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그 형제들

D-29
요셉이 알고 있던 바빌론의 홍수 설화가 그 이전의 더 오래된 설화의 복사판이었듯이, 홍수 체험에 대한 기억은 항상 그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진, 아주 옛날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마지막 원형인 진짜 원본을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 사건이라고 믿고 있다. 대륙이 바다에 잠기자, 그 근방으로 이 무서운 사건이 알려지면서 각기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으로 본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규명은 없다는 것인데, 이 또한 외형상의 중단 지점이며, 임시 목적지일 뿐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우리의 관심거리는 숫자로 확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설화와 예언이 혼동되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시간이 극복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언젠가’라는 단어이다. 이 낱말에는 과거와 미래, 이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어서, 언제든 현실이 될 가능성을 내비친다. 바로 이것이 재구현이라는 발상의 뿌리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 말은 신화가 그들에게 신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존재와 의미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찬이 희생양의 육신 그 ‘자체’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 문제로 다툴 수 있으려면 이때로부터 30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처럼 한가로운 논쟁도, 신비의 본질이 시간이 없는, 곧 시간을 초월한 현재이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에는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의식, 축제의 의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엘리에젤은 야곱의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며 ‘언젠가’라는 단어의 이중 의미를 보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전설과 예언을 결합시켜서 과거와 미래의 구별 없이 항상 지금 이 자리의 현실로 존재하는 갈대아 사람들의 탑을 만들어낸 것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아버지는 젊었을 때, 고향인 ‘일곱 개의 우물가’를 떠나 하란에 있는 숙부를 찾아가느라 나하라임 땅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문도 모른 채 실제 하늘 문, 그러니까 세상의 진짜 배꼽이 닿게 되었다. 거룩한 돌들이 빙 둘러 있는 루즈 언덕이 그곳이었다. 이곳을 야곱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에사오를 피해 도망가던 그는 이곳에서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계시를 받은 후, 자신이 머리를 베고 누웠던 돌베개를 석상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이때부터 이 언덕은 요셉의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의 중심지였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어머니의 탯줄이었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 기적 같은 이야기에는 구원과 관련된 종교적 뉘앙스도 녹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우주론적인 의도가 단연 돋보인다. 신의 인간, 최초의 인간을 서술하는 표현을 한번 보자. 최초의 인간은 빛으로 이루어진 실체이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개의 금속에서 일곱 개의 유성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다시 세상이 만들어진다. 또 아버지의 원천에서 나온 빛으로 구성된 인간이 일곱 개의 유성 차원을 거치며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각 차원을 지배하는 자들로부터 차례차례 본성을 얻었다는 표현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얻은 인간은 하늘 아래로 눈을 돌렸다가 물질에 비친 자신의 상에 마음을 뺏겨 아랫세상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 그곳의 낮은 본성과 몸을 합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이중성, 즉 고향인 거룩한 세상의 자유와, 낮은 세상의 무거운 구속이 하나로 뒤엉킨 상태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영혼과 물질로 이루어진 형체의 세계인 지금의 세상에서, 정신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자신을 망각한 채 형체와 죽음에 얽매여 있는 영혼에게 보다 고귀한 자신의 신분을 상기시키는 것이 정신의 사명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 그렇게 서둘러 영혼이 물질과 벌이는 사랑싸움에 발벗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신은 영혼이 쾌락을 얻도록 그 싸움에서 형체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을 창조했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정신은 본질상 미래에 속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리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형체에 붙들려 있는 영혼은 과거에 ‘거룩했던’ 존재로서 그의 경건함은 과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정신은 경고장을 들고 온 사자다. 자극을 주고, 모순을 깨닫게 하여 긴 나그네 길로 등을 떠미는 원리다.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쾌락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가슴속에, 다른 한편 자연을 뛰어넘으려는, 고통스러운 불안을 일깨우려 하는 것이 정신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이미 되어진 것, 이미 존재하는 것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문 밖으로 몰아내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떠밀어 넣는 것, 그게 정신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왜 당신은 내 아들 길가메쉬가 조바심으로 안절부절못하도록 만드셨나이까? 그에게 왜 평온이라고는 모르는 마음을 주셨나이까?”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마음의 평화? 그런 건 모른다. 그저 묻고, 귀 기울이고, 찾아 헤매고, 신을 영접하려 하고, 진리가 뭔지, 정의가 뭔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며, 고유한 본질은 무엇인지, 또 가장 지고한 분의 뜻은 무엇인지, 이 모든 것들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한 노력.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그 이유는 생명의 본질은 '현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비밀은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은은 깊은 슬픔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아는 자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느냐? 왠지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들의 경솔함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절제 같은 건 몰라서 무턱대고 자신만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감출 생각이 없으므로 당연히 침묵도 모른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아름다운 대화’란 실생활이나 어떤 정신적인 문제에 관해서 서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는 대화가 아니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어 기억을 새롭게 하고, 서로 확인하고, 또 보탤 것은 보태고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래가 아름다운 대화였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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