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집 주인장에게는 '진심으로 마땅히 이래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상이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은 그렇지 않죠, 세상이 자기에게 맞춰주기를 마냥 기다리는 주인장에게 주방장은 '핑게'대지 말고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주방장도 사실 도긴개긴입니다. '한 눈에 망할 각'을 알아봤지만 '자신의 솜씨와 주인장의 진심만 있으면 금방 자리를 잡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주저 앉거든요. '희망'을 믿는 '착한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일은 없죠.. 이것도 모두까기인가?.
<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
D-29

하츠

하츠
'세상이 마땅히 이래야한다'던 라멘집 주인장은 사실 진실한 사람은 아녔다는게 금세 드러납니다. 주방장을 요코하마 유학파라고 거짓말을 한거하며 택배기사를 파워블로거라고 한걸 보면요. 진심인 사람도 아녔던 거고요.

하츠
극의 종반에 주인장은 택배기사를 '모자란 놈이야, 나처럼'이라고 합니다. 알긴 아는 거죠. 자책하는 그에게 주방장은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고 주인장은 '소질이 없다'고 합니다. 이게 경험이나 소질의 문제인가요? 여전히 단단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츠
맨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손님은, 이들을 제대로 하대합니다. 보자마자 반말로. 그러니까 주인장이 칼을 들고 괴성을 지르면서 손님에게 덤비죠 '쪽팔려서'(p173) 이게 현실에 대한 주인장의 진짜 감정이 아닐까. 도입부에 '부끄럼을 타서 장사를 어떻게 하냐'고 했던 주방장의 말을 더 정확하게 돌려주는 말이요

하츠
레비오로스의 말대로 2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극에서는 사이렌을 극 안으로 들입니다. 이들의 비상상황은 돌발상황이 아니고 거듭 예고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피하는데 실패하는 거죠. 그리고 대체 얼마만에 한번씩 비상상황이 발생하는지 묻지요 이것을 이들의 앞날에 대한 질문으로 읽으면 이것도 참 답답하죠? 민방위 훈련에서야 책상 아래 숨으면 된다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살구20
아. 이거 ‘쪽팔린다!‘ 이게 남자1이 제대로 라멘집 장사 못하는 이유인가 봐요. 지금 하츠 이야기 듣고 나니. 떠오르는 게 있어요. 남자1이 뭔가 대기업 부장쯤에서 그만두고 라멘집 차린 거라면. 이 사람은 부끄러움을 핑계댄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거네요! 하하. 괜히 남자2까지 끌어넣어 망할 라멘집을 차렸어요. 그러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꼭 남에게 비벼 넣는 관성은 대체 어디서 출발하는 걸까요? 이런 사람과는 일하지 말아야 해요. 아. 또 하나 떠오른 거 있어요. 잘 차린 일본식 음식점들 어쩌다 가보면. 사장님들이 어깨에 너무 뽕이 들어간 경우 있어요. 그게 라멘이든 초밥. 생선회. 구이든 뭐든 앙증맞은 접시에 담아낸 한 점 요리. 와사비 한 종지에 너무 힘을 가득 싣는 거 봤어요. 뭐랄까요. 가게의 급이 주인장의 눈빛 부심으로 너무 나타나는 거죠. 그런 풍경을 혹시 이 글 쓰신 분이 파악하고 일식라멘집을 공간으로 설정한 거란 생각을 해봤어요. 잘 돌려까기는 우리 모두의 삶을 촉촉하게 윤기 나게 해준다 싶습니다! 일주일 파이팅이요!!

하츠
남자1의 전사 (우리 나름으로 짐작했던)와 연결하면 이렇게 읽히네요!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그런 생각이 또 드네요. 살구도 일주일 즐겁게 지내세요!

