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형 상상력 읽기

D-29
그믐 처음이라… 일단 혼자 읽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사실 볼라뇨의 2666을 읽다가 소설의 최신 흐름을 비평적으로 다룬 글을 읽고 싶었어요. 2666을 직접 다룬 한국어로 쓰인 책 두께의 비평서를 못 찾아서, 마이조 오타로를 위시한 일본 소설의 비교적 최신 흐름에 관한 책을 읽으면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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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천황이 가족 국가의 카리스마적 ‘아버지’로서 전쟁 중에 많은 ‘자식’을 싸움터로 보낸 것과 달리, 헤이세이 천황은 아버지가 남긴 역사적 부채를 의식하면서 아내와 아들 부부와 손자들로 이루어진 평화로운 ‘가족’ 이미지를 키워 낸 것도 기억해 두자. 천황과 가족의 관계는 헤이세이를 거쳐 탈정치화되면서 평균적인 일본인의 그것에 가까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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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의 위대한 문호들이 세계 전체를 꿰뚫어 보듯이 썼다면, 20세기 작가들은 그때그때 “임시적인 내러티브”를 “발견”하면서 복잡하고 불투명한 현실을 게릴라적으로 절취하기를 거듭해야 했다. 오에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20세기적’인 작가다.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부동의 3인칭 객관 시점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톤과 속도, 리듬을 매번 조정하면서 그렇게 새롭게 얻은 서술자의 위치에서 세계를 끊임없이 재구축하기?이는 오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등에 이르도록 공유된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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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는 주인공의 마음과 환경을 백지tabla rasa 상태로 초기화해 그 빈 ‘어두운 방’에 지식과 감정을 새롭게 입력해 나가는 경험론적 소설이다. 그에 비해 20세기 ‘가능성 감각’의 문학은 지금껏 마음에 입력된 적 없는 미지의 감각을 조작하려 한다. 혹은 후설식으로 말해 의식의 폴더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났지만 아직 충분히 ‘생장’하지 않은(이를테면 영상 파일로 표시되지 않은) 관념을 그려 내려 한다. 결국 20세기 ‘가능성 감각’ 문학의 필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혹은 앞으로 일어나려고 하는 일로부터, 요컨대감각의 망령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어 내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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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발전이 있고 성장이 있다. 하지만 쇼와 말기에 연재되어 쇼와 천황의 ‘왕생’ 직후에 간행된 『가왕생전 시문』이 보여 주는 것은 역사적 발전이 끝난 포스트 역사적 세계이고, 이 세계에서는 죽음의 직전 순간만이 ‘반복’된다. “잃어버린 청정함 안에서 생애의 반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는 버려진다. 왕생이란 이와 같은 것일까?” 쇼와의 주마등 안에서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의 경계는 애매해진다. 결국 가능성이 현실성을 능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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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달리 다와다 요코에게는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이 풍부하지 않다. 이로 인해 그녀의 소설은 종종 흐름이 교착하나, 이를 약점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이야기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는 만큼 독특한 내부 감각을 수필적으로 열거해 보여 주는 데 다와다의 진가가 있다(덧붙여 다와다는 종종‘시적’이라고 평가받는데, 그녀가 시인에게 있을 법한 절단력이나 조형력을 본령으로 하는 작가인지는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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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는 영상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공감각’ 같은 현상은 일단 제쳐 두고). 그러므로 작가의 일은 활자를 가지고 가짜 세계를 만드는 것, 즉 독자가감각한 적이 없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모든 문학은 잠재적으로 ‘가능성 감각’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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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감각을 작품의 토대로 지켜 가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쇼와의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늙어서도 성적 ‘변태’로 남았던 것과 달리 헤이세이 소설가들은 대체로 페티시즘적 욕망을 지키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애초에 쓰나미와 원자력 발전 사고라는 이상한 사건은 대부분의 이상한 문학 표현을 무색게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대진재 후 헤이세이 말기에서 레이와에 걸친 기간 동안 ‘이상화한 나’라는 원료는 고갈되었고, 그 문학적 공백 지대를 인터넷의 ‘우리’가 메우는 상황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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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폭력을 우화화한 『존 레논 대 화성인』에서는 폭력과 성에 얽힌 엽서도, 마구잡이로 남용되는 고유명사도 텔레비전 채널처럼 대체 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채널 바꾸기가 거듭되는 가운데 정말로 잔혹한 것은 악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악의 이미지를 간단히 만들어 내고 연이어 다른 이미지로 수정하는세계의 존재 방식임이 시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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