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잘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
과학철학의 지위에 대해서 한 마디 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철학자와 과학철학자가 대체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는데 영국에서는 어떠냐고 장하석 교수께 질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도 다르지 않다고 대답하더군요. 아무래도 과학철학은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그 이유 중 하나로 들었는데,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철학은 대개 과학을 공부하던 분들이 합니다. 예컨대 장대익 씨가 유명하지요. 철학에서 앎을 다루는 분야, 칸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고민하는 분야를 인식론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인식론 연구자라면 반드시 과학철학자이기도 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과학은 우리가 보유한 앎 가운데 가장 질이 높은 축에 든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물론 과학지식이 가장 우수한 앎이라거나 심지어 유일하게 정당한 앎이라는 과학주의적 망상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과학은 앎을 추구하고 획득하는 활동의 한 갈래로서 대단히 성공적이고 다른 갈래들에도 유익한 교훈을 주지만, 그 활동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습니다. 조금 뜬금없더라도, "눈은 눈을 보지 못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과학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꼭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도 잘 아는 철학자가 과학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그 일을 도와준다면 모두가 큰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과학철학의 의의일 테지요. 요컨대 과학철학은 인식론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또 과학의 자기비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1. '실용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 실질적으로 먹고 사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가치있다?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거 같아요. 약간 벗어난 것 같긴 하지만 이론보다 그 응용이나 활용-공학이나 경영 등이 떠오릅니다. 오늘의 내 일상에 연결되어야 한다- 2. 저자는 지식을 정보의 습득이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아는 능력'(knowing how)으로 정의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기술이나 노하우 중,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소 터득한 숙달된 솜씨는 무엇이 있나요? -> 제 솜씨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집에 계시는 손맛으로 요리하는 수많은 장인들- 레시피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거의 매번 비슷한 맛을 내는 분들이 계시죠. 분명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저만의 손맛이 있습니다, 저만의... 3. 작업적 정합성이란 활동의 여러 요소가 목표 달성을 위해 조화롭게 맞물려 '사리에 맞는(make sense)' 상태를 뜻합니다. 처음에는 엉성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여러 동작이나 조건들이 조율되어 성공했던 경험이나 순간을 공유해주세요. -> 리포트를 쓸 때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해서 중간 어느 시점에 문서의 흐름이 사리에 맞아진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아웃라인을 잡고 생각나는대로 마구 채워넣다가, 문단 끼리 톱니이빨이 맞게돌아가는 걸 알게 되는 때. 어떤 특정한 연결고리가 떠올라서 이기도 하고 반복해서 보다 맥락이 매끄러워져서이기도 하고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번 질문은 사실 '실용주의에 대한 오해'를 노리고 드린 질문이기도 한데, 바람직한 인상들을 갖고 계시네요. 2-3번에 관해 43쪽과 51쪽의 예들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특히 51쪽의 나열 뒤에 "왜 이 모든 활동 안에 중요한 앎이 있다는 점을, 단지 그 앎이 명제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따는 이유로, 부인해야 할까?"라는 말이 저자의 철학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실용주의가 진정으로 경험주의적인 과학철학이라고 보는"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실용성과 실용주의를 구분해야겠다 생각합니다. 특히, "과학탐구도 인간적 경험의 일종"이며 "탐구 과정 자체가 경험의 한 유형"이라는 정의가 고마운데요! 경험의 의미와 결과를 폭넓게 해석하고 실용주의적 탐구로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는 배우기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를 포함한다."는 문장에 밑줄과 별표를 함께 표시하고 1주차 독서 마무리합니다!!
실용성과 실용주의를 구분해야겠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진도에 맞게 읽어주고 계시네요.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죽 잘 부탁드리고, 부키님께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책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들께 소개해드릴 세미나가 있습니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신문연)에서 2026 봄 신문연세미나로 기획해주신 세미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신청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청 기간은 12일까지이고, 오프라인 유료 세미나입니다. 📌 세미나 커리큘럼 보기 ▶️ https://tinyurl.com/22w8nnm5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1장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이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계시네요. 1장에서는 '작업적 정합성' '능동적 앎' 같은 말들이 키워드였습니다. 오늘부터는 2장을 함께 읽어봅니다. 종이책 기준 140~232쪽까지입니다. 2차: 4월 7일(화)~4월 12일(일)_ 2장 대응 2장은 이 책에서 예외적인 장으로, 반박과 논쟁에 초점을 맞춥니다. '들어가는 말'에 쓰여진 것처럼 저자의 견해를 펼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지요. 거칠게 말하면, 2장에서 기존의 '과학적 실재론'은 박살이 납니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달까요, 어떤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1장에서처럼 굵은 줄기만 읽어오셔도 충분합니다. 역시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과 주제를 적어봅니다. 물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 1. 이 책의 구조와 관련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읽고 계시나요? 저자는 독자들이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핵심 줄기와 전문적인 세부 사항을 나누어 이 책을 설계했는데요, 저자의 의도가 잘 구현되어, 각자의 방식에 맞게 읽고 계신가요? 굵은 줄기만 읽어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충분히 전달되는지, 또 세부 사항으로 넘어갈 때 서체가 달라지는 시각적 구분이 어떠신지(똑같아 보여서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외려 다른 서체가 민감하게 느껴져서 독서를 방해한다!) 등 궁금합니다. 2. 우리는 '동굴'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이건 약간의 스포(?)가 되겠지만, 저자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해체해버립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정말 짜릿하고 재밌었던 부분이에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며 '세상 그 자체'를 볼 수는 없다는 이 현실적인(혹은 비관적인?) 진보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믿어온 '과학의 진보'와 일치하나요? 3. 