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그 형제들

D-29
[12] 토마스 만 다시 읽기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다시 잉태하는, 무혈의 알레고리
그 병상에서, 나는 무모함이라는 죄 때문에 치러야 하는 각별한 형벌, 죽음의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의식이 가물거리면서도 ‘요셉’을 불렀던 일을 나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남자를 우르에서 내몬 것은 정신적 불안이었다. 남자가 간절히 바란 게 있다면 단 한 가지, 신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렇게 신을 목말라하던 남자에게 언약이 주어졌다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신을 영접한 남자의 영적 체험의 발산과 관련된 약속이었으리라.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영접한 새로운 신의 추종자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남자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이 큰 것은 복수형의 이름으로 불러야 할 만큼 그 분이 워낙 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이 고통은 반드시 미래에 결실을 가져오리라.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실제로 인류의 기원은 아득하기만 한 깜깜한 우물 바닥에 놓여 있다. 그 깊이를 파헤치려 하면 두 가지 방법뿐이다. 우르 남자를 그 남자의 아버지와 혼동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증조부로 착각한 요셉처럼 가상의 시초를 기원으로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해변에서 마주친 일종의 무대 장치인 사구에 끌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곳으로 유인당하든가.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집트에 번영을 가져온 최초의 통합은 신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였다고. 아마도 세트와 우시르는 그 신들의 아들이었으리라. 우시르는 당시 계략과 범죄로 얼룩진 왕위쟁탈전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고 사지를 절단당한 것인데, 이 이야기가 전설이 된 것이다. 과거의 실존 인물이 어떤 영적 존재로, 초자연적인 어떤 형태로 변할 만큼 깊어져, 신화와 신학을 통해 현재로 되살아나 경건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세트가 살던 시절’, 이 표현이 어린 요셉의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요셉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역시 이집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표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과 관련된 영역은 하나같이 우리를 이 시절에 접근하게 만들며, 만물의 시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트의 시절 안으로 종적을 감추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어딘가 한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나머지는 그냥 둬야 한다. ‘세트 시절’부터 시작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출발점으로 정한 시기가 바로 요셉이 이미 목동이 되어 있던 시절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과거의 저 깊은 우물 바닥에서 메아리치는 설화에 귀를 기울이면, 이렇게 포도를 재배한 자는 바로 의인이라 불린 노아였다. 대홍수의 생존자인 이 노아를 가리켜 바빌론 사람들은 우트나피시팀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트라하시드, 즉 무척 영리한 자라 부르기도 했다. 자신의 후손이자, 점토서판에 나오는 전설의 주인공인 길가메쉬에게 최초의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바로 이 무척 영리한 자, 혹은 의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말을 기호로 표시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판이니, 입으로 말하는 언어의 시작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장 오래된 언어, 최초의 언어는 인도 게르만어라고들 말한다. 즉 인도 유럽어, 산스크리트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최초’라는 것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너무 성급한 표현이리라. 이보다 더 오래된 원어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이 원어로부터 아리아어와 셈어 그리고 함어가 갈라져 나왔을 게 틀림없다. 아마도 그 원어는 아틀란티스에서 사용되던 언어였을 확률이 높다. 이 아틀란티스의 아련한 실루엣이 과거라는 무대 장치 뒤에 펼쳐진 또 다른 해각인 것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말을 하는 인간의 원래 고향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제 확실해진 것은, 인간의 꿈 같은 기억은 형체는 없으나, 끊임없이 새로운 전설의 옷을 갈아입으며, 까마득한 옛날의 대재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대재난에 얽힌 설화들은 훗날 이렇게 저렇게 보완되어 여러 다른 민족들에게 계승되어, 시간 여행에 나선 자를 유인하는 무대 장치 구실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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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도 이 일을 알았다. 그리고 피조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날짜까지도 정확히 알았다 시반 달 (5/6월)에 들어서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리고 홍수가 터진 것은 열이레였다. 계절로 따지면, 눈이 녹는 봄날보 시리우스가 낮에 떠오르고, 우물물이 넘치기 시작하는 때였다. 엘리에젤 노인이 요셉한테 그랬다. 바로 그날이라고. 그렇다면 이 날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요셉은 이런 물음을 떠올린 적이 없다. 그건 엘리에젤 노인도 마찬가지다. 