하츠
읽으면서 웃겼던 부분
주방장에게 택배기사를 맛집 파워블로거라고 얘기하는 168페이지
주방장 : 오오 진짜요? (갑자기 인상쓰곤) 사기꾼 아녜요?
주인장 : .. 할일 없냐? 여기까지 와서 사기를 치게.
사실 거기(주방)까지 가서 사기를 치는 건 주인장 자신인거죠. 할일이 없어서요. 고스란히 화자에게 반사되는 이런 식의 대사를 만나면, 미소가 떠오르면서, 잘쓰네, 싶더라고요

하츠
@모두 오늘 두 작품, 어떻게 읽으셨나요?

꽃의요정
2부는 오늘 두 개 작품만 읽어 전체적인 흐름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평소 많이 만나는 두 사람의 캐릭터가 나옵니다.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놓고 할 수 없는 사람들' 이 두 사람이 그런 사람들 같아요.
그래도 라멘의 사장님은 농담조로라도 안타까운 부분에 대해 찔러 줄 수 있지만, 지지리곰탕에 나온 머슴 씨는......
근데 문제는 저런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해 줘도 쉽게 자기내면의 합리화를 해 버리는 타입이라 소용이 없다는 걸 종종 경험합니다. 돌려도 말해 보고, 직접적으로도 얘기해 봤지만, 쓰러졌다가도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 돌아옵니다. 안 그래도 하루의 에너지가 부족한 판에 더 이상 에너지 낭비 안 하기 위해 이젠 거리두기만 합니다.
에그머니나....너무 제 감정을 앞세워 침을 튀겼네요.
이게 '당신이 잃어버린 것'의 힘이지 않나 싶어요. 게다가 낭독도요!

하츠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놓고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저를 찔리게 하는군요. 최근에 에스에프 소설을 읽는 모임에서, '이 작가는 좋은 말만 프로파간다처럼 늘어놓고 디테일이 없다. 나를 설득하는데 이 쪽방면으로도, 저쪽 방면으로도 실패했다' 운운하는 저에게, 모임 동료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작가 욕은 할 수 있다. 근데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만도 대단하지 않냐?' 참지 못하고 확 뱉어버린 것 같은 분위기. 음..그 분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놓고 하지 못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꽃의요정
근데 전 지인분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좀 힘들어요. 물론 작가님께서는 고생하며 쓰셨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작가님도 본인이 선택하신 방향으로 쓰셨을 거고, 그 부분은 존중하지만 '쓰느라 고생한 작품'이란 대전제를 까는 건 세상에 나온 모든 예술 작품을 '칭찬'하라는 강요 같이 들려 슬픕니다. 저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맞지 않을 때는 비판을 담아 이야기 많이 합니다. 아마 아쉬운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츠
@꽃의요정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작품은 세상에 내놓고 나면 독자의 것이고 자기가 읽은 한에서 그것을 해석할 권리를 독자는 가지죠. 작가의 의도가 작가와 독자 사이 어디선가 실종되었다면 왜 그런 실패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독자 뿐인거죠. 다만 '뒷담화' 수준은 넘어야 읽은 의미가 있는건데, 그런 의미에서 정확하게 비판했는가, 의 문제는 남을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더 정확하게 비판해야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침바람
저는 어제 낭독 마치고 바로 여주쪽 남한강을 걸으려 떠났었습니다. 산길 들길 강길을 걸으며 소가 되새김질 하듯 아침에 읽고 나눈 이야기들을 조금씩 생각해봤습니다.
지지리 곰탕에 잠깐 등장한, 이젠 큰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산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한때 순수했던 옛시절 경비원의 어떤 진심이나 좋은 모습같은거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비원이 수도없이 닦아서 너무 반질반질 해서 눈부셔 쳐다도 못보는 가마솥을 생각하니, 주변에서 자기의 생각만을 최고라고 여기고 주변 사람이나 세상을 돌아보지 않고 ' 너무 맑아서 고기도 살수 없는 물'이 떠올랐어요. 에구,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세상사가 얼마나 더 팍팍 해질지~~.
저는 지난주에 3부 '터미날'을 먼저 읽었는데 읽는 중에 가슴이 막히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3부 내용중에 '천정완- 소' 가 있는데 그걸 읽었더니 갑자기 '소의 되새김 질'이라는 말이 나오네요~.
실제로 책을 혼자 읽을때는 그냥 읽는데 올려주신 글들을 읽으니 생각할게 너무 많내요. 감사합니다~~.