과학은 또 다른 신앙일까요? 이 이야기는 2.4절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는데, 굵은 줄기만 읽어온 분들이라도 이 절만큼은 아마도 세부 사항까지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는 왜 과학이 하는 말들을 큰 의심 없이 믿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과학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2.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이 외부 세상을 인식하는 구조의 한계 때문에 절대로 동굴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이전까지 생각해온, 진실을 발견한다는 과학의 진보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상에 근접해간다는 의미에서 과학은 진보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3.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에 반하는 주장을 접하게 되면 (예를 들어 백신을 반대하는 주장,) 과학이 신념이 되고 유사신앙 비슷한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키아벨리1님,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까지 해서 2장 읽기도 마무리되어 가네요. 봄날과 함께 이 책도 즐겨주세요~
폴라니는 개인적인 앎personal knowledge 중에 친목함conviviality를 다루는 장에서 앎을 다룰 때 사회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의 지적 열정에 붙는 시민적 계수들civic coefficients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계수들은 신념 공유, 동료애 공유, 협업, 권위나 강제력 행사 등이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암묵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며, 심지어 다양한 비안간 동물에서도 효과를 낸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합리적인 개인 행위자는 사회적 매트릭스에서 발생하지만, 독립적인 생각과 반발의 능력을 갖추고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의 연합으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사회성이 발생한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왜 이 대목을 인상 깊게 읽으셨는지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그저 인용만 하셔서 아쉽네요. 저도 이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개인이 사회를 낳고, 사회가 다시 개인을 낳는데, 개인과 사회는 서로에게 반발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뭔가 심오한 교훈을 주는 듯하거든요. 저는 이런 관계를 "맞선 둘의 얽힘"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다름이 함께 있음"이라는 표현도 쓰고요.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이라는 현학적인 표현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법합니다.
아 이 문단 전에는 패러다임 안의 어떤 걸 구현하는데 인간이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패러다임이라는 단위는 정말 힘이 대단하다, 그 안에 인간은 실험인의 역할을 한다는 건가보다-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이 문장이 나왔습니다. 개개별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반발 능력이 결국 사회성을 끌어올린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 사회안에 개인이 '속한다'는, 부분집합의 개념이 아니라는 게 재밌었습니다.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 변화는 개개인의 생각과 반발로부터 나온다는 것. 이게 개인으로서 꼭 기억해야할 태도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2인칭 상호작용 부분도 재밌었는데 그건 다음에 문장수집과 함께 이어서 해볼게요-
자기를 실현하는 개인들의 연합은 더 높은 수준의 사회성을 발생시킨다. 2인칭 상호작용second-person interaction에서 나는 사회의 동료 구성원을 나와 마찬가지인 개인으로 상대한다. 그 상호작용으로부터 개인들로 환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발생한다. 여기에는 너는 개인이며, 믿음과 행동의 정합성을 의미하는 기본적 합리성을 지녔고, 소통에 필요한 기본적 인지 역량을 지녔으며, 또한 적어도 최소한의 선한 의지와 우호성을 지녔다는 심층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사회적 집단은 복잡하게 얽힌 2인칭 상호작용들을 발전시킨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진짜 문제는 나중에 입장을 바꾸게 될까봐 입장 자체를 내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최근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영화 및 책으로 접하였는데요. 그 스토리는 우리책 p.53~54의 '탐구는 환경에 대처하는 유기체의 필수 활동이며 삶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다', '과학의 목표는 진리 그 자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지구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로 유인탐사선을 보낸다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그레이스와 로키가 과학적 탐구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능동적 앎"의 훌륭하고도 감동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를 앎'이 명제적 지식에 선행하며, 그러한 명제적 지식이 어떻게 능동적 앎에 의존하며 또한 기여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저희 책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나 보네요! 기회가 닿으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한 층의 동굴 시스템 안에서 영원히 떠돌아야 하는 운명일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있는 동굴 바깥의 동굴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로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안쪽 동굴에서 벗어나기를 실천하면서 바깥쪽 동굴을 낳는다. 우리는 이 동굴을 둘러싼 또 다른 동굴을 창조하지 않으면서 이 동굴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동굴을 만드는 마이더스의 왕이다. 우리가 가는 모든 장소는 동굴의 내부로 바뀐다. (이쯤 되면 내가 플라톤의 비유를 변형하다 못해 해체한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 166~167쪽,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저도 참 재미있게 읽은 대목입니다. 동굴 바깥으로 나가 직접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철학의 목표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이런 장하석의 얘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얘기에 충분히 공감하는데, 그건 제가 마주하는 진실은 늘 진실의 일부일 따름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위치로 옮겨가더라도 저는 진실의 다른 일부만 보게 되겠죠.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 대한 통속적인 해석에서 말하는 "동굴 바깥으로 나가기"를 제 나름대로 표현하면 "진실 전체를 마주하기"쯤 될 듯합니다. 저는 진실을 그렇게 온전히 마주하거나 움켜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굴 바깥에는 또 동굴이 있다는 장하석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여요. 우리 각자가 무한 층 동굴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결론은 비극적이거나 절망적일까요? 오히려 정반대로 그 결론은 우리를 진지한 대화로 이끄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내가 동굴 안에 있다는 것,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벗어난 다음에도 또 한없이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끝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기꺼이 자기를 수정할 터입니다. 쉽게 말해서, 배우고 또 배울 터입니다. 완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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