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세대

D-29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지, 박광일은 아내의 무신경함에 옅은 짜증이 올라왔다.
책을 읽는데 책이 쫙 벌어진다. 불량품인가. 전엔 책을 다 읽고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만큼 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어디에 둘 곳이 없는 것이다. 이 책도 다 읽고 버려야겠다. 알리딘에서 아마 안 살 것이다.
삼십대 초반, 어쩌면 이십대 후반일지도 몰랐다.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듯한 여자는 눈에 총기가 없고 어리숙한 느낌이 들었다.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왜 저렇게 살지,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 성격이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와 안 맞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안 맞아서 그런 생각이 들어 한 말인 것이다.
잠을 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좀 낮잠을 자서 그런지 책이 자기 전보다 머리에 잘 들어온다. 이걸 노리고 잔 것이다. 늙으면 자도 개운하지도 않고 하루 잘 자면 그 다음날은 대개는 잠이 잘 안 온다. 다 늙어서 그런 것이다. 그저 늙으면 솔직히 빨리 죽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보기 드문 미인이라 룸미러 각도를 조정해 여자의 얼굴을 수시로 훔쳐보았다.
이 책은 본문 내용을 발췌하고 표지 그림을 인쇄해 내 사무실 사물함에 붙이고 지낸다. '이달의 책(4월)'으로 선정해서.
박광일은 어쩐지 그 순간이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아, 역시 30분이라도 낮잠을 자는게 독서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박광일은 자신이 평소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이건 위로일 뿐이라고 여겼다.
당신도 내가 만만해?
이해할 수 없는 독기와 살기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남은 말을 안 듣는다 인간은 대개 누가 하라고 해도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는 것은 어떤 미련, 호기심 때문인 것 같다. 거기에 손수 가보고 싶은 것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결국 가서는 제풀에 겨워 스스로 처음에 하라고 한 사람의 말대로 대개는 한다. 그러니 그냥 지금은 그렇게 두는 게 좋다. 말해도 고집을 안 꺾는다. 나도 그랬다. 이 말도, 다른 사람이 전에 내게 한 말을, 나도 그에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지켜보고 있다가 돌아온 그에게 “어땠어?” 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의 사연을 들어보는 것이다. 나와 다른 남의 이야기 들어주는 것, 흥미롭지 않나. 해봐서 아는데, 하며 말하는데 하지만 역시 말을 안 듣는다. 그 말을 왜 하나. 자기 인생이 모범이라 그렇게 살라는 건가. 그렇게 하는 게 답이라는 건가. 그러나 그게 선의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안 듣는 게 당연하다. 그는 내가 아니고, 그의 인생도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나와 다른 삶을 산다. 그 이유는 그는 내가 아닌 남이기 때문이다.
운수 좋은 날을 읽고 있는 것 같다.
혼구녕/혼구멍/혼꾸멍 이 셋 중 올바른 표현은 ‘혼꾸멍’뿐이다. 한글 맞춤법 규정에는 어원을 알 수 없거나 본뜻에서 멀어졌다고 판단되면, 원형을 밝혀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쓴다고 돼 있다. 그래서 ‘혼꾸멍나다’가 표준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고 ‘혼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설명해 놓았다. 매주 주말이면 우리집 앞에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잡히면 혼꾸멍을 내주려고 벼르고 있다.
이 작가는 경우라는 말을 잘 하는 것 같다. 작가들은 잘 쓰는 말이 있다. 뭔가 무슨 말인지 안 쓰고 쉽게 써서 나와 맞는 것 같아 경우 없는 세계를 또 주문했다. 물론 나는 이 책도 모임 만들기에 올릴 것이다.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요즘 젊은 애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크롱이 한국에 왔는데 별로 뉴스에 안 나왔다. 그건 약간 전략적인 것도 있는 것 같다. 트럼프가 마크롱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를 한국이 너무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면 별로 좋을 게 없어서.
안락한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만이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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