하츠
@아침바람 3부도 이런 저런 겹으로 들춰 읽기 좋은 작품들이 많지요? 이쯤 되니까 작가들 이름도 낯이 익고요. 3부까지 다 읽고, 나의 최애작가, 최애작품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어요!

꽃의요정
맞네요!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과 작가님 이야기 좋습니다!

하츠
@모임 이번주 낭독은 금요일 저녁 7시 30분입니다.
2부에서 두 작품 읽을 예정입니다.
링크는 하루 전에 올려 놓겠습니다.
이번 주에도 행운을 빌어요!

레비오로스
<I>
2부 글을 같이 읽고 여러 분들이 해주신 말들:
1. '착각'을 다루는 이야기
2.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놓고 할 수 없는 사람들' 에 대한 이야기
3. 불편하게 만드는 모두까기 이야기. 잘쓰이거나, 성기거나.
라고, 표현해주신 점들이 와닿아서 좋네요.
<II>
취향을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생각하게 되는 시대다보니, 참 누군가가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선 마음에 안들어도 말을 아끼게 되더라구요.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대놓고 하지 못하는' 게 참 세상 곳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츠
@레비오로스 취향이 정체성의 일부, 아니 팔할은 되는것 같은 시대인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취향은 단일하지도 않고, 일관되지도 않고, 사실 어디까지를 취향이라고 해야할지도 의문이에요. 콩을 싫어하는건 취향인가요? ㅋㅋ 그 모든 복잡성이 나를 이루고 있는데, 그때 그때 사안에 따라서 나의 위치가 바뀌는 것 같거든요. 정체성은 단일하고 고정된 것 같지만 사실은 맥락적인 '위치'가 아닐까. 그런걸 정체성이라고 불러도 될까. 어렵습니다...

살구20
저는 며칠 열심히 살다가 위에 써주신 좋은 글들을 이제사 봅니다. 이틀간 유발 하라리 <넥서스>를 전자책으로 확대해 가면서 읽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글이 술술 읽히는 그분 능력에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앞의 내용을 정리해 가면서 새로운 화제로 넘어가는 솜씨가 훌륭했습니다. 영어 번역하시는 분이 유발 하라리가 쓴 영어가 쉽게 쓴 영어라고 하는 말을 예전에 들었어요. 글을 쉽게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하는 능력은 정말 소중한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레비오로스와 하츠 글을 보다가 '취향'이라는 걸 다시 떠올려 봅니다. 처음에 '취향'이란 말이 나올 때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 그런 걸 떠올리면서 좋아했어요. 어떤 취향이라도 존중받을 수 있겠다, 혹시 그런 게 가능한 시대가 열리는가? 하는 기대를 살짝 들뜨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취향이란 게 너무나 또 다른 방어벽이 된 거 같아요. 뭐 이젠 더 마음을 말하기도 무서운 면이 있어요. 표정에서부터 '그건 네 취향이지, 난 그거 아니야' 이러는 게 느껴져요. 이렇게 많이 갈라져 버린 세상에서 거기가 '취향의 공고한 성벽/해자'까지 생겨 버려서 손을 어디다가 뻗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렇게 취향을 강조할 거면 그 취향을 부드럽게 잘 말해줘서 옆에 있는 사람 취향 설명도 끌어내서 들어주는 그런 세상은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러다가 다들 외로워서 죽을 거다. 그래서 강아지와 고양이, 새들, 거북이, 파충류 들 모두모두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나와야 하는 세상이 된 거 같아요. 도서관 가서 신문 한 장, 잡지 한 권 읽고 나오다가 뻘소리 한번 보태봤습니다. 금요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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