바로 여기서 설화를 주무르는 시간 단축과 혼동 그리고 착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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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이 반복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체험은 그 옛날의 일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처럼 과거의 일이 눈앞의 일로 비중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일을 야기한 상황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현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그 징후를 읽고 현명한 예방책을 써서, 수만 명 중에 유일하게 타락의 길을 벗어난 지혜로운 자와 무척 영리한 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경우는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기록한 점토서판을 이 땅에 물려줌으로써, 미래의 사람들이 지혜의 씨앗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 행여 또다시 물이 넘칠 경우, 이 기록들이 뿌려 준 씨앗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리라 예견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이러한 재난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 바로 이것이 신비의 단어이다. 신비에는 시간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거나 혹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형태란 지금 바로 여기인 것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요셉이 알고 있던 바빌론의 홍수 설화가 그 이전의 더 오래된 설화의 복사판이었듯이, 홍수 체험에 대한 기억은 항상 그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진, 아주 옛날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마지막 원형인 진짜 원본을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 사건이라고 믿고 있다. 대륙이 바다에 잠기자, 그 근방으로 이 무서운 사건이 알려지면서 각기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으로 본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규명은 없다는 것인데, 이 또한 외형상의 중단 지점이며, 임시 목적지일 뿐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우리의 관심거리는 숫자로 확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설화와 예언이 혼동되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시간이 극복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언젠가’라는 단어이다. 이 낱말에는 과거와 미래, 이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어서, 언제든 현실이 될 가능성을 내비친다. 바로 이것이 재구현이라는 발상의 뿌리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 말은 신화가 그들에게 신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존재와 의미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찬이 희생양의 육신 그 ‘자체’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 문제로 다툴 수 있으려면 이때로부터 30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처럼 한가로운 논쟁도, 신비의 본질이 시간이 없는, 곧 시간을 초월한 현재이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에는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의식, 축제의 의미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엘리에젤은 야곱의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며 ‘언젠가’라는 단어의 이중 의미를 보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전설과 예언을 결합시켜서 과거와 미래의 구별 없이 항상 지금 이 자리의 현실로 존재하는 갈대아 사람들의 탑을 만들어낸 것이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아버지는 젊었을 때, 고향인 ‘일곱 개의 우물가’를 떠나 하란에 있는 숙부를 찾아가느라 나하라임 땅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문도 모른 채 실제 하늘 문, 그러니까 세상의 진짜 배꼽이 닿게 되었다. 거룩한 돌들이 빙 둘러 있는 루즈 언덕이 그곳이었다. 이곳을 야곱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에사오를 피해 도망가던 그는 이곳에서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계시를 받은 후, 자신이 머리를 베고 누웠던 돌베개를 석상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이때부터 이 언덕은 요셉의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의 중심지였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어머니의 탯줄이었다.
요셉과 그 형제들 1 - 야곱 이야기 토마스 만 지음, 장지연 옮김
이 기적 같은 이야기에는 구원과 관련된 종교적 뉘앙스도 녹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우주론적인 의도가 단연 돋보인다. 신의 인간, 최초의 인간을 서술하는 표현을 한번 보자. 최초의 인간은 빛으로 이루어진 실체이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개의 금속에서 일곱 개의 유성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다시 세상이 만들어진다. 또 아버지의 원천에서 나온 빛으로 구성된 인간이 일곱 개의 유성 차원을 거치며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각 차원을 지배하는 자들로부터 차례차례 본성을 얻었다는 표현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얻은 인간은 하늘 아래로 눈을 돌렸다가 물질에 비친 자신의 상에 마음을 뺏겨 아랫세상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 그곳의 낮은 본성과 몸을 합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이중성, 즉 고향인 거룩한 세상의 자유와, 낮은 세상의 무거운 구속이 하나로 뒤엉킨 상태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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