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저도 궁금하네요!
[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김영사

아조씨
“ 나는 이 책에서 제시할 생각들을 열렬히 옹호하지만, 존중으로 충만한 비난, 평화로운 선동, 생산적인 불만의 달인이 되려 애쓴다. 나는 굳이 이성과 합리성을 들먹이지 않으면서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싶다. 실재에 관한 웅장한 주장 없이 현실적이고 싶으며, 테이블을 내리쳐가며 진리를 논함 없이 정직하며 진실하고 싶다. ”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34~35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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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호
장하석의 작가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표현이 깔끔하고 명확하잖아요.

아조씨
장하석 샘의 책을 읽다보면 과학이나 과학철학을 벗어나 제 가슴 깊은 곳까지 와닿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도 그런 부분 중 하나입니다. 물론 역자이신 전대호 선생님께서 너무나 잘 옮겨주신 덕분이기도 하지요.

아조씨
하지만 삶에서 무릇 성취가 그러하듯이, 실재성을 성취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통제 바깥에 놓여 있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27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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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씨
이 문장도 그중 하나입니다. ㅎㅎ

바닿늘
아직 읽어 나가는 중이라 확신을 할 순 없지만 ~
약간 장하석 교수님에게서 <팩트풀니스>의 저자로 국내에도 유명하신 한스 로슬링 느낌이 듭니다.
팩트풀니스에서 본 글 중에..
본인은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가능성 옹호론자'에 더 가깝다..?
이런 표현을 봤던 거 같거든요.

김영사
저희 회사 책이긴 하지만 저는 못 본 책이라, 낙관주의자와 가능성 옹호론자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ㅎㅎ 낙관주의, 낙관론이라는 표현은 본문에 몇 차례 명시적으로 나오긴 합니다.
세음
책 잘받았습니다. 요즘 장자를 함께 공부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읽어나가는 책들이 있지만.. 가능한 한 열심히 참석하겠습니다. 주로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서 도움과 영감(?!)을 받겠지만요~^^

김영사
무사히 도착했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 편하게 종종 들러주세요!

여우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기대됩니다.
다른 책 이야기지만, EBS 인문학특강 유튜브에 장하석 교수님의 < 과학, 철학을 만나다> 강의가 있네요! 실용주의 과학철학 읽은 후에 이 강의와 책도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https://youtu.be/fI8w_BYdjtw?si=UhQY48l3O1kFDEPy

김영사
여우는님, 반갑고 환영합니다! 해당 강의를 책으로 만든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널리 오래 추천되는 책이지요. 한국어판 서문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희 책 표지에 쓰인 뒤집힌 건물 사진에 대한 설명도 그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여우는
저는 '실용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과 사회에 어떠한 측면에서든 '유용함'을 제공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를 들면, 불필요한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 인간의 일상 생활이나 직업적 생활 등에 쓰임이 있는 것, 결과나 성과를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등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중 '내 눈 앞에 있는 이 테이블이 실재하는가? 실재하는 테이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대체 이런 논의가 무슨 소용이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쟁에 관해서도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인간의 자유의지란 허상이고 이 세상은 결정론적 세계일 수 있다면 인생이란 참 허무하네, 하는 탄식에 그칠 뿐이지 않나? 그래서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냐?'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의문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드는 의문일까요. 제가 위 사례에서 말한 실용주의는 사회 통념적으로 쓰는 말일 것이고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에서 정의하는 실용주의는 이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 사례에서 제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고 싶습니다.
전대호
말씀하신 두 가지 의문에 장하석 교수는 전적으로 공감할 것입니다. 그는 이 의문들을 더 생산적인 것들로 바꾸자고 제안 합니다. 더 생산적인 것들이란, 대답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죠.
실용주의와 '유용함'을 연결하셨는데, 그러려면 '유용함'을 편협한 의미로 이해하지 말고 최대한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리에 맞음make sense'과 연결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리에 맞음도 상황의존적이고 맥락의존적이긴 하지만, 왠지 '유용함'보다는 더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제 느낌은 그런데, 아무튼 '사리에 맞음'과 '유용함'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숙고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 듯합니다.

우주먼지밍
“ 실용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오해는 두 방향에서 유래한다. 첫째, 실용주의자는 진리의 의미와 상관없이 무릇 진리를 무시한다는, 왜냐하면 실용주의는 당사자에게 편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진리로 간주하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있다. 이것은 실용주의에 대한 최악의 왜곡이다. ”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2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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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호
이런 대목에서 '사리에 맞음'과 '편리함' 혹은 '유용함' 사이의 미한 차이가 강조되는 듯합니다.

우주먼지밍
사실 저는 영어의 'pragmatism'을 '실용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실천주의'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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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밍
1주차
2.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소 터득한 숙달된 솜씨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지만...딱히 없는 것 같아요 ㅠ_ㅠ
그래도 무언가 성의 있게 답을 달고 싶어서 고민을 해보았어요.
그믐에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였으니, 저 또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터득한 기술 중 '투명비닐로 책 커버 입히기 '가 있어요.
저또한 정말로 책을 사랑해요. 여기에는 당연히 책의 물성이 포함되지요.
저는 새 책을 구입하거나 받으면, 때로는 과거에 구입한 책들도 꺼내서 투명 비닐로 책의 커버를 입힙니다.
시행착오를 거쳐 어떻게 해야 책의 크기에 꼭 맞는 비닐을 입힐 수 있는지 나름의 경지에 올랐답니다. 흐흐
3. 처음에는 엉성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여러 동작이나 조건들이 조율되어 성공한 경험이나 순간
장하석 교수님께서는 '작업적 정합성'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의 예시로 성냥불 켜는 법 등을 말씀하고 계시네요.
지속적이고 조직화된 활동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은 재봉틀 돌리기 입니다.
저는 취미로 재봉틀을 돌립니다. 보통 직선박기 위주로 완성되는 난이도 낮은 것들을 만들지만,
책을 사랑하는 저는 다양한 형태의 책커버를 만들곤 했어요.
아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책커버도 있지만 어떤 특별한 책들, 가령 러셀의 <서양 철학사>, 사마천의 <사기 열전>, 샬럿 고든의 <메리와 메리>와 같이 특별한 크기와 두께를 가진 책들은 그 책에 맞게 책커버를 만들었어요.
"오히려 작업적 정합성은 매우 임기응변적인 방식으로, 즉 다양한 이론에서 취사 선택한 이론적 요소들을 시스템의 다양한 부분에 적용하되 당면한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리에 맞게 설계하여 적용하는 방식으로 성취된다"
(91쪽)
네 맞습니다. 저는 특별한 크기와 두께를 가진 책들을 만나면 임기응변식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합니다.
단순히 책을 보호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읽을 때 엄청나게 많이 밑줄을 긋고 인덱스를 붙이기 때문데, 연필, 메모지, 컬러 인덱스 따위를 넣을 수 있는 전용 포켓 등을 그 책의 커버에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_+
전대호
우주먼지밍께: 일리 있는 제안입니다. 언젠가 번역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실용주의"라는 번역어의 영향으로 우리는 미국의 "pragmatism"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나쁜 일이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실천주의"라는 또 다른 노선이 발전한다면, 그건 더 좋은 일일 터입니다.
전대호
장하석 교수는 재봉틀 돌리기 같은 수작업을 인간이 하는 활동의 대표적 사례로 보는 것 같습니다. 과학 연구도, 무릇 앎도 그런 수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시각이라고 느껴집니다. 특권, 품격, 권위 따위에 반발하는 태도가 엿보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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