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일상에 매몰되고 함께 시간을 허비하는 대중과 달리 통찰을 바탕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힘을 가지려면...오랜 수련이 필요할 듯 합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D-29

거북별85

거북별85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를 모두 읽었습니다. 세네카는 로마의 황금기를 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세운 로마제정부터 마지막에 네로 황제 때 죽임을 당합니다. 이렇게 유명한 로마 황제 다섯 명의 시대를 함께 한 것도 신기합니다.
2000년전의 철학가인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뼈 때리는 말들의 향연이 놀랍습니다.
온갖 일에 붙잡혀 분주한 자들, 특히 가여운 이들은 남의 일정을 따라 자고 일어나 남의 발걸음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직장인인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않나요??
온갖 일에 쫓기다가 할 일이 없어지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사람들은 쾌락을 누릴 때 조차 이 기쁨이 언제 끝날지 몰라 온갖 두려움에 떠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불쌍한 이들은 삶의 끝에 이르러 그토록 오랜 세월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헛되이 바쁘기만 했다는 걸 깨닫는다고 합니다. 지난달 읽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해 최선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 가장 어리석은 대중에게 물어본다고 하구요.
오랫동안 행복만 누리는 사람들은 나약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 오래도록 눈물짓는다는 문장에서 요즘 몇몇 부모님들의 자녀들에 대한 과잉보호도 떠올랐습니다
세네카는 자연이 인간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인생이 짧게 느껴진다고 그래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현재에 충실하며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 모두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과 돈은 많이 있으나 적게 있으나 항상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건 저만 그런걸까요??(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주변의 대중에 편승해 외면하려는 중입니다.^^;;)
오은영 박사 상담을 보며 그래그래 스스로 부족한 부모의 모습에 반성하다가도 또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미안해 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매번 반복되지만 그래도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해야겠죠.
그 점에서는 2000년 전 로마제정시대를 산 세네카의 이 책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형광펜으로 계속 줄을 긋고 싶어집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의 네 번째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도 무사히 읽고 차곡차곡 웰다잉에 관해 또 한번 배워가고 있습니다. ^^

