식과 자신의 생각을 잘 구분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게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을 확립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책은 제 경험을 극대화하여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것이고 어디까지가 주관적인지를 매우 엄밀하게 따지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객관과 주관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그동안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것들 이면에는 '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개념화 과정이 있음을 이 책은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실재, 즉 "정신에 의해 틀지어져 있지만 정신에 의해 통제되지는 않는 것"이라는 개념과 마키아벨리1님이 말씀하신 '객관과 주관'을 연결지어 생각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근사적 진리'라는 표현은 부정확하며, 우리가 실제로 거론하는 것은 진리를 향한 '접근'이고, 진리 자체는 여전히 예/아니오의 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진리에 관한 양자택일을 고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정반대로, 1.6절에서 살짝 언급한 대로, 현재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다가 논리가 활약한다는 사실은 양자택일적 진리 개념을 벗어나는 것이, 합법적이며 잠재적으로 매우 유용한 행마임을 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331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절대주의적이며 보편주의적인 경향에 대한 해독제로서 항상 '이 진술은 어디에서/언제 진리인가?'라고 묻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유익할 성싶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332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실제로 삶은, 확실성이 불충분한, 의심하고 검사할 여지가 있는 가설들에 의존하여 수행하는 놀이에 매우 가깝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35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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