거북별85
이 방이 닫히기 8시간 전 모두 읽고 감상을 남겨서 혼자 뿌듯합니다^^
정말 소크라테스도 그렇고 세네카도 그렇고 철학자들은 맞는 말을 참 잘하시네요. 어리석은 대중들과 선을 긋는 모습에 그래서 가끔 미움을 받으시기도 하는거 같아요
이성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왠지 무의식 중에는 감정적으로 선택하니까요
그래서 한번씩 환기시키고 배움을 얻기 위해 이번과 같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같은 책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그믐30
제5편 |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 (40년)
제1장 7.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 당신의 비통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져, 마침내 그것은 당신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이 비통함을 내려놓는 것이 죽은 이에 대한 배신처럼, 도덕적 결함처럼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악덕이 그렇듯, 처음 싹틀 때 억누르지 않으면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마찬가지로 슬픔에 잠기고,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여기며, 내면의 분노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은 나날의 자책 속에서 점점 더 깊어지고, 마침내 그 고통 자체가 불행한 영혼을 사로잡는 뒤틀린 쾌락으로 바뀌고 맙니다.
제5장 5. 인생이 순탄하여 모든 일이 뜻대로 될 때 용기를 내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맞바람이 불어야만 진정 용기 있는 이의 참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제5장 6. 그러므로 좌절하여 주저앉지 마시고, 오히려 당당히 서서 의연하게 걸음을 내디디십시오. 처음에는 큰 충격에 놀랐겠지만, 하늘이 내린 어떤 무거운 짐이라도 견뎌내십시오. 불운을 만났을 때는 평정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제6장 2. 아무리 통곡하며 가슴을 치더라도 죽은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해진 운명이 영원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어 아무리 슬퍼하고 괴로워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또한 죽음이 한번 낚아챈 것을 결코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이 쓸모없는 슬픔과 고통은 멈추어야 합니다.
제6장 3.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키를 잡고 방향을 정하여, 슬픔과 고통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표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조타수가 파도에 키를 빼앗기고 배를 폭풍에 내맡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반면 배가 좌초되고 바닷물에 잠기더라도 끝까지 키를 놓지 않는 조타수야말로 진정한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제7장 2.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 오래도록 빠져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뿐입니다. 인간은 본성이 정한 만큼만 비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정한 한계를 넘어 스스로 만들어낸 슬픔의 크기만큼 비통해하기 때문입니다.
제7장 4. 가난과 비통함, 야심 같은 것은 각자가 만들어온 습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느낍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을 선입견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그 사람은 결국 아주 작은 시련 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제9장 1. “비통함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면, 우리는 왜 이토록 슬픔에 매달리는가?” 그 이유는 불행이 닥치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미리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온한 길을 걸으며 아무런 불행도 겪지 않을 때는, 다른 이들의 불행이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9장 5. “어떤 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이 문구는 단순한 연극의 대사를 넘어선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 자식을 잃었다면, 당신도 잃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지금은 무사할지라도 당신도 언젠가 그런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일이 닥칠 때, 그 착각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심하게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올 수 있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 이는 그런 일이 실제로 닥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10장 3.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곧 떠나갈 존재들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떠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운명이 당신에게 준 모든 것은 영원한 소유가 아닌 잠시 맡겨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제10장 4. 자녀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그들도 당신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게 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모든 기쁨을 남김없이 누리십시오. 오늘 밤조차 보장되지 않은 우리에게 이를 내일로 미루는 것은 너무 긴 기다림입니다. 이 순간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서두르십시오. 죽음이라는 적이 바로 뒤에서 쫒아오고 있습니다.
제10장 6. 우리는 운명이 다스리는 냉혹하고 거스를 수 없는 왕국에 들어왔기에, 운명이 정한 것은 합당하든 그렇지 않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11장 1. 삶 자체가 눈물로 가득한데, 그 안의 한 사건만 붙들고 통곡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불행을 수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불행이 닥쳐옵니다. 그러므로(..)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을 수많은 슬픔과 고통에 적절히 나누어 써야 합니다.
제11장 2.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든, 경멸하는 이든, 모두가 똑같이 재가 되어 하나로 돌아갈 것입니다. 분명 이것이 델포이 신탁소에 새겨진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의 참뜻일 것입니다.
제16장 7. 바람에 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거센 회오리바람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지가 부러질 때, 현명한 농부는 남은 가지들을 소중히 돌보고 뽑힌 자리에는 즉시 씨앗을 뿌리거나 묘목을 심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순식간에 자라나, 잃어버린 것보다 더 무성한 숲을 이루게 됩니다 잃는 것도 한순간이지만, 다시 자라나는 것 또한 한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제17장 1.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소중한 이를 잃기도 하고 스스로도 죽음을 맞이하며, 희망을 품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며, 다른 이와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때로는 바라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그중 가장 비참한 일은,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19장 1.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빼앗겼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불행이라 여기고 그 불행의 크기를 더 크게 평가할수록, 우리는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치유의 가능성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19장 2. 오늘날 사회에서는 자녀가 있는 삶보다 오히려 자녀 없이 살아가는 삶이 더 선호되고 있습니다.(..)지금은 자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 무자식의 삶을 선택하는 태도가 오히려 자립적이고 현명한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제19장 5. 죽음은 모든 슬픔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죽음은 우리를 태어나기 이전의 평온한 상태로 되돌려 놓습니다.(..)죽음은 좋지도 나쁘지 않습니다.(..)무(無)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죽음은 우리를 운명의 지배 아래 두지 않습니다. 좋고 나쁨은 항상 어떤 실체를 둘러싸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20장 3. 삶이여, 죽음이 있기에 나는 너를 소중히 여길 수 있구나.
제20장 4. 적절한 때에 죽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그때를 놓쳐 더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제21장 2. 시간이 아무리 늘어난들, 무(無)와 같은 우리 삶에서 단순한 시간의 길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직 충만하게 산 삶만이, 진정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믐30
제6편 |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42년)
제5장 1. 현자는 운이 좋다고 해서 들뜨지 않고, 운이 나쁘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현자는 행복의 많은 부분이 자신에게 달려 있게 하고, 모든 즐거움이 자신으로부터 나오게 하려 늘 힘쓰기 때문입니다.
제8장 2. 우리가 어디로 거처를 옮기든 가장 귀한 두 가지, 즉 모든 이가 누리는 자연과 우리 자신의 미덕이 함께하기에 유배로 인해 잃는 것이 실상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8장 5.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히 일어서, 두려움 없이 걸어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도, 본디 유배지라 불릴 만한 곳은 없습니다.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어디서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의 거리는 같습니다.
제8장 6. 이 모든 것과 함께하며 인간에게 허락된 천체들과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한, 제 영혼이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을 바라보며 늘 숭고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한, 제가 어떤 땅을 밟고 있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16장 1. 우리 조상들은 남편을 잃은 여성의 애도 기간을 법으로 열 달로 정해 두었습니다. 애도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되 그 감정에 한계를 두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끝없이 슬퍼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냉정함이기 때문입니다. 애정과 이성 사이의 최선은 그리움을 느끼되 그것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제17장 1. 슬픔을 숨기고 한탄을 삼키려 해도, 억지로 지은 표정 위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제17장 2. 그러므로 슬픔을 속이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낫습니다. 쾌락과 분주함으로 덮어둔 슬픔은 다시 터져 나오고, 조용히 폭발할 힘을 모읍니다. 반면 이성에 굴복한 슬픔은 영원히 잠잠해집니다.
제17장 3. 그래서 저는 운명을 피해 달아난 모든 이의 안식처가 되어준 자유로운 학문의 길로 어머니를 이끌려 합니다.
제17장 5. 학문은 어머니를 위로하고 즐겁게 할 것입니다. 학문이 어머니 마음에 자리 잡으면 슬픔도, 염려도, 헛된 괴로움도 더는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믐30
제7편|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44년)
제10장 2. 지금 누리지 못하는 복은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이미 누렸던 복에 만족하지 못하며, 더는 사라질 염려가 없는 과거의 복을 확실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제10장 3. 지금 누리는 즐거움만을 유익하다 여기고 과거의 같은 즐거움은 무가치하다 보는 것은 스스로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일입니다. 모든 즐거움은 우리를 빠르게 떠나가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은 흐르고 지나가며, 오자마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과거로 돌려야 합니다. 한때 우리를 기쁘게 했던 모든 것을 되살려 자주 생각하고 곱씹어야 합니다. 현재의 즐거움보다 지나간 즐거움의 기억이 더 오래 가고 더 믿을 만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의 가장 큰 복 중 하나로 여기십시오!
제11장 1. “하지만 나는 생각지도 못한 때에 갑자기 그를 잃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매일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장례 행렬이 눈앞을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다가 평생 예고되어 온 일이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뜻밖의 일처럼 여깁니다.
제11장 3. 삶을 얻은 자는 누구나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것을 기뻐하고, 돌려달라 할 때 돌려주어야 합니다. 운명이 부르는 때는 제각각이지만, 그 부름을 피하는 이는 없습니다. 마음은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필연적인 일은 두려워하지 말고, 불확실한 일은 항상 예상해야 합니다.
제18장 1. 이제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슬픔이 스며들 틈 없이 마음의 성채인 학문으로 자신을 에워싸십시오.
제18장 2. 동생에 관한 기억을 글로 남겨 영원히 간직하십시오. (..) 글로 남긴 기억은 영원합니다. (..) 헛되이 슬퍼하고 애도하기 보다는 당신의 글쓰기로 그를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제18장 6. 이성이 슬픔에서 지나치고 넘치는 부분을 덜어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누구도 이성이 슬픔을 완전히 없애주길 바라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성은 우리를 냉정하거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상태, 즉 우애를 지키면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에 두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 수도, 그칠 수도 있어야 하며, 깊은 비탄을 느낄 수도, 그것을 끝낼 수도 있어야 합니다. 현자들과 동생들도 인정할만큼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그믐30
[해설| 불안과 분노가 나를 뒤흔들 때 세네카가 전하는 단단한 삶의 기술] 중에서
세네카(기원전 약 4년~기원후 65년)는 로마의 황금기를 관통한 사상가이다.(..)그의 14편의 저작을 살펴보면, 한 가지 핵심 주제가 떠오른다. 바로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세네카는 이 답을 ‘영혼’에서 찾았고, 영혼의 평정심과 항상심을 추구하는 스토아학파 철학에서 참된 자유를 발견했다.
철학자 세네카는 철학을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비유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자유를 위하여, 표지 (뒷면) 중에서]
그에게 철학은 제한된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가게 하는 구체적 방법론이었다.
세네카의 철 학은 시간과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삶을 모색한다.
그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우리의 태도와 선택-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 지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더욱 절실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그믐30
현재를 사십시오(protinus vive).
지금 이 순간, 모든 기쁨을 남김없이 누리십시오.
시간을 붙들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도 헛될 뿐입니다.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우니, 그의 인생은 비록 짧더라도 깊이가 있고 충만합니다.
오직 충만하게 산 삶만이, 진정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로 남긴 기억은 영원합니다.

그믐30
“ 현재를 사십시오(protinus vive).
지금 이 순간, 모든 기쁨을 남김없이 누리십시오.
시간을 붙들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도 헛될 뿐입니다.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우니, 그의 인생은 비록 짧더라도 깊이가 있고 충만합니다.
오직 충만하게 산 삶만이, 진정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로 남긴 기억은 영원합니다. ”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시간과 운명, 인생의 본질에 관한 세네카의 가르침』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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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30
좋은 책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석, 해설, 표지 그림을 포함해서)
표지 그림 설명까지 참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믐 플랫폼이야말로 그믐 회원들이
현재의 시간을 붙들어 의미있게 채우면서 서로 공명하는 참 소중한 공간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믐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김새섬 대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론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1853~1990), 네덜란드, 1888년.
고흐가 아를의 론강 가에서 마주한 밤의 찰나를, 따뜻한 색감과 강렬한 붓질로 영원처럼 붙들어낸 장면이다.
짧은 삶 속에서도 영원처럼 남는 순간,
고요 속에서 반짝이는 감정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나아가려는 인간 내면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시간과 운명을 묻는 세네카의 철학과 절묘하게 공명한다.

김새섬
삶이여, 죽음이 있기에 나는 너를 소중히 여길 수 있구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시간과 운명, 인생의 본질에 관한 세네카의 가르침』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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